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스페인에 강연을 갔다가 그곳 젊은이들이 스페인내전(1936-1939)에서의 전쟁범죄를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던 일화를 살펴봤었다. 아울러, 필자가 미국 뉴욕에서 공부하면서 만났던 일본 유학생들도 (스페인 젊은이들처럼) 일본의 '흑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점도 짚었다. 일제의 침략전쟁 과정에서 벌어졌던 온갖 전쟁범죄 행위들, 이를테면 난징학살, '위안부' 성노예, 강제동원 등의 실상을 일본 교과서가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탓이었다.
21세기 들어와 스페인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달라졌지만 일본은 아니다. 2005년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대형 기마상이 철거될 무렵, 스페인내전의 전쟁범죄와 인권탄압 내용이 교과서에 들어갔다. 스페인에선 역사인식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교과서의 집필 방향이 과거사 정리를 통한 갈등 해소 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극우 쪽 역사인식으로 뒷걸음질하는 모습을 보인다.
호사카 유지, '과거사 무관심은 지도자들의 잘못된 교육 탓'
2003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특이한 이력을 지닌 호사카 유지(세종대교수, 정치학)는 이런 일본의 모습에 매우 비판적이다. <신친일파: 반일 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 <대한민국 독도> 등의 책을 펴낸 이력이 말해주듯, 호사카 교수는 한일 관계의 민감한 사안들을 연구 주제로 삼아 왔다. 그는 많은 일본인들이 과거사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는 데엔 일본의 보수 정치권과 교육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한다.
'과거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고서 어떻게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많은 일본인들은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식으로 밀어놓아 버린다. '소문이 나도 75일 지나면 모두들 잊어버린다'와 같은 속담이 일본에는 많은데, 사람들의 뇌리에서 과거는 잊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의 올바른 판단을 마비시킨 가장 중요한 책임은 전후 일본의 지도자들과 그들이 해온 교육에 있다'(호사카 유지, <일본 뒤집기> 북스코리아, 2019, 179쪽)
호사카 교수가 일본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듯이, 일본 교과서에서 '위안부 성노예'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과거사를 왜곡·축소하고 심지어 미화하기까지 하는 흐름이다. 21세기 들어와 일본 우파 정치권과 교육계, 사회단체와 손을 잡고 교과서 내용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개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이른바 '역사개찬운동'의 전위 행동대는 지난주에 살펴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 한국에 대한 증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을 일삼는 극우 유튜버(이른바 '넷우익')들이다.
이들 역사전쟁의 전사(戰士)들을 뒤에서 굳게 받쳐주는 주요세력은 집권 자민당의 극우세력을 포함한 일본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1997년 발족), 8만여 개의 신사(神社) 연합체인 신도(神道)정치연맹(1969년 발족, 약칭 신정련), 산케이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한 극우 보수 성향의 언론들이다. 이 세력들은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 아래 '전쟁 포기, 전력 미보유 및 교전권 부인'을 못 박은 일본 헌법 제9조를 바꿈으로써 지난날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한다. 전쟁범죄로 얼룩진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이들의 고집스런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동아시아의 과거사 문제는 제대로 풀리기 어렵다.
'종군 위안부'는 '위안부'로, '징병'은 '지원'으로 물타기
일본 우파들의 '역사개찬운동'에 발을 맞추듯, 이즈음 일본 교과서는 지난날 전쟁범죄의 실상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 2021년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또는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교과서에서 쓰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강제연행'이란 용어도 못 쓰도록 했다. 이러한 각의 결정 사항이 알려지자, 일본 정부가 앞장 서 역사 왜곡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의 지침에 따라 '자기 검열'을 거쳐 집필된 교과서들의 내용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과거사 왜곡·축소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2022년과 2023년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는 예전보다 더 심한 물타기 흔적이 보인다. '종군 위안부'는 그냥 '위안부'로, '일본군에 징병됐다'는 '일본군에 병사로 참가했다'로 줄였고,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에서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지원'을 강조했다. 한 마디로 문제가 되는 '강제성'을 되도록 희석시켰다.
이러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는 지난날 일제의 침략전쟁에 억지로 끌려가 큰 희생을 치렀던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준다.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우리 학계의 추산으로는 3만~5만 명으로 추산되는 '위안부' 성노예를 비롯, 200만 명쯤의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됐다. 그들 가운데 21만~22만 명이 죽었다. 군인(군무원 포함)은 27만여 명이 동원돼 15만 명쯤이 죽었고, 야스쿠니 신사에 갇힌 전몰자만도 2만 1000명에 이른다(연재 12회 글 참조바람).
그럼에도 교과서에 '참가' 또는 '지원'으로 표기함으로써, 어린 학생들에게 '강제동원은 없었구나'라는 잘못된 판단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지원'을 강조할 경우 피해자의 모습은 희석되고 지원자만 남는다. 더구나 관련 내용을 서술하는 분량도 길어야 서너 문장 정도로 매우 짧아졌다.
