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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엄친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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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엄친아'가 될 것인가?

[화제의 책] <핀란드 교육 혁명>

'엄마 친구의 아들'은 못하는 게 없다. 공부는 늘 전교 1등이고, 집안일도 잘 돕고, 효성은 또 얼마나 지극한지 모른다. 거기다 얼굴까지 잘 생겼다 하니 한 번 만나 보고라도 싶은데, 그는 언제나 낯모르는 '엄마 친구 아들'일 뿐이다.

한국 교육도 어떤 미국인들에게는 '엄친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때문이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오바마는 몇 번이나 한국의 드높은 교육열을 칭찬하면서 미국 교육도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기염을 토했다. 한국 교육의 참상을 날마다 보고 겪는 우리로서는 뜨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즘 핀란드가 각광을 받고 있다. 몇 년 전만해도 그저 '자일리톨 껌'과 '노키아'의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가 공교육의 긍정적인 가치를 거의 완벽하게 체현한 나라로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처럼 야만적으로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우열반이니 국제중, 자사고, 특목고 이런 거 일절 없어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까지 한울타리에서 섞어 키워도, 세계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다고 하니 사람들 입이 쩍 벌어진 것이다.

2000년 이후 세 번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연거푸 최고의 성적을 거둠으로써 핀란드 열풍은 가히 세계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 감동의 크기가 한국만 하진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핀란드 이야기를 하면 폭발적인 반응이 온다. "핀란드로 이민가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에는 핀란드에서!" 운운.

한국 사람의 눈으로 본 핀란드 교육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차에 최근 출간된 <핀란드 교육혁명>(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살림터 펴냄)을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교사, 교육학자, 시민운동가 등 39명이 8박9일간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을 돌아보고 난 뒤 엮어낸 책이다. 그러나 워낙에 짧은 시간 동안의 체류였고 여러 사람들의 글을 묶어내다 보니, 표피적인 관찰을 넘어선 글이 그다지 많지 않고, 또 상당수의 글들이 찬탄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우선,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글(교육학자 박호근, 이윤미, 성열관 교수)의 글을 통해 핀란드 교육이 걸어온 여정과 몇 가지 특징을 요약해 보자.

교육부 장관이 20년간 안 바뀐 나라

▲ <핀란드 교육 혁명>(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살림터 펴냄). ⓒ프레시안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에 인접한 인구 530만 명의 나라다. 스웨덴의 지배를 무려 600여 년간 받았고,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100년 이상 받았기 때문에 민족적 응집력이 강하고, 사회 전반에 권위주의적 성향도 남아 있다. 구 소련과 교역을 하면서도 북유럽식의 사민주의 노선을 따름으로써 이른바 '경계 국가'로 생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이농으로 노동자 계급이 형성됐는데, 사민당은 특히 평등하고 질 높은 공교육 체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사민당은 1960년대 중반에 들어와 11~12세부터 이미 아이들을 문법학교와 공민학교로 나누어 각각 별개의 사회 계층으로 분리시켜오던 것을 과감히 개혁하여 '종합학교'라는 통합 학교에서 골고루 섞어 9년간 의무교육을 받게 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 틀을 바탕으로 지난 40여년간 점진적으로 개혁이 이루어져, 1970년대에는 노동조합이 지역 단위의 교육 과정 편성에 참여하는 전통이 확립되었고, 교사 양성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하여 오늘날 핀란드 교사들이 높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학교 교육의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셋으로 나누어지던 능력 집단 편성을 없애고 완전히 평준화된 체제를 확립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학교에 대한 감사와 장학조차 폐지하여 교사와 학교에 완전한 자율권을 부여했다.

오늘날 핀란드의 교육 체제는 우리로서는 감탄사가 나올 만하다. 취학 전 프로그램 비용을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며, 조기 교육은 시키지 않는다. 초등학교부터 철저히 개별화된 지도가 이루어져 아이들의 장점도 단점도 조기에 발견한다. 한 학급 안에서 여러 집단을 편성하거나, 교사 1명과 보조교사 1명이 함께 수업을 진행하고, 뒤처지는 아이를 따로 보살피는 집단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며, 학년 없이 아이들의 흥미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여 과정을 이수하게 하는 등 대단히 유연하게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국가가 정한 성취 기준만 있을 뿐, 우리 같은 일제고사도 성적 공개도 전혀 없고, 석차를 매기는 일도 없다. 교원 평가도, 학교 평가도 일절 없고 3년에 한번씩 15쪽 짜리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모든 학교 평가는 종료된다. 핀란드의 조세 부담률은 43퍼센트로 24퍼센트인 우리나라에 비해 두 배에 가깝지만, 국가 청렴도가 세계 1위인 이 나라에서 조세 저항은 대단히 미미하다.

