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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최소한의 사과이자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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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최소한의 사과이자 예의다"

[학생도 인간이다] 시간은 아직도 학교만 비껴갔다

지난달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발표했다. 공개된 초안에는 두발 및 복장의 자유,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학습 선택권 보장 등 실제 학생들이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이는 지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제정되는 학생인권조례다.

그러나 조례안은 초안 발표 직후부터 거센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특히 보수 언론은 교내 집회 허용, 두발 및 복장 자유 등 세부적인 조항을 문제삼는 것부터 조례가 제정되면 교권이 추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학생인권조례 자체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선거용 프로젝트 또는 '좌파 교육'을 정착시키려는 프로젝트로 몰아가고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교권 추락, 통제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조례안에 대한 지지율이 낮다. 조례안 심의를 맡을 경기도교육위원회와 경기도의회에서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프레시안>은 현재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 혹은 학생 인권 보장이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현직 교사와 교육 전문가들이 나섰다. 편집자

먼저 사람이 되어라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수업시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나온 인권 만화를 본 적이 있었다. 제목은 '먼저 사람이 되어라'. 만화 속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사람이 아니다. 유일하게 사람 형상을 한 인물은 학교의 담임선생님 뿐.

담임은 아이들에게 수시로 '사람이 되라'며 체벌을 일삼는다.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학생들은 불시로 실시되는 복장 검사며 밤늦게까지 잠을 참아가며 실시되는 야자, 성적에 의해 던져지는 모욕적인 말들을 그저 묵묵히 참아낸다. 왜?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 교실 앞에 떡하니 걸려있는 급훈은 무엇일까?

"대학 가서 사람 되자"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청소년 시절을 보내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이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미성년은 그야말로 '미'성년이다.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존재. 경제적인 자립은 꿈도 못 꾼다. 기본적으로 친구들 만나며 쓸 용돈을 벌기 위해서는 알바(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노동기준법에 정해진 최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성인들이 일하기를 기피하는 각종 3D 파트타임 격무에 시달린다. 대표적인 것이 패스트푸드 체인점, 주유소, 패밀리 레스토랑 등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경우 심지어 손님이 없는 경우 일부러 밖에 나갔다 오도록 하고 그 시간만큼 급여를 주지 않는 편법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며 자본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사회에서 돈이란 인간관계 또는 사회생활과 직결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지지 못한 것은 돈 뿐만이 아니다. 자율형사립고, 특목고에 뒤이어 국제중까지 등장하며 초등학생들부터 '입시' 라는 단어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대학 입시, 고등학교 입시, 중학교 입시, 어쩌면 영어유치원을 대비하는 입시까지 생겨날 지도 모르는 마당에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입시의 노예가 된다.

일제고사가 화려하게 부활한 2008년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컵라면을 간식으로 먹고 밤 10시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다가 어두컴컴한 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은 인권위의 만화에 등장한 그 아이들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언젠가 다가올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인질 삼아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에게 '자유' 그리고 '인권'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그런 것은 그저 입시 지옥에서 살아남아 대학 캠퍼스를 유유히 활보하는 대학생들의 것일 뿐.

▲ 2008년 정부는 전국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르는 형태인 '일제고사'를 전면 재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같은해 3월 진단평가를 보는 초등학생의 모습. ⓒ뉴시스
우리는 지금 행복하고 싶다!!

일제고사로 해직당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중 유독 내 마음을 잡아 끈 것은 청소년 인권 활동가 친구들이었다. 투쟁이란 늘 엄숙하고 진지한 것일줄만 알았던 나에게 그들은 유쾌하고 즐겁고 신나고 발칙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일제고사 무한경쟁, Say NO!' 를 외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만들어갔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것은 프랑스 68혁명의 슬로건이었다. 유예당한 행복을 갈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그들은 진정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내가 그 나이 때 나는 내 행복을 입시에 저당잡히고도 어쩔 수 없다고, 내 힘으론 바꿀 수 없다고 체념하고 살지 않았던가. 그런 나에게 그들의 목소리가 커다란 힘이 되었다.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청소년들도 행복하고 싶다!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길거리로 뛰쳐나온 청소년들과 농성이나 집회를 함께 하며 들은 이야기들은 내가 학생이던 때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고 세상이 나아졌다 해도 그 시간들은 학교만 비껴가나보다. 이미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우리나라에 비준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건만 정작 그 선언의 당사자인 학생들도, 또 그 선언을 지켜야 할 교사들도 인권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

나 또한 교사로서 생활할 때 아이들의 인권을 지켜주자고 생각하면서도 '선생님'이란 이름의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며 알게 모르게 인권을 침해한 적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늘 어른들에게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존재' 라는 세상의 시선에서 온전히 자유로워본 적이 없지 않았던가.

그러나 학교를 박차고 학교 밖의 세상에서 본 청소년들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참 많이 달랐다.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당당하게 세상에 외치고, 주체적으로 활동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이 배웠다. 그들이 늘 말하듯, 나이는 별 것 아니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어쩌면 나이 들면서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때가 더 많지 않던가.

학생인권조례는 최소한의 의무다

청소년들의 인권 활동이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변화는 더디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마침내 진보 교육감의 당선을 지켜보았다. 청소년의 인권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기에 우리는 학생 인권의 발전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노력 끝에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청소년에게도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이 조례는 이미 성년이 되어버린 우리가 그들에게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제껏 짓밟혀온 학생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의 표시이고, 앞으로 자라날 청소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러나 최근 이 조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당연한 의무마저 마치 굉장히 급진적이고 무모한 시도인 양 공격하는 일부 보수 세력의 논리는 그야말로 80년대를 방불케 하는 후진 논리이다. 학생과 청소년의 인권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연구해온 많은 이들의 성과물을 너무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논리로 폄훼하고 있다.

이를테면 '학생들에게 핸드폰을 허용하면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가', 또는 '그래도 교사의 교육적 체벌은 허용해야 하지 않는가' 등의 논리이다. 도대체 '공부에 방해'라는 것은 어떤 방해란 말인가. '교육적 체벌' 의 범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학생인권조례의 수많은 규정 중 몇 가지를 물고 늘어져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는 그들의 행위는 진보 교육감의 당선에 발끈한 한낱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

며칠 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온 활동가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의 내용은 그동안 그렇게 공들여온 조례의 제정이 일부의 비난으로 아예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었다. 수없이 많은 공청회, 토론과 언론 기사화 등을 거쳤지만 단 그 몇 마디의 비난에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고 조례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이 외칠 차례이다. "학생도 사람이다! 학생인권 보장하라!"


최혜원 교사는 2008년 10월 일제고사 대신 학생과 학부모에게 체험학습을 안내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지난달 31일 최혜원 교사를 비롯해 같은 이유로 해임된 다른 6명의 교사들에 대한 징계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항소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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