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美, '노동유연화' 버리고 '사회안전망' 찾아 나선 까닭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美, '노동유연화' 버리고 '사회안전망' 찾아 나선 까닭

[4대강 대신 사회안전망을②] 오바마 위기 돌파구는 '노동자 가정 지키기'

지난해부터 온 세계를 뒤흔든 경제위기가 바닥을 탈출하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위기의 시발점이었던 미국에서 낙관적 전망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22일 연례회의에서 "미국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와 심각한 경기침체를 딛고 회복의 문턱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에는 아들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휴가까지 다녀오는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일부 실물 지표와 금융시장의 회복세에도 불구, 미국 경제에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 있다. 특히 노동부문이 그렇다.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은 무려 15개월 만에 하락 반전했지만 여전히 9.4%로 두 자릿수에 육박한다. 26년래 최악의 상황이다. 노동의 위기는 곧 경제위기며 사회 위기다.

오바마 정부는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핵심은 노동자의 권익을 높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의 유연화'를 위기 해법으로 꼽은 한국과 정반대 길을 찾는 셈이다.

▲미국에서 실업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폭발할 수 있다. ⓒ로이터=뉴시스

미국의 노동위기 현주소

미국의 실업난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일자리는 지난 한 달 동안만 24만7000개가 줄어들었다. 11개월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곤 하지만 여전히 일자리가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 현재 미국의 총 실업자 수는 61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올해 초 석 달 사이 200만 개의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진 여파를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8월 들어 희망적(실업률 하락)인 신호가 나왔음에도 백악관이 노동 거시전망을 쉬이 긍정적으로 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실업률 통계(7월 말)는 미국 경제가 벼랑 끝에서 빠져나왔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올해 하반기 실업률은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밝혔다.

실업자가 늘어나는 만큼 실업수당 신청자도 폭증하고 있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가 국가고용법프로젝트(NELP)의 조사 결과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다음 달 말까지 이미 받을 수 있는 실업수당을 모두 다 받아 아무런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될 실업자가 50만 명, 연말에는 150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업률 증가 속도도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지난 4월 말 실업률(8.9%)은 경기침체 이전 마지막 정점이었던 지난 2007년 말 대비 4.0%포인트 올랐다. 이는 경기 정점에서 16개월 지난 시점의 실업률 집계로는 전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실업률 자체 신뢰성도 떨어진다. 통계에 잡히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직 활동을 지속하는 사람만 실업자로 집계한다. 월가에 따르면 구직 단념자까지 포함할 때 실질 실업률은 이미 16%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말 현재 미국의 평균 실업기간은 25.1주로 역사상 최고치다.

노동유연성이 실업률 낮춘다?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지난 17일 한국노총이 주최한 토론회 발표문 '미국의 경제위기 대응과 시사점'에서 "미국은 오랜 기간 노동의 유연화를 노동문제의 핵심 상수로 놓았고 노조 역시 사회적 운동을 배제하고 경제적 실리를 얻자는 '실리적 조합주의(business unionism)'를 추구해 왔다"고 밝혔다. 실리적 조합주의는 지난 1886년 설립된 노동조합연맹(AFL)의 이념이기도 하다. 파업 대신 중재, 노사 간 협력을 지향하는 절충적 선택이었다.

노동 유연화의 후유증으로 미국의 노동자들은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비자발적 시간제 근로자, 곧 단기계약직 노동자 수는 4월말 현재 경기침체가 시작된 지난 2007년 말(460만 명)의 두 배 가까운 9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 잠재실업자 수는 2479만 명에 달한다. 미국 근로자 6명 중 1명 꼴이다.

이처럼 노동 사정이 약화되면서 '최고의 효율성'을 지닌 경제시스템으로 찬양받던 미국의 실업률은 '비효율'의 대명사처럼 각인된 유럽의 그것과 큰 차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연합(EU) 선진 15개국의 지난달 말 실업률은 9.5%로 미국과의 차이는 0.1%포인트에 불과하다. "유럽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의 실업률이 낮고, 고용창출 능력 또한 높다"는 주장이 설 자리를 잃은 셈이다. 사회안전망 수준까지 감안할 경우 오히려 사회적 충격은 미국이 유럽보다 크다.

