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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대신 건강보험료 감면 택한 정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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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대신 건강보험료 감면 택한 정부, 어떤가요?

[4대강 대신 사회안전망을④] MB정부의 잡셰어링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독일과 한국의 공통점은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유럽지역에서 이번 경제위기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을 나라로 꼽힌다. 올해 2월 기준으로 독일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3.3% 감소했다. WTO가 올해 세계무역이 9% 감소할 것으로 발표한 가운데 OECD는 독일의 2009년 성장률을 -5.3%로 예상했다. 유럽 전체의 성장률(-4.1%)에 비해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미국, 일본, 한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충격을 덜 받고 있다. 독일은 1차와 2차에 걸쳐 1000억 유로(17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독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양책이지만 연간 GDP 대비 1.2% 수준으로 미국(2.0%), 중국(7.0%) 등에 비해 규모가 작다. 국가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당장은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어쨌든 국가 빚으로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일이다.

▲ 년간 GDP 대비 각국의 경기부양책 규모. (자료: DGB(2009))

독일도 실업률이 8.3%(6월)로 늘었지만 증가 속도는 미국에 비해 완만하다. '노동유연성'이 클수록 실업률이 낮다는 것이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이었지만, 이번 경제위기 국면에서 이런 신화가 깨졌다. 노동유연성이 큰 미국은 이번 경제위기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실업률이 증가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7월 9.4%로 경기침체 이전 마지막 정점이었던 지난 2007년 말에 비해 4.5%포인트 올랐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을 독일이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다. 어기구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의 경제위기 대응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독일의 잘 짜여진 사회시스템은 이번 위기 때 자동적으로 각종 복지수당을 지급하게 함으로써 취약계층들에게 소득을 보전해주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직접적으로 덜어주고, 소비를 촉진시켜 경기순환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면서 "수출길이 막힌 현 상황에서 독일의 다양한 사회적 제도들이 내수엔진이라는 새로운 모터를 작동시켜 경기위기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어 연구위원은 "독일의 경기부양책 규모가 미국보다 현저히 적다는 비판도 있으나 이는 사회국가(Sozialstaat)인 독일의 사회보장시스템을 간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감세 대신 건강보험료 감면

사회안전망은 수출길이 막힌 독일이 내수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이라는 탈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2008년 경제위기 이래로 1차와 2차 두 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1차 경기부양책에서 소비심리 개선과 기업들의 투자 진작에 초점을 맞췄다. 수공업자들의 세금공제범위를 기존보다 2배로 인상하고 중소기업들의 투자에 세금 감면 혜택을 줬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2억 유로를 투입해 지역인프라 구축에 힘쓰는 한편 환경친화적 건물 보수사업을 지원하고 세금을 공제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노렸다. 독일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산업 보호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신규차량을 구입한 이들은 1년간 자동차세를 면제받도록 했다.

1차 부양책이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정책들을 모아 놓은 '응급 처방'이었다면, 2차 부양책은 재계와 노조의 치열한 힘겨루기 끝에 나올 수 있었다.

재계는 감세가 경기부양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노조는 취약근로자나 연금생활자 같은 저소득층은 내는 세금이 얼마 없어 세금인하에 따른 혜택이 거의 없다고 맞받아쳤다. 또한 납세자들이 세금인하분을 소비하기 보다는 저축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까지 제기되면서 감세론은 힘을 잃었다.

대신 노조와 사민당이 제안한 건강보험료 감면안이 지지를 얻으면서 2차 부양책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독일 정부는 2차 부양책에 공공의료보험의 요율을 현행 15.5%에서 14.9%로 인하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대신 건강기금에 정부가 올해 30억 유로, 내년에 6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자녀양육보조금의 규모를 확대해 아이 1인당 100유로를 지급하며 6세에서 13세의 어린이를 키우는 저소득층의 자녀수당 역시 인상하기로 했다. 또한 140억 유로를 교육과 교통, 병원, 건물보수와 정보통신 분야에 투자해 사회인프라를 강화하기로 했다.