우리는 1년에 몇 번씩 교육부 장관이 갈아치워지기도 하는데, 핀란드에서는 20년간 사민당 소속 에르키 아호(Erkki Aho) 한 사람이 교육 정책을 이끌어왔다. 그가 지적하듯 "모두에게 동일한 기초 교육, 우수한 교사와 교사 교육, 지속성 있는 리더십, 교육 혁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 유연한 책무성과 신뢰의 문화"가 오늘날의 핀란드 교육의 대성공을 이루어냈다.

핀란드 교육의 빛과 그늘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엄친아'는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고, 열등감만 깊어질 뿐이다. '핀란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대목에서부터 우리는 면밀해질 필요가 있다. 배울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핀란드의 현재가 아니라 그들이 걸어온 '과거'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핀란드 교육의 긍정성만큼이나 그 '그늘'까지 동시에 살펴야 한다.

이 책에는 "환상적인 사회 복지와 신비롭기까지 한 교육 복지를 이루어낸 나라"라는 찬탄도, "핀란드는 진정 천국임이 틀림없다"는 발언도 거침없이 나오지만,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살피는 대목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핀란드와 우리는 너무나 멀다. 100년이 넘도록 활동해온 사민주의 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좌·우파의 세력 균형과 사회적 대타협의 경험도 없다.

그들에게는 없는 분단과 끔찍한 내전의 경험이 있을 따름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그들의 절반 수준인데, 국가 예산의 3분의 1을 국방비로 지출한다. 이 땅의 언론이란 어떻게든 학교끼리 경쟁시키고 성적 공개해서 서열 매기는 일에는 귀신처럼 달려드는 조·중·동 류의 목소리가 드높다. 최고위급 교육 관료들, 일선 학교의 관리자들 대다수는 여전히 "우리는 경쟁이 부족하니, 초등학교부터 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정택 류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이 책에서 서술되고 있는 핀란드의 '과거'는 전직 국가교육청장 에르키 아호와 일본인 교육학자 후쿠다 세이지의 논의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10여 편의 글 중에서 오직 두 사람(성열관, 송순재 교수)만이 핀란드 교육의 그늘까지 두루 살피고 있다. 송순재 교수의 문제 제기를 읽어보자.

PISA는 OECD에 의한 평가 체제로, 여기에는 산업과 경제에 대한 관심사가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독해력과 수학, 과학이 평가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 과목이 기본적 중요성을 갖기는 하나, 교육은 그런 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 실제 국제 관계에서 핀란드는 경쟁적 관심사를 짙게 배어낸다. 현재 도달한 수위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도처에서 감지할 수 있다. (…) 핀란드 학교를 돌아보던 중 어떤 대목에서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핀란드 학교들이 보이는 우수한 학력은 어느 정도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육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 이것은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그리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라인하르트 칼의 지적과도 무관하지 않다.

핀란드의 공교육 체제는 대단히 훌륭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가 침입하기 이전 대부분의 유럽과 북미 국가에서 이미 확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핀란드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대다수의 나라가 이를 거꾸로 되돌리는 가운데서도 기존 체제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10년간 세계 1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1등에 주목하게 되면, 결국 세계 1등이라는 틀 안에 스스로 갇힌다는 것, 그리고 '1등의 의미'에 대한 온당한 성찰까지 거세하게 된다.

핀란드가 준 감동에 흠뻑 젖어있는 분께는 충격적이겠지만, 이 책에 실린 성열관 교수의 글에는 핀란드 교육과 관련한 꽤 중요한 사실도 언급된다. 핀란드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교사-학생의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페인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격차가 나고 있다는 점이다.

송순재 교수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핀란드 학생들의 '알코올 중독' 현상이 광범위하다든지, 학생 자살률이 경보 수준으로 높은 문제도 지나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실들이 어디에 잇닿아있는지 그 연원을 살필 때, 핀란드 교육의 전체상이 분명하게 규명될 것이다.

핀란드는 '엄친아'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PISA에서 다루지 않는 영역들, 이를 테면 핀란드 학생들의 정치의식이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이해가 어떤 수준인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어느 대목에서 핀란드 교사들의 전문성은 높지만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교육은 100년을 내다보는 큰 그림이기도 하지만, 한 명 한 명 아이들에게는 그 순간순간의 일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핀란드를 바라보며 한걸음씩 전진해서 몇십 년 뒤에 반드시 그 자리에 도달해야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 이 나라의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그 처참한 고통을 누그러뜨려줄 중요한 교육적 상상력의 한 계기가 되는 것만으로도 핀란드 교육은 대단히 소중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당장, 올 7월로 다가온 일제고사와 학교별 성적공시를 앞에 두고, 그 '성적' 좋아하고 '경쟁력' 좋아하는 분들께, 세계에서 제일 공부 잘한다는 핀란드에서는 일제고사 일절 없고, 성적 공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는 사실만이라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핀란드는 '엄친아'가 아니라, 이 혼곤한 싸움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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