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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검색결과 (전체기사 중 5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
"죽음이라는 '행정 업무', 기차가 가능케 했다"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 북해연안의 벨기에부터 남부 프랑스-독일 접경지역의 알자스까지 이어진 참호 속에서 좀비처럼 박혀 있던 병사들은, 마침내 몸에 붙은 진흙 덩어리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리게 될 전쟁의 총성이 멎은 것이다. 병사들은 드디어 집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이 거대한 전쟁으로 700만 명의 군인과 또 그만큼의 민간인이 죽었다. 인류는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의 끔찍한 실체를 목격했다. 하지만 인류는 대(大)전쟁이 준 가르침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 이는 후일 역사가 증명했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2015.02.08 15:01:24
'만철' 전성시대와 박정희 '친일 혈서', 그리고 기시
1906년 발족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는 초고속 증식 세포처럼 만주 일대에 철도망을 깔았다. 러시아가 소유한 동청철도 노선을 빼면 만주는 일본이 부설한 철도망으로 인해 쇠줄로 꽁꽁 묶인 땅이 되었다. 만철의 철도망이 확장될수록 이를 지키기 위한 군 병력도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포츠머스 조약 세칙에 따라 일본은 만철 노선 1킬로미터(km)당 15명의 수비 병력을 둘 수 있었다. 일본은 철도 보호를 명목으로 독립 수비대 6개 대대를 창설하여 철도 연변을 따라 배치했다. 이 철도 수비대는 1919년 관동군 창설의 모태가 된다.
2015.01.25 08:33:41
청년 손기정은 베를린까지 어떻게 갔을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끊임없이 주입 당했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 단어를 못 외워 학원에 붙들려 집에 못 가지만, 내 초등학교 시절에는 대통령 각하께서 헌사하신 국민교육 헌장을 외우지 못한 학생들이 학교에 붙잡혔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칠 각오로 똘똘 뭉친 아이들에게, 당시 선생님들은 민족의 찬란한 과거를 말해 주었다. 허리 잘린 반도에서 육로로는 국경을 넘을 수 없는 땅의 아이들에게 찬란한 과거란, 굳건한 나라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2015.01.11 14:38:04
참호, 독가스, 철조망, 기관총, 그리고 철도
2014년인 올해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딱 100년이 된 해이다. 이 한 세기 동안 인류는 산업문명의 기관차를 타고 살육이란 내리막길을 거침없이 달려왔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대규모 전쟁 중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전쟁 하나를 꼽으라 하면, 1815년 나폴레옹의 군대와 반(反)프랑스 연합군인 영국, 프로이센, 네덜란드의 군대가 싸웠던 워털루 전쟁을 꼽을 수 있다. 이 전쟁의 결과가 본국에 알려지는 데 걸렸던 시간은, 기원전 카이사르 군대가 갈리아 원정 당시 로마에 전령을 보내 승전보를 알리는 데 걸렸던 시간과 별 차이
2014.12.28 16:56:38
황제를 무릎 꿇린 것은 철도, 그리고 노동자
러일전쟁은 한국전쟁이었으며 세계전쟁이었다. 또 문명 간의 충돌이기도 했다. 고대 페르시아 전쟁과 중세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현재의 중동 전쟁까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동서 전쟁'들이 있었지만, 러일전쟁은 근대에 발생한 대표적인 동서 충돌 중 하나다. 러일전쟁이 끝난 뒤 점령자 프랑스를 몰아내고자 했던 베트남 젊은이들은, 그것이 백인종에 대한 황인종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간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양세력을 이겨낸, 같은 동양 국가라는 동질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전쟁이라는 공간에 근대 산업혁명의 결과가
2014.12.14 14:01:52
코레일 홈페이지 실린 철도 파괴범 사진…실상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게 된 일본은 경의선 철도의 신속한 건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1904년 2월 21일, 일본은 임시군용철도감부(臨時軍用鐵道監部)를 설치, 군의 관할 아래 경의선 속성 건설에 나선다. 일본 해군이 뤼순의 러시아 함대와 요새를 공격,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2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이미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월 6일 일본정부는 경의선을 일본 군용 철도로 부설할 것을 결정했다. 일본군이 경의선 건설에 나서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상법상으로도 위법한 일이었다.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군에 부설권을 허가하지 않은
2014.12.02 10:10:32
식민지 철도는 일본군부터 나르기 시작했다
1891년 5월 31일 착공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조금씩 그 형체를 갖추어나갔다. 1901년경에는 몇 개 구간의 난공사 지역을 제외하고는 열차가 달릴 수 있었다. 청일전쟁 후 일본의 요구조건을 무산시켜 청을 방어한 러시아는 대가를 톡톡히 챙겼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일전쟁이 마무리된 다음 해인 1896년 5월 청의 외교 실권자 이홍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새로운 차르가 된 니콜라이 2세의 황제 즉위식에 청의 사절단장으로 참여한 것이다. 모스크바의 야심가들은 이홍장을 포섭하기로 마음을 먹고 청과의 교섭카드를 준비했다. 시베리아
2014.11.16 17:14:22
일제에 뺏긴 조선 철도와 수서발 KTX, 그 묘한 기시감
국토부는 지난해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수서발 KTX) 법인을 설립하고 주주 구성, 즉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국토부가 민영화는 절대 아니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일단은 공적자금인 연기금을 동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연기금 주식이 민간에 넘어가는 순간 한국철도의 주력 고속노선은 경인선 부설권의 꼴을 벗어날 수 없다. 백성들의 뜻과 무관하게 이권을 챙기려는 국내외 주주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된다. 소유하지 못하면 통제할 수 없다. 공기업의 주인은 시민이다. 민영화는 시민들로부터 소유권을 빼앗아 수익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민간 기업에 넘기는
2014.11.02 16:02:54
조선 최초 철도 개통식에 일장기 나부끼고…
1896년 3월, 미국인 모스가 경인철도 부설권을 획득하자 열강의 조선철도 부설권 쟁탈전에 불이 붙었다. 모스에 이어 그릴르(Grille)를 대표로 하는 프랑스의 피브릴르(Fives Lile) 회사가 7월에 경의선 부설권을 따냈다. 프랑스는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와 함께 일본을 압박한 3국 간섭의 당사자였다. 시베리아횡단철도에 차관을 제공하고 러시아와 긴밀한 협조 체제를 유지했던 프랑스가 러시아 세력이 힘을 발휘하는 조선에서 철도 부설권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프랑스는 내친김에 서울-공주, 서울-목포 철도 부설권을 요구했
2014.10.20 15:38:24
'가만있어라', 95년 전 이완용도 강조했다
1896년 3월 29일 경인철도 부설권이 미국에 넘어가자 일본 정부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일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조선 정부에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의 철도 부설 교섭을 하지 말라고 압박을 해온 터였다. 4월 4일 주한 일본 공사 고무라는 외무대신 이완용을 찾았다. 고무라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으로 이완용을 찾은 이유는, 경인철도 부설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상실감뿐만이 아니었다. 모스의 경인철도 부설권 확보에 이어 프랑스인 그릴르가 경부철도와 경의철도 부설 특허를 따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2014.10.05 1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