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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검색결과 (전체기사 중 5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
이완용, 나라 팔기 전에 이것부터 팔았다
조선 왕실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불러들였다. 조정은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정부와 군대가 무력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40년 전인 1851년에 시작되어 1864년에 끝난 역사적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태평천국의 난이라 불리는 청나라의 사건이다. 이는 중앙정부 대 농민의 싸움이었다. 동학과 같은 성격의 민란인 셈이다. 이 태평천국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청은 외국 군대를 불러들였다.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인 양창대(洋槍隊)는 1863년 태평천국 군대를 격파했다. 청의 왕실은 미국과 영국에 큰 은혜를 입었다며 고마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2014.09.21 13:19:04
1895년 일본의 영광을 싣고 달릴 뻔했던 한국 철도
무능한 왕조 체제와 반인간적 계급 질서를 철폐하고자 일어났던 동학 농민들이 외국 군대의 진출만은 안 된다며 자진 해산한 게 1894년 6월이었다. 파병의 원인이었던 농민들의 항쟁이 끝난 만큼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는 본국으로 철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두 나라의 군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지 부시가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를 내세웠듯, 군대의 침략 행위에 앞서 설정된 명분은 허구에 불과할 뿐이었다. 6월 15일 일본 각료회의는 '조선의 변란에 대한 우리의 태도 및 장래의 행동에 관한 건'을 결정했
2014.08.31 08:49:45
"조선을 차지하려면 철도를 장악해야 한다"
한국이 프랑스와 월드컵에서 결전을 치른 사실은 알아도, 정규군끼리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1866년 10월 26일, 3척의 군함이 한강 하류에 나타났다.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이 이끄는 함대였다. 전투 태세를 갖춘 채 지금의 인천공항철도를 연결하는 마곡 철교를 지난 함정들은, 지하철 2호선이 건너는 당산 철교 밑을 지나 서강대교 부근까지 진출, 위력 시위를 벌였다. 한성에서는 난리가 났고 군사들에게는 긴급 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수도방위사령부 역할을 하는 어영청 중군(대장) 이용휘가 조정의 명을 받
2014.08.17 11:32:14
일본의 철도 요금은 왜 그렇게 비쌀까?
도쿄와 요코하마를 오가는 일본 최초의 철도는 금방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검은 쇳덩어리가 거침없이 달리는 모양을 본떠 흑룡으로 불렸던 기차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나중에는 실용성으로 사람들을 몰려들게 했다.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철도 건설이 시작됐고, 이미 건설되고 있던 노선들은 개통을 서둘렀다. 일본 본토에 세워진 첫 노선은 영국인 기술자 브리튼 에드먼드 모렐(Briton Edmund Morell)의 감독 아래 만들어졌다. 모렐은 일본 최초의 철도 건설을 책임진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철도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다. 이어 1880
2014.07.27 16:59:09
140여 년 전, 일본 '철도 마피아'의 정체는?
7월 4일 여러 언론사에서 코레일의 보도자료를 기초로 기사를 게재했다. 코레일이 판매하는 자유 기차 여행 패스인 '내일로'의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코레일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내일로' 이용객이 1만5459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1.5%나 증가했다. 특히, 각 대학들이 여름 방학에 들어가면서 지난달 20일부터는 1일 이용객이 1000명을 넘어섰다. 5일 권이나 7일 권의 패스를 구매해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한 '내일로'는 놀이공원의 자유 이용권처럼 마음대로 기차를 탈 수 있게 해준다. 아쉬운 점은 이런
2014.07.13 17:41:23
이토 히로부미, 철도 따라 대한제국을 접수하다
1905년 11월 8일 이른 아침, 이토 히로부미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초량역 정거장에서 자신을 태우고 갈 열차를 바라보았다. 초량역 승강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이 특별히 준비한 궁정 열차가한성부를 향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환송을 나온 일본 영사관 관리들과 재조선 일본인 거류민 대표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악수를 나눈 이토는 귀빈용 객차에 몸을 실었다. 이토는 초량으로부터 끝없이 이어진 철길을 보면서 조선 반도를 일본의 쇠밧줄로 옭아맨 이상 대한제국이란 나라는 일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1894년 일
2014.06.29 16:30:21
107명이 죽은 열차 사고, '세계 최고 정시도착률'의 이면
이 글은 박흥수의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 29회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후쿠치마야선 탈선 사고 '2부'인 셈입니다. (관련 기사 : 어머니의 눈물 "철도 민영화가 내 딸 죽였다") 일본 최악의 철도 사고 중 하나인 후쿠치마야선 탈선 사고는 2005년 4월 25일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107명이 희생됐고 562명이 다쳤습니다. 한국의 '세월호 참사'보다 약 9년 앞선 사고입니다. 9년이 흘렀지만 일본 사회는 이 사고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정부와 운영사(JR서일본)을 상대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세
2014.06.15 18:01:14
어머니의 눈물 "철도 민영화가 내 딸 죽였다"
2005년 4월 25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나카무라 미치코(40세) 씨는 남편과 아들의 출근길과 등굣길을 챙긴 뒤 어머니와 둘이서 운영하는 인쇄소로 출근하기 위해 후쿠치마야선의 쾌속 전동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출근길 러시아워가 채 끝나지 않은 시간이라 많은 승객이 타고 있었다. 전동차를 꽉 채운 승객 중의 한 명인 대학생 가즈와키(18세) 씨는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바로 전에 정차했던 이타미 역에서 전철이 승강장을 벗어나 서는 바람에, 전철은 다시 뒤로 움직여 문을 여닫았다. 승객들 사이에서 불만 섞인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열차
2014.06.01 16:44:08
세계 최악 고속철 참사, 세월호와 다를 바 없었다
지난 5월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사고가 났다. 뒤에서 달리던 열차가 앞의 열차를 추돌한 사고인데, 현대적 신호 시스템이 관리하는 도시철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고였다. 철도 안전은 철도 운행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한두 개가 문제를 일으켜도 방어할 수 있는 중층적 체제로 구축돼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안전망이 모두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상왕십리역 사고는 보여주었다. 철도가 탄생할 무렵부터 최대 과제는 앞뒤로 달리는 열차가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초창기 철도는 열차가 출발하면, 일정 시간을 기다린 뒤
2014.05.18 16:09:38
프랑스에서 그들은 철도 국영화를 외쳤다…왜?
1820년대에서 1870년대까지 영국과 미국이 산업혁명의 파도를 타고 기계문명을 꽃 피우는 동안, 프랑스는 엄청난 산통을 겪고 있었다. 때문에 산업화 초기, 프랑스에서의 철도 건설은 지지부진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감옥 공격사건으로 상징되는 대혁명은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까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이어졌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궤도를 이용한 운송수단이 광산에 운영됐고 이것이 마침내 철도로 발전한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궤도를 이용한 운송수단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비록 미친놈 소리를 들으며 정신병동에
2014.05.06 14:0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