그런 교과서를 읽은 일본 학생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신음을 전혀 떠올리지 못한 채로 금세 다른 단락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십상이다. 몇몇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들이 희생자의 고통을 떠올렸다 하더라도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의 표현을 빌자면) 그저 잠시 스쳐가듯이 흘낏 마주친 '타인의 고통'일 뿐이다.
'위안부' 성노예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고통'
한국에도 소개된 책인 <타인의 고통>(이후, 2004)의 저자인 손택은 2001년 9.11테러 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반대했던 평화주의자다. 그녀는 동유럽 발칸반도에서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사라예보로 가서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Godot)를 기다리며>를 연극 무대에 올렸다. 장기간 포위된 도시에서 죽음의 공포와 절망에 빠진 그곳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라예보에 머물면서 손택은 바로 몇 발자국 바로 앞에서 폭격이나 총알에 맞아 죽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전쟁의 끔찍한 이미지를 볼뿐, 현지에서 전쟁을 직접 겪는 이들의 고통을 잘 모른다.' 전쟁의 참상 소식을 전하는 TV 화면이나 신문기사를 보면서 사람들은 잠시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 전쟁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십상이다. 손택의 표현에 따르면, 스스로를 '구경꾼'이라 여긴다. 내가 그들을 죽이지도 않았기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여긴다. 그리고 '전쟁은 참으로 소름 끼치는 것이니까...'하며 TV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릴 뿐이다.
손택의 이야기를 '위안부' 성노예의 진실이 사라진 일본 교과서에 적용하면 어떨까. 교과서에 휙 지나가듯이 짧게 서술된 '위안부' 대목을 읽는 일본 학생들은 관심을 갖기나 할까. TV로 전쟁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보인 반응과 마찬가지로, 그저 스쳐가는 '타인의 고통'일 뿐이다. '위안부' 여성들을 내가 고통스럽게 만들진 않았으니, 전쟁범죄의 공범이라는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기도 어렵다. 교과서 관련 분량이 워낙 짧고 제대로 실상을 밝히지 않았기에, 학생들은 '연민'을 느낄 기회조차 없을 듯하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좀 더 길게, 분명히 서술하라'
독도에 대한 일본 교과서의 서술은 말할 나위 없이 일방적이다. 2023년 현재 모든 일본 교과서에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주장이 버젓이 실려 있다. 독도에 관한 서술 내용도 갈수록 자극적이다. 예전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비교적 중립적인 서술이 담겨 있던 교과서들도 그런 내용이 빠진 채로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영토'로 못 박고 있다. 일부 교과서엔 독도가 포함된 일본 지도에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영해를 추가로 표시해 마치 독도가 당연히 일본 영토인 것처럼 시각적인 효과가 돋보인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모든 학교에서 '독도 영유권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학습지도요령'을 시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배운 어린이는 중고를 거치며 계속 주입식으로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란 생각을 품게 될 것이고,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반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일본이 국가주의를 내세우면서 독도 문제를 계속해서 들고 나오는 한 한일관계는 매끄러워지기는커녕 악화될 것이다.
독도뿐 아니다. 일본이 영유권 다툼을 벌여온 다른 지역들도 모두 '일본의 고유 영토'로 표기된다. 그 지역들은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는 남쿠릴열도 4개섬(홋카이도 북쪽의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등 이른바 '북방영토'), △중국과 다투는 가운데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심의회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표현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영유권 주장을 좀 더 길게, 그리고 분명히 서술하라'고 주문했다.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일본 일선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반발로 후소샤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는 낮은 채택률로 퇴출됐지만, 제조사 상표만 바꾼 비슷한 색깔의 또 다른 교과서들이 잇달아 나와 일본 우경화의 흐름이 대세임을 보여준다.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로 '그림자 정부'라는 소릴 듣는 '일본회의', 일본 정부의 문부과학성 관료들은 서로 손을 잡고 각 지역의 교육위원회와 교과서 채택위원회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등등한 기세로 말미암아 검정을 통과해야 하는 일본 교과서 필진들의 글에서 반성적인 논조가 사라졌다.
이런 흐름 속에 예전과는 달리 일본 극우파들은 눈치 보지 않고 설쳐댄다. 지난날 일본이 저질렀던 가해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제대로 담은 교과서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는데도) 극우파들의 극성스런 공격의 표적이 된다. 타사 교과서에 견주어 '종군 위안부' 동원을 비롯한 일본의 지난날 전쟁범죄를 상대적으로 길게 다루었던 니혼쇼세키(日本書籍)가 일본 극우파들의 아우성과 압력으로 끝내 문을 닫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른 교과서 회사들은 '니혼쇼세키처럼 되지 말자'며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본 연재 18회 참조). 따라서 '위안부' 성노예에 대한 서술이 아예 없어지거나, 있다 해도 스쳐 지나치는 정도다.
