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04월 17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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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지 않은 사람들 – 류춘도와 리영희
[다시! 리영희] 이름 없이 잊힌 정의의 길, 얼마나 많았을까
1927년생. 서울여자의과대학 졸업. 산부인과 개업의. 남편은 서울대학교 교수이자 학술원 회원. 이 이력의 주인공은 편안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 시기 대다수의 여성과 비교하면. 그러나 이력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이 이력의 소유자 류춘도 선생 또한 그러했다. 류춘도 선생은 전쟁 시기 의용군 군의관이었다. 선생은 사회주의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
2024.03.19 15:01:13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의 스승이시다
[다시! 리영희] 날카로움과 함께하는 부드러움, 차가움과 함께하는 따뜻함을 지닌 리영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은 우리의 스승이시다. 어두운 시대에 빛을 추구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리영희 선생님은 진정한 스승이었다. 그래서 리영희 선생님은 항상 냉철한 이성, 날카로운 지성으로 굽힐 줄 모르는 지식인의 표상이 되어왔다. 물론 맞는 말이다. 리영희 선생님의 이미지는 차가움, 냉철함, 앞서 나가는 사람 등과 같이 외로움, 고독함, 날카로움과 연관되어 우리 사
진영종 성공회대 영문학 교수
2024.03.05 14:59:34
50년 지나도 여전한 "걸레 같은 신문과 방송"
[다시! 리영희]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리영희를 생각하다
"걸레 같은 신문과 방송을 보는 것은 고문이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온 지 올해로 50년이 흘렀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편집국에 힘찬 붓글씨로 새
이기주 MBC 기자
2024.02.20 05:10:34
독립언론 창간과 협업이 리영희 정신이다
[다시! 리영희] 진정한 언론의 길 제시한 리 선생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한 것은 국가가 아니야, 분명해! 소위 애국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리영희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입니다. 기자가 취재하고 보도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기자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분명한 이정표가 되는 말입니다. 저는 기자 생활하면서 이 이정표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지방신문에서 기자의 이정표는 달랐
이창호 뉴스하다 발행인
2024.02.06 15:56:12
원로변호사 이병린, 유신시절 감옥에서 들고 나온 책은?
[다시!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당대 지식의 선물세트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 아래서 자유를 갈망하며 저항하다 감옥에 갇혔던 인사들을 격려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던 변호사들이 있다. 언론에서 흔히 '인권변호사'로 지칭되는 법률전문가들이다. 엄혹했던 시절 공안기관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고 수감됐던 이들과 고락을 같이했던 인권변호사들이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다. 2022년 봄에는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
2024.01.22 13:59:30
리영희, '한국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인(囚人)'
[다시! 리영희] 와다 하루키와 리영희
도쿄대학의 30대 젊은 교수였던, 197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열성적으로 지원했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리영희 선생과의 오랜 인연을 회고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와다 교수는 원문에서 경어와 존칭을 썼지만 평어로 바꾸고 존칭은 대부분 생략했습니다. 편집자 리영희 선생의 병문안을 서울에서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한 때로부터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2024.01.08 16:03:28
리영희와 루쉰 그리고 의식화
[다시! 리영희] 리영희 사상의 은사, 루쉰
1. 리영희의 루쉰 독서사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리영희가 투옥되었을 때 <르 몽드> 도쿄 특파원은 리영희를 한국의 '사상의 은사'로 소개했다. 반공을 내세운 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한 리영희 비판이 새로운 세대에 다른 사고와 실천을 촉발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새로운 세대가 리영희의 글을 통해 '우상의 저편'을
최진호 읽기의 집 & 점필재연구소 연구원
2023.12.26 16:57:02
리영희 선생이 남긴 화두, 독립 언론이라는 자유
[다시! 리영희] 위기의 시대, 독립언론 협업의 가치
"대구·경북 독립 언론 <뉴스민>, 이상원 기자입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독립 언론을 해요. 안 힘들어요?" 대구·경북을 조금 벗어나서 이렇게 소개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그럴 때면 '허허허'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곤 한다. 대구·경북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있기 때문에 돌아오는 스테레오타입 같은 반응이라곤 생각하지만, 개인
이상원 대구·경북 독립 언론 <뉴스민> 편집국장
2023.12.12 16:00:29
리영희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토피아
[다시! 리영희] 천박한 자본주의, 고급진 유토피아
2008년 리영희샘이 추석을 맞아 안부 전화라며 내게 전화를 주셨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는 마당발 한의사 선배 이유명호가 이끄는 대로 한겨레 논설위원 김선주, 유시춘, 조선희, 서명숙, 김미경 등 여성들과 어울리고는 했다. 호주제폐지운동을 가열차게 하고 있던 터라 '십자매'라 칭하기도 했던 이 모임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리영희샘 부부와 수다
고은광순 (사)평화어머니회 대표이사
2023.11.28 14:44:01
박노자가 만난 리영희
[다시! 리영희] 양심과 지성의 빛: 내가 기억하는 리영희 선생님
나는 '리영희'라는 성함 석자를, 아마도 1995년쯤 처음으로 들어보게 된 것 같다. 그해 여름에 내 처형의 광명시 소재 아파트에서 몇 주를 보내게 되었는데, 처형과 그 남편은 한때 학생운동권의 전력이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나는 그 집의 서가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사상 탄압이 대단히 심했던 1970년대에
박노자(블라디미르 티코노프) 오슬로대 교수
2023.11.14 14: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