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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목사-스님이 '삽질'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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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목사-스님이 '삽질'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홍성태의 '세상 읽기'] '강산의 세계관'을 위하여

2008년 3월 25일, 전국에서 2500명에 이르는 교수들이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를 저지하기 위해 '운하반대교수모임'을 결성했다. '운하반대교수모임'은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대운하 1단계'라고 지적하며 그 중단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2010년 3월 8일, 5명의 주교를 포함한 무려 1106명의 신부들이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의 죽음'이라고 지적하며 그 중단을 촉구하는 선언을 했다. 신부뿐만 아니라 목사, 승려 등 사실상 모든 종교의 수많은 성직자들이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4대강 죽이기'라고 지적하며 그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하늘의 말씀이 온 나라에 울리고 있는 것 같다.

2010년 3월 4일, 서울의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대안'을 주제로 불교환경연대가 주최한 대규모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불교환경연대는 '4대강 살리기'의 단계적 실행과 시범적 실행이라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이것은 이 엄청난 사업을 둘러싼 극단적인 대치를 완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토론회에 연구자이자 토론자로 참여해서 짧은 글을 제출했다. '강산의 세계관'을 복구해서 '진정한 강 살리기'와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자고 제안하는 내용이다. 그 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잠시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서는 교수와 성직자의 반대마저 '무지에 의한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 '불순한 의도의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수천 명의 교수와 성직자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잘못이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싫어해서 '4대강 살리기'를 무조건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4대강 살리기'와 같은 잘못된 사업을 법적 절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강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것이다. 한시바삐 잘못을 바로잡는다면, 반감은 호감으로 급변할 수 있을 것이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 '생명의 강 연구단', '대한하천학회' 등에서 잘 밝혔듯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강행하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의 실체는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살리기'이다. 70퍼센트를 넘는 대다수 국민이 이 사업에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면, 후손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삶도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연의 강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그 선물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고 우리의 마음을 쓰다듬고 우리의 몸을 춤추게 한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흐르게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4대강 살리기'를 어마어마한 흥국의 사업으로 선전하고 있다. 3년 동안 무려 30조 원의 혈세를 투여해서, 수량을 더 확보하고, 수질을 개선하고, 홍수를 줄이고, 지역 발전을 추구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수량을 더 확보할 필요가 없고, 수질을 악화시킬 것이고, 홍수를 늘릴 것이며, 지역 파괴를 야기할 것이고, 경제를 피폐화할 것이며, 고용을 악화시킬 것이므로, 결국 30조 원의 혈세로 개발업자와 투기꾼의 배만 불릴 것이다. 그 돈을 복지, 교육, 문화 등에 써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선진국을 향해 도약할 수 있게 된다.

준설, 굴착, 직강화, 콘크리트 호안, 콘크리트 제방, 콘크리트 댐,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 등 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토건 사업이 '4대강 살리기'의 실체이다. 이 사업들은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면 전혀 필요 없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의 실체는 명백히 4대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해서 '대운하 1단계'를 혈세로 완료하는 것이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 등이 이미 지적했듯이, 만일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대운하 1단계'가 아니라면, 5.7억세제곱미터에 이르는 무지막지한 준설 계획, 무려 19개에 이르는 댐 건설 계획, 그리고 무려 620킬로미터에 걸쳐 강변을 파괴하는 제방 건설 계획 등을 폐기해야 한다.

▲ 소백산에서 발원해 낙동으로 흐르는 내성천. ⓒ프레시안(최형락)

'4대강 살리기'는 사실 5대강 13개 지천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한다. '4대강 살리기'는 사실 '18대강 죽이기'인 것이다. 이 사업은 그 내용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방식의 문제도 너무나 심각해서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환경영향평가와 문화재 지표 조사를 철저히 요식적으로 완료했고,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악하는 방식으로 예비타당성조사도 회피했다. '4대강 살리기'는 국토는 물론이고 제도마저 파괴해서 이 나라를 '껍데기 국가'로 만들어 놓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렇듯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에는 강에 대한 대단히 잘못된 관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첫째, 파편적 관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강을 그저 많은 물이 흐르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물론 물은 강의 핵심이다. 그러나 강이 그저 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에서 들을 지나 바다로 이어지는 지질 구조가 강의 바탕을 이루고 여기에 많은 물이 흐르면서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강이다. 강은 물리적으로 강바닥과 강변과 강물로 이루어지며, 생태적으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생태계로 이루어진다. 파편적 강 관념은 강 파괴의 근원이다. 강의 복합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파편적 관점을 강요하는 것은 강을 죽이고 우리를 죽이게 된다.

