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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이들…"6개월 뒤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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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이들…"6개월 뒤가 걱정"

[4대강 대신 사회안전망을①] 실직자 10명 중 1명만 실업급여 혜택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차 사태에서 파업 노동자들이 내걸었던 구호다. 해고는 물론 물리적 살인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해고는 사회적 시스템과 맞물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한국이 바로 그런 사회다.

해고가 되면 당장의 생계에서부터 모든 것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실업급여가 지급되지만 최장 8개월 뿐이고, 상당수의 실업자가 수급 요건을 갖추지 못해 이마저도 받을 수 없다.

재취업이 말처럼 쉽지도 않지만, 이 역시 혼자 힘으로 해야 한다. 실직자에게 새로운 직장, 직업을 소개해주는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재취업을 위한 기술 습득이나 교육 등도 개인이 알아서 부담해야 한다.

해고는 곧 빈곤의 나락을 떨어지는 일이며, 이는 당대에 그치는 사건이 아니라 자녀에게도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교육 역시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허술한 사회안전망은 실업자와 그 가족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경쟁력의 문제다. 고용은 경기후행지수로 위기가 한참 진행된 뒤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나타난다. 쌍용차 사태는 경제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문제의 신호탄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7월부터 발효된 비정규직법도 실업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국의 위기 탈출 저력은 사회안전망의 두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당분간 수출이 크게 늘기 힘든 상황에 각국이 내수를 통한 경기부양에 힘쓰고 있다. 사회적안전망의 부재로 실업이 급격한 소비위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내수를 통한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 회복"을 자신하는 이명박 정부의 행보가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하반기 가장 중요한 과제로 '노동유연성'을 꼽지만 이에 따르는 실업 등 문제를 최소화할 안전판을 만드는 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4대강 살리기 등 대규모 공공토목사업을 통해 재정을 풀고,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듯 하지만 '거품 경제'를 통한 성장은 한계가 있다. 이제라도 사회안전망 확충 문제에 눈을 돌려야하는 이유다. <편집자>

박미자(46) 씨는 양말 제조공장에서 130만 원을 받고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으나 경기 악화로 해고됐다. 사장이 '경기가 살아나면 부르겠다'고 했으나 기약은 없다. 박 씨의 남편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두 아이의 교육비는 고사하고 당장의 생계비를 대기에도 빠듯하다.

▲구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해결기미 역시 찾기 어렵다. ⓒ프레시안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사람들

1년 가까이 지속된 경제위기 여파와 늘어가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로 인해 '노동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것은 수치. 지난 12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현재 취업자 수는 2382만8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7만6000명 감소했다. 정부의 '희망근로' 사업으로 한때(6월)는 취업자 수가 늘기도 했으나 일시적이었다.

당연히 실업률은 상승 추세다. 7월 실업자는 92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15만9000명(20.6%)이나 급증했다. 그만큼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만 명(40.3%) 늘어났다. 7월 신규신청자만 10만 명에 육박(9만2400명)한다. 7월 실업급여 지급자는 39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65억 원(48.0%) 증가했다.

윤여욱 고용안정센터 취업지원과 실업인정팀장은 "작년에는 하루 50~60명의 민원인이 찾아왔는데 올해는 보통 월요일에 80여 명, 나머지 평일에 70명 안팎이 들른다"며 "원래 여름엔 건설업 수요가 늘어 일용직 관련 실업자가 줄고 9월에 시작되는 채용 시즌도 있어서 실업급여 신청이 줄기 마련인데 올해는 다른 모양새"라고 말했다.

취업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청년층 실업급여 신청자 급증

특히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올해 청년실업률은 9%대에 육박하고 있다. 20~30대 젊은이 열명 중 하나는 '백수'인 셈이다.

