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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대화> 일본어판 편집자 세키 마사노리 씨를 애도하며
[다시! 리영희] 리영희를 통해 한일을 연결한 편집자
국내에서는 극히 한정된 분야의 인사들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출판계에서 유수의 한반도 문제 전문 편집자였던 세키 마사노리 씨(이하 존칭 생략)가 지난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만68세가 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너무도 이른 죽음에 가슴이 먹먹하다. 일본의 지식인 중에는 그의 손을 거쳐 나온 책들을 보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
2023.10.03 09:17:57
리영희와 불교의 인연
[다시! 리영희] 오현스님·명진스님·김성동 소설가 등과 다진 교류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해 우리나라의 대표 지성으로 존경받는 리영희 선생은 불교와 언제 인연을 맺었을까. 또 그 인연은 어떻게 성숙했을까? 사실 리영희 선생의 치열한 일생을 살펴본다면 그처럼 비종교적인 삶을 살아온 경우도 흔치 않을 듯싶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거의 절반의 인구가 종교를 가지고 있고,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 등 거대 종교와 유교, 천도교,
이학종 전 <법보신문> 기자
2023.09.20 13:28:18
리영희 선생의 마지막 2년
[다시! 리영희] 말년의 리영희 선생
리영희 선생의 교분은 워낙 깊고 넓으니 다양한 분들이 선생과 연을 맺고 지내셨겠지만, 나는 선생의 말년에 비교적 자주 뵈었던 인연이 있었다. 이를테면 선생의 마지막 사회적 발언은 내가 몸담은 인권연대의 창립 10주년 기념식이었다. 2009년 7월 1일(수) 저녁에 조계사 구내 불교문화관에서 연 행사. 선생은 여기서 이명박 정권이 초기 파시즘에 들어섰다고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2023.09.05 14:25:52
'제도 밖의 스승' 리영희를 만나다
[다시! 리영희] 내 삶의 균형추, 리영희
리영희 선생을 떠올리면 대학 3학년생일 때인 1974년 서울구치소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긴급조치 1, 4호 위반(이른바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 중이던 그때 '공범'인 이해찬 군이 '창비신서'로 나온 그 책을 동양사 전공의 나는 꼭 읽어야 한다고 빌려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신서'라는 명칭을 듣고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세교연구소 이사장
2023.08.22 16:57:13
미국 이민 1.5세대와 리영희의 인연, 대학 한국학 단체 출범으로
[다시! 리영희] 나와 리영희 교수의 만남
1987년, 민주주의를 위한 대규모 시위가 군사독재자 전두환을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고 국민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역사적인 개헌을 이뤄내면서 수십 년에 걸친 한국의 권위주의 통치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 한인사회의 보수적 시각은 거센 강물 한가운데 놓인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민중운동에 자극 받은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한인
폴 림(Paul Liem) KPI(코리아정책연구소) 이사
2023.08.08 13:14:33
'나라' 아닌 '사회'에 공헌할 것을 맹세합니까
[다시! 리영희] 리영희 선생님의 주례사
1. 리영희 선생님은 내 결혼식 주례이셨다. 또 선생님에게는 내가 첫 주례 제자였다. 그렇게 선생님이 내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것은 1970년대 유신독재가 낳은 시대의 인연이었다. 1974년 2월, 나는 35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그해 3월, 서울대 미학과 4학년에 복학하였다. 그런데 한 달 만인 4월, 일명 민청학련 사건으로 불리는 긴급조치4호 위반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2023.07.24 14:42:01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가해자성과 PTSD에 가두지 않기
[다시! 리영희] 리영희 다시 읽기로 다시 만나는 베트남전
*이 글에서는 이제껏 본격적으로 담론과 운동의 장(場)에 진입하지 못했던 참전군인들의 가해경험이 말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참전군인 인터뷰 작업을 중심으로 가해자성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여, 베트남전쟁이 지금–여기의 '우리' 에게 무엇인지를 묻는, 동시대적이고 새로운 문제지형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피해의 자리와 가해의 자리를 왕복했던 '분열증적 듣
아정 아카이브평화기억/FIPS/IW31 활동가
2023.07.11 14:07:04
격랑에 휩쓸리는 한반도, 리영희 선생이라면 어떤 판단 내릴까
[다시! 리영희] 독일에서 시작된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
1980년 창간 때부터 내가 관여했던, '주변부'를 뜻하는 제3세계 전문 잡지 <페리페리, Peripherie> 가운데 리영희 선생의 글이 80년대 중반에 독일어로 번역되어 실렸던 해당 호를 책장에서 찾았다. 이 글이 우리의 인연을 복기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세계경제 위기를 특집으로 다루었던 1984년 7월에 발간된 초록색 표지의 1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2023.06.27 13:46:22
황석영이 만난 리영희
[다시! 리영희] 사람과 역사의 특징
내가 리영희 선생을 처음 만났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이 살았던 때와 만났던 사람들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기억의 서랍에 남기기 마련이다. 나도 이제 팔십이 넘었으니 추억은 길고 남은 시간은 짧아졌다. 살면서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겪었고 만났다. 나는 일찍이 서울을 떠났고 늘 지방의 현장 근처를 떠돌았다. 그러고는 곧
황석영 소설가
2023.06.13 11:11:39
리영희와 그의 유토피아
[다시! 리영희] 리영희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유토피아>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근무하던 리영희는 1971년 10월 해직되었다. 1969년 7월 <조선일보> 외신부장에서 물러났던 그는 일 년여 만에 또다시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외압이 작용하였다. 당시 정부는 베트남전쟁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애쓰는 리영희의 보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한국군을 파병한 베트남전쟁이 공산주의에
허희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박사후연구원
2023.05.30 15: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