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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이 '정명박'이 되지 않으려면…"

[홍성태의 '세상 읽기'] 아직은 그를 믿고 싶다

총리를 포함한 6명의 장관이 교체되었다. '방통대군', '운하장관', '개발장관', '세뇌장관' 등을 그대로 두고 이루어진 중폭의 개각이니 애초에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강만수 씨의 화려한 복귀로 대표되는 청와대의 회전문 인사에서 이미 충분히 예감되었던 것이었지만 개각의 폭과 내용은 정말 지극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통 대통령'의 면모를 다시 한번 유감없이 과시한 것 같다.

한나라당은 그토록 고대하던 의원들의 입각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상당히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주호영 의원이 맡기로 된 특임장관이라는 자리는 대체 뭐하는 자리인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인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는 노동운동을 더욱 더 탄압할 것 같고, 박근혜 의원의 오른팔인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 후보는 아무래도 '토건경제부' 장관이 될 것 같다.

아무튼 한나라당을 위한 개각일지는 몰라도 이 나라를 위한 개각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뚱맞다는 평을 받는 백희영 여성부장관 후보, 이상희 전 장관의 직계로 분류되는 김태영 국방부장관 후보, 고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더 눈에 띄는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 등도 역시 희망의 개각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정운찬 총리 후보자. ⓒ프레시안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역시 정운찬 총리 후보의 지명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고심 끝에 정운찬 씨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는 것도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지만,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정운찬 씨가 총리 후보의 지명을 적극 받아들였으며, 나아가 기자회견에서 전혀 뜻밖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을 살펴보다가 나는 문득 "정운찬이 아니라 정명박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그의 발언은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다. 그의 발언을 보면 그를 이명박 대통령의 대항마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잘못을 해도 너무나 큰 잘못을 했던 것 같다. 그의 발언은 정말 '정운찬이 아니라 정명박이었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정운찬 총리 후보의 말에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다음의 세가지였다. 첫째, 그는 "대통령을 보필해서 경제를 살리고 사회 통합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이명박 대통령처럼 소통을 강경히 거부하는 사람을 보필해서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둘째, 그는 경제 정책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보니 "경쟁을 촉진하되 뒤쳐진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배려를 하겠다는 점에서 같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의 양극화 정책을 극렬히 강행하고 있다. 정운찬 후보도 정말 이런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가 과연 '케인스주의자'가 맞는가? 셋째, 그는 "4대강 살리기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월 6일에 그는 '녹색 뉴딜'은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는 '4대강 살리기'가 '녹색 뉴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정운찬 총리 후보는 경제학자이다. 그것도 이 정부와는 가장 크게 대립하는 '케인스주의자'로 유명한 경제학자이다. 이 정부는 무슨 학파를 따지기는 어렵고 그저 '강부자 토건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경제 정책에서 최상층 부자인 '강부자'의 요구를 최우선으로 다루고, 그 수단으로서 막대한 재정의 탕진과 소중한 국토의 파괴를 자행하는 토건국가의 극단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총리 후보로 지명되기 전에 정운찬 교수는 이러한 '강부자 토건파' 경제 정책에 대해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전문적 비판자였다. 그런데 총리 후보로 지명되고 그의 생각은 급변한 것 같다. 학문을 왜곡해서 세상에 아부한다는 뜻의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당장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람들의 생계비조차 빼앗아서 강 죽이기에 퍼붓겠다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는 참담한 상황이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왜 정운찬 씨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을까? 그는 분명히 한승수 전 총리보다는 훨씬 능동적으로 총리직을 수행할 것이다. 전두환을 돕는 것으로 권력의 단맛을 보기 시작한 한승수 전 총리는 본인의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뿐만 아니라 아들의 병역과 관련해서도 심각한 의혹을 빚어냈다. 나아가 한 전 총리는 IMF사태와 관련해서 커다란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자 2008년의 경제 위기와 관련해서도 역시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한 전 총리에 대해서는 비민주 권력과 아주 친했으나 능력은 몹시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정운찬 씨는 여러 면에서 아주 높은 명망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은 어수선한 충청도의 민심을 다잡는 동시에 개혁층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을 것이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씨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은 그가 늘 강력히 추구하는 '이미지 정치'의 연장선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강부자'와 '고소영'의 이미지를 해소하고 싶어하며, 그 대신에 더 많은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중도실용'과 '친서민'의 이미지를 확립하고 싶어한다. 여기에 충청도 출신의 케인스주의자이자 서글서글한 외모와 말투를 갖춘 정운찬 씨가 아주 맞춤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그런데 이런 정도는 정운찬 씨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자신의 학문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총리 후보의 지명을 거부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최소한 '강부자 토건파' 경제 정책에 대해 한 마디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의 발언은 그의 학문과 명성을 총체적으로 의심하게 하는 '항복선언' 혹은 '변절선언'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부자 토건파' 경제정책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 정책실장, 강만수 경제특보를 통해 계속 강행될 것이다. 반케인스주의자의 양극화와 토건화가 그야말로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운찬 씨는 어떻게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정년을 2년밖에 남겨 놓지 않은 그가 자신의 '노후용'이 아니라 정말 나라의 '개혁용'으로 총리 후보를 수락했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조만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는 그 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해 그야말로 적확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서 대단히 훌륭한 경제학자의 칭송을 받았던 사람이다. 이 나라의 학문을 위해서도 그는 자신의 학문을 지키면서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을 보필할 것인지를 국민 앞에 잘 밝힐 필요가 있다.

정운찬 씨가 그토록 강력히 비판했던 '녹색 뉴딜'의 대표사업인 '4대강 살리기'가 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녹색 뉴딜'의 예산 중에서 36%가 '4대강 살리기'에 투여되고, 일자리 창출 목표의 30%를 '4대강 살리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녹색 뉴딜'에는 반대하면서 '4대강 살리기'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는다고 하기 어렵다. 정운찬 씨가 학자로서의 명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총리로서의 그의 미래도 극히 어두울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는 어제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붕어과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변절을 밥먹듯이 하면서 스스로는 그것을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학자로서의 명성이 높았던 정운찬 씨는 이런 정치인들과는 분명히 달라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도 확고한 인식과 결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을 죽이고, 서민을 죽이는 '4대강 죽이기'를 막고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답을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하는 케인스주의자의 경제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정명박'이 아닌 '정운찬'으로서 이 나라의 '진정한 선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의 발언은 이미 극히 경악스럽고 실망스러운 것이었지만 아직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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