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12월 08일 2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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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inkyu@pressian.com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역사학은 때로 '성공'과 '승리'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⑧·끝
김구, 이승만과 미군 무선통신으로 연락하고 혹하다 박인규 이승만의 복권에 관한 이야기도 잠시 나누고 싶다. 1925년에 탄핵된 이후로 1933년까지는 그야말로 끈 떨어진 신세였는데, 1941년에 김구가 최종적으로 워싱턴 대표로 세워주면서 임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당시 미주 교포들이 엄청나게 반대했다. 정병준 1930년대에 국제연맹에 가면서 복권됐다. 그
박인규 프레시안 고문
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반탁운동'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⑦
해방 후 신탁통치와 반탁운동의 전사, 1942년부터 있었다 박인규 이제 거의 책 내용의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책에 워낙 많은 내용이 있다 보니, 못 다룬 것도 있는데, 꼭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던 것 두 가지는 짚었으면 한다. 하나는 신탁통치의 일종의 전사에 관한 것이다. 보통 신탁통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1945년 12월 30일 모스크바 3상회의
김규식이 김원봉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⑥
또 한 번의 도미 외교, 실의와 온축의 10년 박인규 1933년 김규식이 미국을 방문한다.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과 윤봉길 의거에 따른 중일 대결 격화, 그리고 중국 국민당이 한국 독립운동 지원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반일 통일전선을 위해서 미국 교포들의 도움을 확보하려던 것이다. 당시는 말하자면 외교의 시대가 지나고 1929년 대공황 이후 각국
워싱턴에 실망한 김규식, 모스크바로 향하지만…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⑤
"모스크바는 워싱턴과는 다르다", 극동민족대회 vs 워싱턴회의 박인규 <김규식과 그의 시대> 2권은 '3.1운동의 빛, 한반도를 비추다'라는 부제 아래 시기적으로1919-1921년, 김규식의 외교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었다. 1919년 8월까지 파리강화회의에서의 김규식의 외교 활동을 그의 독립운동의 절정이었다고 한다면, 이후 미국에서의 공채
3.1운동의 불꽃이 된 김규식의 정점, 그리고 시련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④
김규식의 놀라운 파리 강화회의 단독 외교투쟁 박인규 김규식은 1919년 2월 1일 상해를 출발해서 3월 13일 프랑스에 도착했다. 사실 미국에서 이승만, 정한경,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오려고 했는데 일본의 방해 등으로 못 오고 혼자 도착했다. 그리고 8월까지 거의 혼자 힘으로 파리강화회의와 미국 등 외국 대통령들에게 독립 청원서와 비망록 등을 제출했다.
김규식과 여운형, 3.1운동의 마중물이 되다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③
국민주권, 대동단결 '임시정부'를 준비한 독립운동 선각자들 박인규 김규식의 파리강화회의 참석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13년 중국 망명 이후 파리강화회의 참가와 삼일운동,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자. 중국으로 망명한 김규식은 곧바로 동제사라는 단체에 참여한다. 이번에 처음 제대로 알게 된 단체인데, 동
고아 소년 "존"에서 근대적 지식인 김규식으로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②
호피 방석 위의 고아 소년 "존" 박인규 책은 양반집 자제와 같은 단정한 옷차림에 호피 방석에 앉아 있는 영민한 모습의 어린 김규식 사진으로 시작된다. 정 교수는 올해 1월에 이 사진의 출처를 처음으로 확실하게 특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어린 김규식이 이런 사진을 찍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정병준 1987년 서문당에서 조풍연 선생 해설로 낸 <조
후진국 국민, 개발도상국 민중, 선진국 시민 정체성이 공존하는 해방 80년 한국
<김규식과 그의 시대>를 출간한 역사학자 정병준과의 대담 ①
<몽양 여운형 평전>, <우남 이승만 연구>,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등으로 한국 현대사 속 인물들의 숨겨진 진면목과 핵심을 치열하게 연구해 온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가 해방 80주년을 맞아 <김규식과 그의 시대>(전 3권)를 출간하였다. 애초 기획은 8월에 나온 새 책에 관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진행하다
"유럽은 자신의 허파에 총을 쐈고,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해외 시각] 제 발등을 찍은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 주도의 서방 세계는 대러시아 제재에 나섰다. 경고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기적 특성이 강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사슬의 특성상, 북한도 아니고, 러시아와 같은 대국에 대한 경제 제재는 서방 세계의 피해까지 수반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코로나 엔데믹 과정과 겹치면서, 그 경고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미국 증
박인규 편집인(=정리·번역)
러시아의 시각 "서방은 러시아의 선의와 약점을 악용했다"
[해외 시각] 그리고 이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원한'을 모른다
다음은 러시아의 작가 겸 언론인, 역사가인 막심 아르테몌프의 '서방은 1990년대 러시아의 취약함을 악용했고, 이에 따른 러시아인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하지 못한다(The West took advantage of Russian weakness in the 1990s and is unable to understand the trauma it unlea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