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누가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누가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가

[기자의눈] "학생 인권=좌파 교육"?…<조선일보>의 인권 의식

<조선일보>가 요란하게 들고 나섰다.

이 신문은 지난 19일자 1면에 "전교조 지지로 당선된 경기교육감이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 중고생에 '교내 집회 허용'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어 5면에는 "학생 맘대로 머리 기르고… 학부모는 '학생인권 교육' 받아라?", "교육계 '교내 집단행동 허용땐 공교육 붕괴'" 등의 기사를 연달아 쏟아냈다.

기사에서 문제를 삼는 것은 지난 17일 경기도교육청이 발표한 학생인권조례 초안이다. 총 48조로 구성된 조례안에는 야간 자율 학습에 대한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체벌과 두발 길이 제한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는 지난 4월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이 추진해온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의 논지는 한마디로 '좌파 교육감'이 조례안을 멋대로 만들어 이제 학생들의 집회까지 허용하려 하는 등 '막' 나가고 있다는 것. 더군다나 '학생 마음대로 머리를 기르게' 허락하는 것을 두고 봐서 되겠냐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21일 이 신문은 조례안 제정에 '편향적인 인사'가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김상곤 교육감이 논란을 일으켜 내년 지방선거까지 야권의 지원사격을 업고 쟁점을 삼을 듯 하다"며 조례안 제정 자체를 정치 이슈로 비화하는 태세다.

<조선일보>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자 자타가 한국 보수의 대변자라 부르는 매체다. 그러나 이번 기사들을 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이 신문의 수준이, 더 나아가 한국 보수가 이렇게 저질이었나 싶다.

인권 유린하면서 내놓은 성과? 폭력의 악순환과 최악의 정신 건강

우선 이 신문은 기사를 놓고 봤을 때 인권의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기사의 제목으로 뽑으며 문제삼은 '집회'와 '두발 길이'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자 국제적으로 보장을 명시한 아동의 권리다. 한국의 학교에서 오랫동안 자의적 기준을 갖고 침해했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인간의 권리'인 것이다.

이 신문은 교장들의 우려를 전한다. 박범덕 한국국공립일반계고등학교장회 회장(서울 신목고 교장)은 "자율성도 좋지만 아직은 한마디로 시기상조"라며 "특히 학생회, 자치단체 등 이미 학생들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데도 교내 집단행동을 허용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절차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교장도 "이번 조례가 현실화되면 공교육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며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학교들이 학생의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체벌과 폭력으로 억압하며 이룬 성과는 무엇인가. 짧은 머리의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월등한 지적 성취를 이뤘는가. 그렇지 않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언제나 지적되는 것은 한국 학생들의 심각하게 낮은 학습 흥미도이다.

학생 자치 기구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학생회 활동은 학생에게는 대입 스펙 쌓기의 도구로, 교사에게는 불합리한 결정을 학생에게 강요하는 창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결국 오랜 세월 우리가 목격한 것은 높아져만 가는 청소년의 스트레스, 소통의 단절, 그리고 학교 폭력의 악순환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이 조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 같은 학교 현장의 단면을 드러낸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해 서둘러야 할 과제로 '집단 괴롭힘 금지'를 1순위로 꼽았다. 또 학부모와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는 '각종 고민 상담 등 학생 복지 강화'를 우선 순위로 꼽았다.

▲ 지난 11월 경기도교육청에서 주최한 학생 인권을 주제로 한 학생 공모전 당선작. ⓒ프레시안

'미성숙한 학생'을 대신해 '성숙한 어른'들이 내린 결정은 어떠했나. 과잉 체벌과 성폭력, 금품 수수 등의 비위를 저지르는 부적격 교원 문제는 최근 정부가 법규를 강화하면서 수습에 나설 정도로 이미 학교 현장의 고질적인 병폐다. 심지어 교육 당국은 과잉 체벌을 한 교사를 다시 교단에 서도록 징계 수위를 낮춰주는 일을 거듭했다.

문제는 최근 일제고사가 시행되고 학교의 성적이 공개되면서 이런 경향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 '사육이 아닌 교육을 받고 싶다'는 학생들의 말이 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한 교사·교장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지난 17일 10여 명의 학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일제고사로 인해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며 집단 진정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한국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은 최악을 향해 달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137명의 학생이 자살했다고 밝혔으며, 질병관리본부는 청소년 20명 중 1명 꼴로 자살을 시도한다고 밝혔다. 2009년 통계청은 청소년 사망 원인 2위가 자살이라는 자료를 내놨다.

"내가 당구공인가" 외치는 학생들…<조선>의 반대 근거는 무엇인가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주최로 국회에서는 체벌과 두발 규제 실태를 고발하는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방학 보충수업에 5분 지각했다는 이유로 당구채 100대 체벌을 당하고, '바리깡'으로 머리카락을 잘린 학생들의 사연이 넘쳐났다. "제가 무슨 당구공인가요? 황비홍인가요?"라는 제목으로 전시회 보도 기사를 쓰자 댓글에는 또 다시 "우린 하키채다", "이런 좋은 글에 왜 답글이 없나" 등 청소년의 아우성이 넘쳐났다.

▲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주최한 전시회에서는 방학 보충수업에 5분 지각했다는 이유로 당구채 100대 체벌을 당하고, 바리깡으로 엉망으로 머리카락을 잘린 학생들의 사연이 넘쳐났다. ⓒ프레시안

<조선일보>의 이번 기사는 한국 보수가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즉 국제 기준에서 보면 인권 유린을 옹호하는 최악의 기사다. 실제로 기사에는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의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근거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일부 교장들의 주장을 제외하면 '교육계'라는 이름만 빌려 '좌파 교육감' 때리기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누가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삼으려 하는지.

한가지 더.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에 담겨 있는 건 단순히 학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몇몇 조항만이 아니다. 이 조례에는 '어른'이 참여하는 '학생 인권 옹호관' 제도를 신설하고 20명의 공무원과 주민이 참여하는 경기도학생인권심의위원회, 1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학생참여위원회를 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기자들은 학생 인권 조례안이 영 심기에 거슬린다면 당신들의 의문점이 다 설명돼 있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자문위원회가 만든 10문10답을 정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 바로 가기 )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