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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무너지는 '학생 인권' 보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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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무너지는 '학생 인권' 보호를 위하여

경기도교육청, 국내 최초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추진

학생 인권 침해는 해묵은 문제다. 그러나 학생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막혀 있는, 경쟁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 인권은 사건이 터질 때만 잠깐 언급됐을 뿐, 오랜 묵인 속에 외면돼 왔다.

이런 가운데 조례 제정을 통해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틀을 구체적으로 만드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바로 경기도교육청에서다. 아직 국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학생 인권 조례를 제정한 적은 없었다.

이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교육감 선거에서 공약한 사항이기도 하다. 경기도교육청은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지난 20일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에 관한 중간 보고회를 열었다. 이날은 마침 유엔(UN)에서 아동권리협약을 채택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한국은 1991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학생 인권 조례, 학생을 교육 문제의 주체로 세우는 일"

이날 경기도교육청은 조례 제정에 앞서 인권 실태에 대해 도내 학생, 학부모, 교사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학생 2020명, 교사 586명, 학부모 345명 등 총 29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 학생 94.9%, 학부모 82%, 교사 66%, 관리자 59.4%가 조례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또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해 해결돼야 할 과제로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집단 괴롭힘 금지'를 1순위로 꼽았다. 또 학부모와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는 '각종 고민 상담 등 학생 복지 강화'를 우선 순위로 꼽았으며, 학생은 '두발과 복장 규제 완화'를 중요하게 꼽았다.

초등학생의 경우 심각한 학생 인권 침해 사례로 △언어폭력 433명(12.5%) △집단 괴롭힘 330명(9.5%) △잦은 학교시험 280명(8.1) △벌세우기 264명(7.6%) △신체적 폭력(체벌) 255명(7.3%) △일기장 검사 243명(7.0%)를 꼽았다.

또 중·고등학생의 경우 '체벌을 거의 매일 수시로 경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5.2%, '1주 2회 이상 경험한다'고 답한 비율이 26.4%로 집계됐다. 강제 전학이나 강제 자퇴 등으로 교육권 침해가 발생하는지 묻는 질문에도 58%의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중·고등학생들은 또 30.5%가 '현재 학교운영, 교육환경 등이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편이다'라고 답했으며, 20.3%가 '인권을 매우 많이 침해하고 있는 편'이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가고 싶은 학교가 되기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로 △두발규제 △복장규제 △야간자율학습 등 강제 과잉학습 △단체기합 및 체벌 순으로 꼽았다. 또 학생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시경쟁 해소 △방학 중 보충수업 및 자율학습 선택권 보장 △학교 의사결정 참여 보장 △학생선도(징계)에서 공정성, 변론권 강화 △급식 질 개선을 위한 의견개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 유엔(UN) 아동권리협약 채택 20년을 맞았던 지난 20일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경기학생인권조례 중간보고회가 열렸다. 이날 학생 인권을 주제로 한 공모전 당선작도 발표됐다. ⓒ프레시안

한편, 교사들 가운데에는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의 실시가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97.1%인 반면, 절반이 넘는 53.8%가 '학교에서 인권 교육을 실시한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또 정규 수업 외에 특기 적성 수업, 자율학습 등에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96.9%의 교사가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전문가와 현직 교사들로 이뤄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회(위원장 곽노현)'는 이 같은 설문조사 및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조례 초안을 작성해 오는 12월 발표할 예정이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상곤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기본원칙은 '학생은 인권의 주체'"라며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학생을 해결해야 할 교육 문제의 객체가 아닌 문제해결의 주체로서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조례에는 기본적으로 학생 인권과 관련된 선언적 내용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조례 하나 제정한다고 인권 침해가 없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건강하게 조례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세세하고 밀착된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 권리, 놀 권리…" 일본 가와사키시 조례 사례

학생 인권, 또는 아동 인권을 지방 정부의 조례를 통해 보장하려는 움직임은 사실 해외에서는 오랫동안 진행돼 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00년 '학생 안전 및 폭력 방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2007년에는 '학생인권법'을 제정했다. 또 일본은 총 29곳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동 권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단순한 법률 제정 뿐만 아니라 아동 권리 구제기구를 설치해 적극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는 '옴부즈만(옴부즈퍼슨)'이다. 캐나다는 8개 주에 아동 옴부즈만이 설치돼 있으며, 미국 미시건 주, 일본 가와사키시에도 같은 제도가 마련돼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0년 가와사키시가 최초로 아동 인권 조례인 '가와사키시 어린이 권리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20일 경기도교육청에는 당시 조례 제정을 맡았던 일본 가와사키시 아동권리위원회 위원단이 방문해 자신들의 경험을 소개하며 학생 인권 조례 제정에 관한 조언을 나눴다.

일본에서 '아동 권리 조례'를 제정하게 된 동기 역시 집단 따돌림, 이지메 문제였다. 그러나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임에도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은 갈등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놨다.

아라마키 시게토 아동권리위원회 위원장은 "'무슨 아동의 권리냐, 의무는 어디로 갔냐'라는 식의 문제제기가 많이 있었다"며 "오해를 풀기 위해서 많은 홍보와 설득, 200번이 넘는 회의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례 제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은 바로 아동과 청소년이었다. 아라마키 위원장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조례의 내용은 획기적으로 변했다"며 무엇보다도 이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가와사키시 조례는 △안심하고 생활할 권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 권리 △자신을 지킬 권리 △놀 권리 △스스로 결정할 권리 △참여할 권리 등 독창적인 권리 보장 내용이 담겨있다. 또 가와사키시 아동회의를 설치해 80여 명의 아동이 정기적인 회의를 열도록 주선하는 한편, 공개 모집한 시민을 포함한 10명이 참여하는 아동권리위원회를 두고 시의 다양한 정책을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조례 제정 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라마키 위원장은 "변화를 확연히 느끼진 못했지만, 조례를 통해 다양한 회의 구조가 확립됐다"며 "회의와 참여를 통해서 학교가 조금씩이지만 인권친화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조례를 위반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아라마키 위원장은 "교사를 제재하는 일은 애초부터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교사에 대한 제재는 다른 법률으로도 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아동에 대한 구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권리를 침해받은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인권옴부즈퍼슨 제도는 조례 제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며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 쉽게 옴부즈퍼슨에 접근하도록 하고, 최선을 다해서 아동을 보호, 구제, 치료까지 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가와사키시에는 아동 권리와 남녀 차별 문제를 담당하는 2명의 인권옴부즈퍼슨이 3년마다 위촉된다. 자신의 인권 침해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인권 침해에 대해 인권옴부즈퍼슨에게 권리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

아라마키 위원장은 "즉 조례를 움직이는 것은 벌칙이 아니라 모니터링과 감시, 그리고 인권옴부즈퍼슨 같은 구제 제도의 확립, 그리고 협의체"라며 "가와사키시는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지금까지 조례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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