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준 정치인'이었다. 2007년 대선 때 정계에 뛰어들려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포기 했던 사람이다. 그의 변신은 쉼표를 마침표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이명박 정부 총리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그를 정치인으로 설정해 놓고 보면 헤아릴 수 있다. 2007년 대선 때 반 이명박 진영에 서려고 했던 행적과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가 그랬다. 2007년에 정계 입문을 저울질할 때 충청을 유독 강조했다. 충청이 나라의 중심이라며 향우회 등을 찾아다녔다. 분명했다. 충청을 자신의 정치적 지역기반으로 삼고자 했다. 그의 이런 전력에 작금의 상황을 대입하면 대충 계산이 나온다.
지금이 기회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무산된 후 지역 정치는 요동치고 있고 지역 민심은 들끓고 있다. 이런 때에 그가 중앙정치 무대에 진입하면, 그래서 행정복합도시 문제를 해결하면 어렵지 않게 안착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행정복합도시 해결 열쇠를 건네받아 자물쇠에 꽂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곧추 설 수 있다. 충청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세울 수 있다.
그가 충청을 확보하기만 하면 해볼 만 한 판을 만들 수 있다. 후발 주자의 한계를 딛고 차기 대선에서 해볼 만한 구도를 만들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영남에 가둘 수 있다. 박근혜 대세론의 열쇠가 되는 충청에 빗장을 걺으로써 박근혜 전 대표가 영남발 수도권행 행로의 중간 기착지를 없앨 수 있다.
이러면 이명박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이명박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원조' 계파 인물들과는 달리 자신은 뉴 페이스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니까 밀어달라고 설득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지표만 놓고 보면 경제가 세계금융위기 여파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 총리를 맡게 된다. 실제로 실물경기가 지표만큼 좋아지면, 그래서 국민이 경기 호전을 체감하기만 하면 날개를 달 수 있다. '경제전문가 정운찬'의 '능력'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중도실용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서민 경제를 보듬는 모습을 보이면 '경제'를 자신의 확고한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
이게 이유다. 정운찬 교수가 정계 입문 신고식을 민주당이 아닌 이명박 정부에서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민주당에 몸을 싣는 것보다 이명박 정부와 한 배를 타야 부가가치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
민주당에 몸을 담으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 민주당엔 구심이 없다. 게다가 야권 재편이 어떻게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판에선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정치 번외자였던 자신의 치명적 한계, 즉 조직 기반을 다질 언덕을 확보할 수 없다. 2007년에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도포기 했는데 지금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어찌어찌 해서 충청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더라도 전략적 가치는 떨어진다. 여권 구도에서 향유할 수 있는 만큼의 충청 지분의 가치를 민주당에선 누릴 수 없다.
너무 한쪽만 살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복합 요인이 어지럽게 작동하는 정치판은 더더욱 그렇다. 얻는 만큼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설명해야 한다. 민주당에서 이명박 정부로 유턴한 정치 행보는 둘째 치고라도, 총리직을 수락하기 직전까지 비판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행여 이명박 대통령의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식힐 재간이 없다면 더더욱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자신이 그렇게 비판하던 사업의 총괄 책임자가 된 합당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초한다. 소신 따로 행동 따로의 기회주의적 지식인이라는 비난을 자초한다.
구현해야 한다. 지표에 머물고 있는 경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국민 상당수가 여전히 거두지 않는 '위장 친서민'이란 시각을 불식시키면서 민생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려면 돌파해야 한다. 윤진식-강만수-윤증현으로 촘촘히 짜인 현 경제팀의 두터운 벽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초한다. 학문 따로 실물 따로의 반쪽짜리 전문성이라는 비아냥을 자초한다.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총리직 수락을 정치적 도전으로 간주할 박근혜계의 견제를 극복해야 한다. 더불어 이명박계 내 잠재적 경쟁자들의 견제, 그리고 자유선진당 같은 충청 기반 정치세력의 견제 또한 이겨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초한다. 견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지면 생동하는 현실 앞에선 무력한 허약한 지식인이란 냉소를 자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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