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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오 前 두산 회장의 자살이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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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용오 前 두산 회장의 자살이 남긴 숙제

한국 '재벌왕조'의 왕위 계승 다툼, 원인은 '폐쇄적 가족경영'

한국 재벌 특유의 폐쇄적 가족 경영 승계가 비극을 낳았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을 자살로까지 몰고 간 비극의 근본 원인에는 '올 오어 낫씽'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제왕적 혈연지배 구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제왕적 자리를 놓고 형제간에도 전쟁과 다름없는 경쟁을 치러야 했던 곳은 비단 두산그룹만이 아니다. 가까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형제간 분쟁으로 여전히 내홍을 겪고 있다. 한 때 한국 최고의 재벌로 군림한 현대그룹도 같은 이유로 그룹이 쪼개지고 말았다.

대주주 지분 승계와 경영권 승계를 분리해야만 이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오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가족경영'

4일 오전 8시 32분, 한 때 한국을 대표하는 중공업그룹 두산을 손바닥 위에서 주물렀던 박용오 전 회장이 향년 73세의 나이로 성북동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박 전 회장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은 그가 두산가에서 제명당하게 된 이른바 '형제의 난'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05년 10월 24일, 동생들의 비자금 문제로 검찰에 소환된 고 박용오 회장. ⓒ연합뉴스
두산그룹은 장자승계가 일반적인 보통의 재벌그룹과 달리 형제 경영을 원칙으로 했다. 박 전 회장은 1998년 형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뒤를 이었고, 그의 뒤는 아들(박경원)이 아니라 동생 박용성(3남), 박용만(5남)로 이어졌다.

2005년 문제가 터졌다. 그해 7월 17일, 박용곤 명예회장은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 경영권을 박 전 회장(당시 명예회장)에서 박용성 회장에게로 넘겨주기로 했다. 엄연히 주식이 공개된 상장회사의 지배권이 불과 몇 사람만이 모인 가족회의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에 반발한 박 회장이 사실상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두산산업개발을 계열분리해 자신에게 달라고 했으나, 그마저 거절당했다. 그는 나흘 뒤인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동생들을 검찰에 고발한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현 그룹 회장)이 17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밀반출했고, 이 사실을 내가 알게 되자 둘이 공모해 나에게서 경영권을 빼앗아갔다"라고 말했다. 그룹 지배권을 놓고 형제가 물러설 수 없는 다툼을 벌이게 된 셈이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그룹에 대한 반역자"라는 극한 표현까지 쓰며 박 전 회장을 집안에서 제명시켜버렸다. 검찰수사 결과 326억 원의 비자금 조성 사실이 확인됐고 박용성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용만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각각 선고됐다. 사실상 형의 패배였다.

박 전 회장이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라고 할 두산산업개발 계열분리 주장까지 한 까닭은 4세 경영 승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아들이 맡은 회사(전신전자)는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하는 마당에 동생들의 그룹 내 위상은 날로 커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조카들의 비중도 늘어만 갔다. 4세 경영 구도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한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박 전 회장이 계열분리 주장까지 하게 된 셈이다.

박 전 회장의 말로는 고달팠다. 한 때 한국의 재계를 뒤흔들던 '제왕'은 중견기업 성지건설을 이끄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자리로 물러났다. 이에 더해 지난해 7월에는 차남(박중원)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뒤이어 9월에는 어머니 명계춘 여사가 타계했다.

이런 인간적 아픔을 겪은 후인 지난해 10월, 박 전 회장은 지난 2~3월에 걸쳐 갖고 있던 두산 지분 10여만 주를 모두 판 사실이 확인됐다. 동생들에 의해 집안에서 제명당한 그가 더는 두산그룹으로 돌아갈 자리를 찾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는 경제위기로 회사가 휘청이는 모습을 지켜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등졌다. 가족경영, 얼핏 좋은 말처럼 들리는 이 단어는 결국 옛날 왕조시대에 왕권 세습을 위해 형제간 목숨을 건 투쟁까지 불사해야했던 피로 덧칠된 말이었을 뿐이다.