젊은 유권자일수록 자민당 지지율 높아
지난 글에서 2006년 아베 신조가 일본 총리가 되자마자 추진했던 것이 '교육기본법'의 개정이라 했다. '공공의 정신', '전통과 문화의 존중', '우리나라(일본)와 향토 사랑' 등의 내용이 들어간 교육기본법은 무조건적 애국심을 강조한다. 2008~2009년에 개정‧공포된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도 교육기본법의 기본 취지를 반영하도록 했다. 검정 통과를 의식해야 하는 교과서 필자들도 집필 방향에 신경을 써야한다. 교육기본법을 바꾼 목적은 뻔하다. 미래 세대의 역사인식을 일본의 우파 입맛에 맞는 쪽으로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비판적 연구자들은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여긴다.
[(교육기본법이 시행되고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공적인 역사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제국주의 역사관, 그리고 반성하지 않는 역사관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우리나라 일베와 같은 '넷우익'이 굉장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흐름과 경제 불황이 어우러지면서 일종의 파시즘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그런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이 참 무서운 점이다] (이영채·한홍구, <한일 우익근대사 완전정복> 창비, 2020, 93쪽).
옮긴 글 끝에 나오는 '무서운 점'이란 일본 젊은이들의 보수 우경화 흐름이다. 이영채(게이센여학원대교수, 동아시아국제정치), 한홍구(성공회대교수, 한국현대사)는 정치적 보수화 흐름이 지금 일본의 젊은 층에서 '굉장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일본 선거에서 20대 유권자들의 자민당 지지율이 40~50대의 지지율보다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 젊은 층의 투표성향이 지금처럼 자민당에 쏠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 일본 총선에서의 세대별 특징은 젊은 유권자일수록 자민당 지지가 높은 성향을 보여왔다. 인터넷을 이용한 '넷우익' 유튜버들이 생계를 꾸려가는 것도 일본의 보수 우경화 흐름 덕이다. 이들의 단골 구호는 '일본은 잘못한 게 없다',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사과할 필요도 없다'는 따위다.
'일본은 민주화됐다고 말할 수 없다'
이 글 맨 앞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세종대교수, 정치학)가 일본 젊은이들이 과거사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지도자들과 그들이 해온 교육' 탓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었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인 가토 게이키(히토쓰바시대학교수, 조선근현대사)도 호사카 교수와 같은 생각이다.
가토 교수는 일본인들이 과거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은 일본 정치권의 보수 우경화 흐름과 더불어 과거사를 공부할 여건이 안 돼 있는 탓이라 지적한다. 아울러 그는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과거사를 잘 모르거나 잘못된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기에, 한국과 한국인을 겨냥한 혐오 발언을 일상적으로 마구 내뱉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일본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많은 사람에게 조선침략사나 식민지 지배사, 하물며 한국의 주체적인 역사상을 알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적다. 그 이유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일본정치 및 사회에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사회에서는 식민지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결여뿐 아니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이들조차 있다.](도쿄역사과학연구회,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 어문학사, 2021, 122-123쪽).
1945년 패전 뒤 일본은 군국주의라는 권위적 정치체제에서 민주적 체제로 바뀐 지 80년 가까이 흘렀다. 위의 가토 교수에 따르면, 전후 일본이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는 지난날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그에 따른 전쟁범죄 행위들이야말로 '근대 일본에 의한 최대급 인권억압'이었다고 여긴다(앞의 책, 123쪽).
안타깝게도 일본의 현실은 가토 교수가 말한 일본의 '최대급 인권억압' 실태를 솔직하게 교과서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청산 없이는 일본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교과서 왜곡은 보수정당 장기집권 노린 포석
이제 글을 매듭지어야겠다.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흐름과 더불어 극우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가주의와 이른바 '황국사관'(皇國史觀), 그리고 배타적인 영토 확장 야욕이 교과서 안에 갈수록 스며드는 모습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지난날의 침략전쟁을 왜곡 미화하고 일왕(일본인들의 '천황폐하')이 중심이 된 군국주의를 자라나는 세대의 머릿속에 심어준다.
일본의 자민당을 비롯한 우파 정치권이 교과서(특히 역사교과서, 사회교과서)에서 왜곡된 역사를 담은 내용으로 채워 넣으려는 움직임은 무엇을 노리는 그러는 것일까.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참교육?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미래의 유권자들에게 극우적 역사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보수 우파의 집권 체제를 오래오래 다져나가겠다는 장기 포석이 깔려 있다고 보인다. 곰곰 생각해보면 전율이 느껴지는 전략이다. 바로 위에서 살펴보았듯, 이미 선거에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로 대표되는 한국의 '신친일파'는 일본 보수 우익 세력의 주요 해외 협력자다. 치열한 역사전쟁의 공성전 와중에, 안에서 성문을 열어주니 얼마나 고마울까. 이즈음 한일 극우 세력의 기세는 대단하다. 예전과는 달리 눈치 보지 않고 거리낌 없다. 이런 추세라면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과 한국에서의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는 갈수록 더욱 집요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글이 길어져 이번 주에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와 함께 다루려 했던 한국 역사교과서 문제를 다음 주에 싣는다. 민족이냐 좌편향이냐, 친일이냐 반일이냐 등을 둘러싸고 한국에서 벌어진 이념 전쟁은 일본과 여러 가지로 닮았다. 어떻게 닮은꼴인지를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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