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못할 것 같던 '용산 참사'가 어떻게 극적으로 타결됐을까. 그간 교섭 주체로 나선 서울시와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는 수차례 물밑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번번이 정부 사과 부분에서 막혔던 게 사실이다. 정운찬 총리가 용산을 방문하기 전, 이미 네 차례 물밑 교섭을 통해 보상 문제의 큰 테두리는 그려졌었다.
▲ 용산 희생자 장례 및 향후 진상 규명 대책 발표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연합뉴스 |
숨 가빴던 교섭, 막판까지 진통
당시 서울시에서 제시한 내용을 보면, 재개발 조합이 사망자 5명 유족에게 각각 보상금 3억 원과 향후 상가 분양권을 주기로 했다. 또 보상을 거부한 용산4구역 세입자 23가구에게 기존보다 50퍼센트 많은 150퍼센트의 영업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체납된 장례비 5억 원은 한국교회봉사단이 제공하고, 삼성물산을 비롯한 시공사가 건설 공사 현장의 '함바 식당' 운영권 2개를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사과와 관련해서 서울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협상은 중단됐다. 정운찬 총리가 용산 현장을 방문한 뒤엔 교섭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12월 15일께 교섭이 재개됐다. 서울시에서 먼저 용산 범대위에 교섭을 제안한 것.
당시 용산 범대위는 "정부의 사과 문제가 교섭에 포함돼 있어야 한다"며 교섭 참여의 전제 조건을 내걸었고 서울시에서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교섭이 타결된 30일까지 총 다섯 차례 교섭이 진행됐다. 하지만 막판까지도 교섭이 타결될지는 불투명했었다.
김태연 용산 범대위 상황실장은 "협상이 진행됐으나 서울시의 입장은 교섭을 중단했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며 "결국 26일께 이런 식으로 한다면 교섭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국 협상 테이블에서 교섭 불가 입장을 밝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서울시였다. 대책위 관계자는 "2010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떻게든 연내에 용산 참사 문제를 매듭짓고 싶었을 것"이라며 "결국 서울시는 전향적인 자세로 교섭에 임했고 교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후 29일 오후 4시부터 30일 오전 6시까지 끝장 협상을 통해 교섭을 마무리지었다.
홍석만 용산 범대위 대변인은 "솔직히 총리의 사과는 정부 측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에 교섭이 깨질 거라 생각했다"며 교섭 상황을 설명했다. 정운찬 총리는 이날 용산 참사 문제에 유감을 표명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일단락된 용산 문제, 하지만 여전히 문제 남아 있어
30일 극적으로 교섭이 타결되면서 용산 참사 문제가 일단락됐다. 보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세부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홍석만 대변인은 "이전에 밝혀졌던 보상안보다는 진전된 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가족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핵심 쟁점이었던 정부의 사과는 받아냈지만 그간 이들이 요구한 다른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산 범대위는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명예 회복 및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재개발 관련 법제도 개선 △전철연과 범대위에 대한 공안 탄압 중단 등을 요구했다.
▲ 용산 참사 현장에 마련된 빈소를 지키고 있는 고 한대성 씨 부인 신숙자 씨. ⓒ프레시안 최형락 기자 |
홍석만 대변인은 "장례식은 치르기로 했지만 용산 참사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다"라며 "철거민 7명이 구속돼 있고 진실 규명은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용산 참사가 해결됐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유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고 이상림 씨 부인 전재숙 씨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있다"며 "진상과 관련해 어느 것 하나 드러난 게 없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김태연 상황실장은 "공권력에 의한 살인의 보상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며 "진상이 규명된 뒤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1심에서 중형을 선고 받은 철거민 7명의 항소심은 1월 6일 시작된다.
범대위 "1월 9일 장례식 치른 뒤에도 사태 해결 위해 노력하겠다"
1년 가까이 미뤄졌던 용산 참사 고인의 장례식은 1월 9일, 서울 시내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장례식은 가족장이 아닌 좀 더 큰 규모의 장으로 진행된다. 김태연 상황실장은 "용산 문제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각계각층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가족장이나 철거민장으로 진행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명동 성당에서 수배 생활을 하고 있는 박래군 용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등도 장례식에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이후 행보는 추후 논의해서 결정할 예정이다. 그간 수배자들은 장례식을 치른 뒤 자진 출두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장례를 치르더라도 용산 참사 1주년인 1월 20일까지는 용산 참사 현장에 마련된 빈소는 그대로 보존한다. 서울시와는 25일까지 정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홍석만 대변인은 "장례식을 치른다 해도 투쟁 주체가 해소되는 건 아니다"라며 "용산 참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범대위는 장례 이후에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뉴타운·재개발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에서는 용산 참사 문제가 사실상 완전히 끝났다고 공표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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