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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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쟁은 침략이 아니고 식민통치도 한국에 이로웠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4]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③
"언제까지 사과를 하란 말인가?" 일본의 침략과 억압, 그에 따른 전쟁범죄를 둘러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이미 충분히 사과를 할 만큼 했으니, 이젠 더 이상 사과할 필요 없다는 말들을 한다. 일본의 우파들뿐 아니라 <반일 종족주의>로 대표되는 한국의 '신친일파'들도 그렇게 말한다. 관련 자료를 뒤져보면, 사과를 했다는 것만은 틀린 얘기는 아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친일파' 하버드 교수 "위안부, 성노예 아닌 돈 위한 자발적 매춘"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3]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②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를 묻지 않은 밀실 합의였다. 그래서 끝내 실패로 막을 내렸고 두 나라 사이의 긴장만 커졌다. 2023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도 논쟁 선상에 있다.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도 2015년 판박이다. 분명한 것은 둘 다 일본 쪽으로서는 정치적 승리, 그것도 대승을 거두었다는
"위안부는 매춘, 궁금하면 해볼래요?" 류석춘의 망언, 그리고 2차 가해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2] 망언과 사과, 용서와 화해 ①
"나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일본이 (용서를 받으려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지난 4월 미국 방문 중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반성과 사과를 했다"(지난 3월 일본 방문을 앞둔 국무회의 중). 둘 다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국내의 비판 여론은 거셌다
이 교과서는 어느 나라 교과서인가요?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1]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下⑥)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던 대사건들을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 제대로 잘 담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는 이의 잣대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가 내려지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35년 일제강점기를 비롯해, 제주4.3(1948), 6.25전쟁(1950), 4.19혁명(1960), 5.16군사정변(1961), 5.18민주화운동(1980), 6
"위안부 성노예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고통'일뿐이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20]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下⑤)
지난 글에서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스페인에 강연을 갔다가 그곳 젊은이들이 스페인내전(1936-1939)에서의 전쟁범죄를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던 일화를 살펴봤었다. 아울러, 필자가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면서 만났던 일본 유학생들도 (스페인 젊은이들처럼) 일본의 '흑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점도 짚었다. 일제의 침략전쟁 과정에서 벌어졌던 온갖 전쟁범
일본 극우교과서 "한반도는 흉기, 위험한 칼은 제거돼야"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9]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下④)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 없다." 이즈음 일본의 극우파들이 모인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소리가 '우리가 뭘 잘못 했느냐'는 것이다. 1995년 일본 패전 50주년을 맞아 사회당 출신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지난날 침략전쟁과 전쟁범죄에 사죄의 뜻을 나타냈었다. 그 뒤로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본은 보수 우경화 흐름을
극우파 항의로 문 닫은 교과서 회사 "이제 종군위안부는 못 다룬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8]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下3)
'21세기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1928년생)는 1990년 스페인에 강연을 갔다가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뜻밖에도 그곳 젊은이들이 스페인의 어두운 과거사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스페인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3년 동안 내전이 벌어져 35만 명이 죽은 비극을 겪었다. 제2공화국에서
"쓸모없는 바위섬 폭파하자"던 김종필도 지켜낸 독도인데…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7]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下②)
독도에 대해 쓰려니 축구선수 박종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 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2 대 0으로 이긴 뒤 '독도는 우리 땅'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축구장을 돌았다. 그 때문에 FIFA로부터 징계를 받고 동메달 시상식에도 오르지 못했다. "올림픽 시설이나 경기장 등에서 정치적 선전 활동을 금지하는 올림픽 헌장을 어겼
태형 90대에 모친을 군홧발로 죽여도 "수탈은 없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6]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下①)
한반도를 강탈한 일제는 곧바로 토지조사(정식 이름은 '조선토지조사사업')에 들어갔다. 1910년부터 1918년까지 햇수로 9년에 걸쳐 이뤄진 토지조사의 목적은 한반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지난 주 글에서 살펴봤듯이, 신용하(전 서울대교수, 사회학)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조선 왕실 소유였던 농경지, 임야, 미개
수탈이냐 근대화냐, 민족주의자 신용하와 탈민족주의자 이영훈의 논쟁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5]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中)
'신친일파'들의 주요 논리 가운데 하나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변화와 개혁의 동력을 잃은 조선 왕조를 쓰러뜨린 일본의 식민 통치를 거치면서 조선이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학교가 많이 들어섰다느니, 철로의 길이가 길어졌다느니 하는) 통계 숫자 뒤에 가려진 식민지 근대화의 어두운 그늘을 거듭 지적해왔다. 그래서 이들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