실제 EU 내에서도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나라가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강화한 나라보다 경제위기 충격이 컸다. 유럽에서는 가장 개방 정도가 큰 나라로 평가되는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실업률이 각각 17.4%, 11%로 15개 국가 중 1, 2위인 반면 복지정책이 강한 네덜란드는 1.2%에 불과했다.

신 교수는 "독일처럼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정부 지원이 이뤄질 경우, 경제위기 시 실업대란의 완충 역할을 해 상대적으로 실업률이 낮게 나타날 수 있다"라고 했다.

▲오바마 정부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신화=뉴시스

반성하는 미국…대안은 '사회안전망 강화'

오바마 정부는 출범 이후 이처럼 헝클어진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놨다. 핵심은 사회안전망 강화다.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유례없는 대규모 재정확대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경기부양책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다양한 일자리를 만듦과 동시에 시간제(part-time) 노동자들이 전일제 일자리를 찾도록 하고 △특히 사회간접자본시설·교육·보건 및 에너지·실업보험 확대 등에 투자를 늘리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오바마 정부는 특히 감세보다 정부 지출이 사회안정에 큰 효과를 미치리라 기대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과 자레드 번스타인 바이든 부통령 경제수석보좌관이 지난 1월에 제시한 '미국 경제회복과 재투자 계획의 고용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각 경기부양책 중 주정부지원분에서 가장 많은 82만1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소득세를 감면해주면 이들이 지출을 늘린다'는 감세정책 철학과 정반대로 취약계층 보호에 따른 경제효과가 크게 나타나리라 전망한 셈이다. 실업보험 급여 연장 확대를 고려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저임금제와 근로자지원세제(EITC), 건강보험제도 개선 등도 이와 같은 철학에 바탕을 뒀다.

노사관계 개선 역시 상대적 취약계층, 곧 노동자의 권익을 보다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먼저 지난 2007년 3월 미 상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은 근로자자유선택법(EFCA) 재추진을 꼽을 수 있다.

EFCA의 골자는 사용자의 불법적 간섭을 막아 노동조합 설립 권한을 노동자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 법안이 노동자의 구매력을 촉진해 미국 경제를 구하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데이비드 심치 레비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은 지난 2월 이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서안에 서명했다.

근로가정 지원 조치의 일환으로 가족의료휴가법(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연간 7일의 유급휴가 의무화) 적용 대상을 1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최저임금제를 인상하는 것도 경제위기 극복과 관련 있다. 미국 노동계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대로 오는 2011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이 9.50달러까지 오르면 앞으로 2년 동안 600억 달러의 추가 소비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977년과 78년에 선을 보인 신규고용장려세제(NJTC)도 소비를 끌어올리고 노동자를 늘리기 위한 조치다. 기업이 신규로 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일정분을 납세한 후에 다시 정부가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한국의 청년인턴제도와 다른 점은 전원 정규직 고용분에 대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실업보험 확대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현행 실업보험 체계는 실업 이전 평균임금의 36%를 26주 동안 실업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장기 실업자가 늘어남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이를 손보려 하고 있다.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종전보다 13주 늘리자는 법안이 이미 발의 예정된 상태다. 오바마 정부는 400억 달러의 재정 지출이 실업급여 확대에 쓰이면 약 660억 달러의 경제효과를 유발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범철 교수는 "한국 정부 역시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쓰고 있지만 미국의 정책과 부문별 고용창출 효과의 크기가 다르다"며 "오바마 정부는 재정지출 중 취약계층 보호와 주정부지원이 가장 큰 고용창출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감세로 인한 고용창출효과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또 "(미국 정부의) 실업보험 확대를 단순히 일방적인 시혜정책으로 보는 시각은 왜곡됐다"며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실업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의 정책방향은 재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