▲ ⓒ뉴시스

현대, 금호아시아나도 형제간 '무한 투쟁'

비단 두산그룹만이 이런 문제를 거친 것이 아니다. 두산과 마찬가지로 형제경영을 자랑으로까지 포장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산그룹과 마찬가지로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뒤를 이어 네 아들이 경영권을 차례대로 승계했다. 형제들은 65세가 되는 나이에 경영권을 동생에게 물려주는 특이한 원칙마저 지켰다. 순서대로라면 장남 박성용, 차남 박정구 전 회장의 뒤를 이은 삼남 박삼구 회장이 내년에는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줘야 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은 지난 7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동생을 금호석화 대표이사 자리에서 축출하고, 자신은 경영책임을 져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동생은 이에 반발, 지난 9월 1일 형에게 법적 책임을 물으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 형제가 다툰 원인도 결국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욕심에서 비롯됐다. 박찬구 회장과 아들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은 지난 6월부터 금호석화 주식을 꾸준히 매입, 형제(박삼구, 박찬구)가 동일한 비중을 갖고 있던 금호석화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형제계승 원칙을 깨뜨리고 아들의 지배력을 보다 강화하려는 이유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실상 금호산업과 금호석화 등 두 개의 지주회사 체제로 움직이는 회사였다. 이번 지분 변경으로 박삼구 회장 일가는 금호산업을, 박찬구 회장 일가는 금호석화-금호타이어로 이어지는 석유화학 계열에 대한 지배력을 키웠다. 4세 경영으로 이어지며 '내 아들에게는…'하는 승계 욕심이 형제간 분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2000년 5월 31일, '왕회장'으로 불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아들들의 분쟁을 지켜보다 계동 사옥에서 부자 동반퇴진이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그러나 왕위를 놓고 다투던 아들들은 끝내 갈라섰다. ⓒ연합뉴스

이런 그룹 분쟁사의 대표격이 '왕자의 난'이라고까지 불린 현대그룹 지분 쪼개기다.

당시 자동차·건설·전자·금융·중공업·조선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 한국 산업을 지배했던 현대그룹을 이끌던 고 정주영 회장의 뒤를 잇는 후계구도를 놓고 아들들은 지난 2000년 극한 투쟁을 벌였다.

지난 2000년 5월 31일, 노환(당시 85세)으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왕회장(정주영 당시 명예회장)'은 자신은 물론, 사실상 현대호를 이끌던 정몽구 당시 현대자동차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까지 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대주주인 총수일가는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이양하고 이사회 권한을 강화한다는, 사실상 '왕권 해체' 선언과 마찬가지였다.

사남 정몽헌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룹회장 직함을 버리고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의 중추인 현대아산 회장직만 유지했다. 그런데 차남 정몽구는 이에 반발, 아버지와 동생이 가진 자동차 계열사 지분 매각을 요구했다. 이사회의 지배를 받게 될 '현대왕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왕자의 난 끝에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당시 그룹은 외환위기로 인해 중추인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등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정몽헌은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에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경영권을 내준데다, 동생인 정몽준(현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중공업그룹마저 내주면서 뼈만 남은 현대그룹을 이끌게 된다.

"비극 해결책은 지배구조 개선"

▲지난 7월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퇴진 기자회견을 가졌다. 아들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형제간의 다툼이 그룹 경영권 구도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연합뉴스
현대그룹은 형제경영을 했던 두산, 금호아시아나와 달리 사실상 장남이 왕권을 승계받는 왕조시대 모습을 그대로 띠고 있었다. 아버지가 차남(장남 정몽필은 교통사고로 일찍 사망)에게 왕권을 물려주지 않으면서 분쟁이 일어난 모습은 정상적인 주식회사가 아니라 중세시대 왕조의 왕위 승계와 같다.

세 그룹의 공통점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모두 그룹 전체를 좌우하는 지배권을 폐쇄적인 가족 회의로 물려주는,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로 경영권을 이양하려 했다. 모든 분쟁의 씨앗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비단 이들 그룹만이 아니다. 국내 재벌그룹 전부가 이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즉, 박용오 회장의 자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다른 그룹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얘기다.

재벌그룹 지배구조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한 기업집단의 최고경영자 자리가 실질적으로는 소수 지분만을 가진 창업자 가족들의 회의로 결정된다는 게 문제"라며 "주주총회 등 객관적인 평가 근거가 마련된다면 박용오 회장의 경우처럼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금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주주와 종업원, 고객 등이 함께 만드는 회사를 총수일가가 2세 경영을 넘어 3세, 4세로까지 왕권처럼 지배권을 승계하려는 욕망이 문제"라며 "대주주로서 역할과 최고경영자의 역할의 괴리를 하나의 권력으로 합치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라고 언급했다.

박용오 전 회장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사실은 다시는 생겨나서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재벌일가가 이런 비극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느냐는 곱씹어볼 일이다. 이는 재벌그룹 지배가 곧 경제계는 물론, 사회·정치 등 각 영역에 막강한 권력구축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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