근무시간 단축 통한 일자리나누기

2차 경기부양책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실업을 예방하기 위한 고용 안정 정책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우선 근무시간을 단축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과 노동자들은 올해와 내년에 부담하는 사회보험납임급의 50%를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또 그 노동자가 직업훈련과정을 이수하면 부담금의 100%를 연방노동청이 내기로 했다. 동시에 연방노동청의 취업알선 담당 직원을 5000명 증원해 고용을 촉진하는 한편 미숙련 및 고령 근로자 직업훈련 프로그램(WeGebAU)에 내년까지 총 4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독일에서 근무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현실적으로 잘 운용될 수 있는 배경에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두터운 신뢰 관계가 깔려 있다. 사용자들은 과거 경험을 통해 경기침체기에 해고보다는 근무시간 단축을 유도하는 것이 숙련인력을 갖추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노동자 역시 사용자가 약속을 지킬 것이란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정부 지원이 경기위기에도 고용 안정에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노사정 모두 구한 폭스바겐의 일자리 나누기)

실제로 근무시간 단축에 동의한 노동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 215만 명에 달한다. 특히 벤츠, BMW 등 세계적인 자동차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근로자가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실업자는 올해 5월 기준으로 345만8000명으로 지난 4월보다 12만7000명이 줄어들었다.

▲ 독일의 폭스바겐은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닥친 위기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전례는 이번 경제위기에서 일자리 나누기가 또 한번의 중요한 위기 대응책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한다. ⓒ뉴시스
노사정 32인의 경제노동정상회의 통해 위기 대응책 모색

또 주목할 부분은 투입되는 돈의 규모를 떠나 경기부양책이 결정되는 과정이다. 정책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노사정이 보여준 대화와 협력의 자세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독일은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경제가 최대 현안이 될 이번 총선을 앞두고 현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이 속한 기민당(CDU)-기사당(CSU)연정을 비롯해 사민당, 좌파당 등 주요 정당들 저마다 사회약자층을 겨냥한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조세개혁과 사회보장세 인하, 최저임금제 도입, 조업단축수당 및 실업수당 지급기간 연장 등 세금과 고용 부문에서 차별적인 정책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이다.

▲ 독일의 경제위기 대응 과정에서 주목할 지점은 노-사-정의 합의를 통해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합뉴스
하지만 정당과 정부만이 경제위기 극복의 주체가 아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1월 1차 경기부양책 의결을 앞두고 독일 경영계와 노조 대표들을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급박한 상황에서 부양책을 준비하느라 의견 수렴이 폭넓게 되지 못한 점에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 열린 2차 경기부양책을 논의하기 위해 꾸민 '32인 경제노동정상회의'에 총리를 비롯한 정부각료와 각 정당 대표, 경영계 대표, 금속노조와 독일노총위원장, 경제연구소의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토론을 벌이게 했다.

동시에 각 지방의 의견을 듣기 위해 주지사 연석회의 및 시장 간담회를 주최하고, 노사단체들의 토론회, 정당 워크숍들이 잇따라 열려 여론을 수렴했다. 사회 각 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정책을 결정함으로써 이를 두고 여론의 대립이나 갈등이 빚어질 염려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MB정부의 일자리 나누기는?

독일처럼 수출 중심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 역시 독일의 사례를 염두에 둘만하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 4월 28조4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하면서 그 핵심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추경예산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독일과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분의 일자리 정책은 모두 단기, 일용직에 그쳤다. 또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이라고 자화자찬한 일자리나누기 정책 역시 신입사원 임금 삭감 이외에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 실제 이를 통해 고용이 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예산 편성 당시 "한정적, 일시적인, 그리고 적시성 있는 일자리 정책"을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정책은 당장의 경제위기로 줄어들 일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임시 일자리에 그쳐야 한다는 것. 추경예산에서 1조9950억 원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희망근로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7월까지 3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실업률의 상승을 막아내는 데 일정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6월 취업자가 4000 명 늘었던 때를 제외하면 취업자의 감소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정부는 추경예산과 별로도 22조를 투입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4년간 96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건설 노동자가 주로 포함되는 일용직 노동자는 7월 지난해 대비 20만이 줄어들었다.

최근에 있었던 쌍용자동차 노사 갈등 과정에서 노조 측은 정리해고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지만, 사측과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자랑하던 '일자리 나누기'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정부는 쌍용차 사태가 '노동유연성'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서 하반기 노동유연성 증대를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내걸었다. 이는 기업 구조조정의 방향을 인력 감축에만 두고 고용 안정 목표를 도외시한 결과다. 독일이 산별교섭 및 작업장내 직장평의회와 경영진간의 노사공동결정제도를 통해 고용 조건에 대해 협의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노조의 파업을 불법성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면서 신뢰 있는 노사관계를 만들기 힘들다. 독일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노사정의 신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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