둘째, 기능적 관점이다. '물길'과 '물그릇'이라는 말은 그 단적인 예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강을 물길로 생각한다. 강은 물길일 수 있다. 그러나 강은 물길이기에 앞서서 생태계이다. 그리고 자연의 물길과 인공의 물길은 너무나 다르다. 물길이라는 기능을 내세워서 강을 대대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결국 자연의 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또한 강은 물그릇일 수 있다. 그러나 생태계를 그저 그릇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더욱이 물그릇을 넓힌다며 대대적으로 폭파·굴착·준설하는 것은 자연의 강을 더욱 더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셋째, 토건적 관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모든 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일률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강을 파괴하고 개발하면, 모든 생태계가 심각한 교란 상태에 빠지게 되고, 농지와 갯벌에 극도의 혼란이 초래되며, 수질의 악화와 홍수의 증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 자체가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강을 마구 파괴하고 개발하는 것은 막대한 혈세를 탕진하고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는 토건국가의 극단화에 해당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세계적인 경제대국이다. 그러나 사회 질과 삶의 질은 여기에 전혀 걸맞지 않은 상태에 있다. 환경 질은 무려 세계 130위권에 머무는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천민자본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토건국가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돈 많은 못 사는 나라'가 되었다. 토건국가를 개혁하고 탕진과 파괴에 사용되는 혈세를 복지에 사용한다면, 한국은 아마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돈 많고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파괴적인 토건국가를 개혁하고 생태적인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선진화'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강 관념을 깊이 성찰하고 올바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 총체적 관점이다. 강은 단순히 많은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강은 강바닥과 강변과 강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세 요소를 모두 올바로 인식하고 보호해야 한다. 또한 모든 강은 산에서 시작해서 바다로 흘러든다. 따라서 우리는 산과 들과 바다를 하나의 연결체로 파악해야 한다. 진정으로 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과 들과 바다를 살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콘크리트 호안과 콘크리트 댐으로 강을 대대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사실 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강의 변형은 극히 조심해서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생태적 관점이다. 강은 다양한 지질 구조에 근거한 극히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강은 미생물, 수초, 풀, 나무, 벌레, 물고기, 조개, 거북, 수달, 새 등 수천 종류의 수천만 개체가 너무나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는 생태계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강 생태계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단순히 강물을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원천으로서 강물을 먹고산다. 서울의 한강이 잘 보여주듯이 생태계가 파괴된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며, 그 물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강은 언제나 강 생태계로 존재해야 한다. 서울의 한강은 강이 아니라 인공 수로이다. 콘크리트 호안을 걷어내고 수중보를 철거해야 서울의 한강은 강으로 복원될 수 있다.

셋째, 인문적 관점이다. 강은 단순히 우리의 생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우리는 강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깊은 위안을 얻기도 하고, 영혼의 각성을 이루기도 한다. 강은 문명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문화의 근원이다. 오늘날과 같은 생태위기의 시대에 자연의 강과 어우러진 문명과 문화를 이루는 것은 절박한 시대의 요청이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강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다. 모래와 자갈과 수초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강은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지만, 일률적으로 직강화되고 콘크리트 호안과 콘크리트 댐으로 갇힌 삭막한 인공 수로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본래 우리는 '강산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선조들은 강산, 산하, 산천 등의 말로 이 세상을 뜻했다. 여기에는 사실 깊은 생태학적 인식이 담겨 있다. 우리는 강에 의지해서 살아가며 모든 강은 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강이 생명의 원천이라면, 산은 강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강산이라는 말에는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엄청난 물리력으로 무장한 근대의 자연과학이 이 생태학적 강 관념을 파괴하고 파편적이고 기능적이며 토건적인 강 관념을 널리 퍼트렸다. 개발독재를 통해 형성되고 민주화에도 더욱 확장된 토건국가는 이 후진적인 강 관념을 올바른 것으로 치장하고 강요했다.

이제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나라의 '진정한 선진화'를 위해 강 관념의 '진정한 선진화'를 추구해야 한다. 개발독재를 거치며 파괴되고 이제 '4대강 죽이기'로 질식될 지경에 이른 '강산의 세계관'을 다시 살려야 한다. 독일의 이자르 강 복원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선진국'의 강 복원은 사실상 '강산의 세계관'을 다시금 구현하는 것이다. '강산의 세계관'은 올바른 생태학적 세계관이다. 콘크리트 호안과 콘크리트 댐을 가능한 한 해체하는 것, 직강화한 강을 원래대로 굽이쳐 흐르게 하는 것, 모래와 자갈이 아름답게 되살아나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선진화'를 향한 '진정한 강 살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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