신규 취업의 문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 채용계획이 있거나 일정이 진행 중인 자산규모 5조 원 이상 공기업은 기업은행과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세 곳 뿐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강운태(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30대 기업의 신규채용 인원은 3만508명으로 전년동기(4만5244명) 대비 3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 청년실업난 대응책으로 청년인턴제를 실시했으나 사실상 '단기알바' 형태에 그쳤다. 이 때문에 대졸자 일부는 몸값을 더 높이기 위해 유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이다. 취업률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모자 제조회사의 영업직(정규직)으로 1년가량 근무하던 전용구 씨(가명, 24)는 상여금을 제외하고 한 달에 13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러나 회사의 살림이 기울면서 영업팀이 해체됨에 따라 직장을 잃었다. 그는 현실의 돌파구로 사이버대학 수강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 씨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어떻게든 다시 취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지연 씨(가명, 20)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한 무역상사에 1년 계약직으로 취업했다. 그러나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입사 6개월 만인 지난달 10일 일자리를 잃었다. 현재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이 씨는 대학진학을 고려 중이다.

윤 팀장은 "보통 실업급여 신청자는 1940~1950년생이 많고 젊을수록 줄어드는 게 정상인데 최근에는 80년대생과 50년대생의 연령대 비율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벼랑 끝에 몰린 비정규직

▲산재의료원에서 농성 중인 비정규직자들. 실업급여는 길어봐야 6개월이다. 실업급여가 끊긴다면 이들은 소득이 사라진다. ⓒ프레시안
무엇보다 지난달 1일부로 비정규직법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직장에서 내몰리는 비정규직자들의 문제가 해결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산하기관인 산재의료원에서 3년 1개월을 일하다 지난 6월 30일자로 계약 해지당한 이진헌(32, 창원병원) 씨는 "당장 저축이 불가능해졌다. 올해 안에는 복직하리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산재의료원 계약해지자 27명은 한 달이 넘도록 정부와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가 마련해준 생활비(1인당 40여만 원)와 실업급여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 씨는 "첫 아이를 가지려 했는데 포기했다. 당장 대출금을 갚아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KBS의 비정규직자 해고자들 역시 어려운 상황을 호소했다. KBS 전체 비정규직자 420명 중 89명은 계약해지 당했고 자회사로 소속이 옮겨진 사람은 209명에 달한다. 한 해고자는 "(비정규직) 대부분이 고유업무를 수년 간 해왔음에도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아오다 해고됐다"며 "회사에서 은연 중에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주면서 부려먹기만 했다"고 말했다.

보도기술 부문에서 5년 간 일한 이상봉(40) 씨는 "회사에서는 내 업무를 '운전'으로 바꾸려고 한다. KBS 손자회사인 운전직종만 관리하는 회사로 소속을 바꾸려하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그 동안 2인 1조로 일하며 급한 일이 터질 때마다 직접 카메라를 잡는 일이 많았다. 미숙련자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질적으로는 상시근로자와 마찬가지 업무를 다 해결했다는 뜻이다.

KBS 비정규직 부문의 대외정책업무를 맡은 황명선 씨(시청자서비스)는 "비정규직 해고자 대부분이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평균 임금이 2000만 원도 안 된다"며 "'공영방송'으로 불린 회사에 큰 배신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고용안정센터를 찾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프레시안

실직자 10명 중 1명만 실업급여 혜택

월 150만 원 안팎의 저임금으로는 실업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준비가 불가능하다. 빚을 지지 않고 살기에도 팍팍한 금액이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실직 등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소비지출을 평소의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국민의 16%가 갖고 있는 금융자산으로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 6개월 이상 지탱 가능한 비율도 46%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실업급여로 당장 연명할 수밖에 없는데 실업급여 수혜율은 매우 낮다. 지난 6월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용역보고서의 '실직위험과 실업급여 수혜율 평가' 부분에 따르면 2006년 실직자 중 실업급여 혜택을 받은 사람은 9.4%에 불과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실직자의 실업급여 수혜율도 21.7%에 그쳤다.

지난 2007년 고용보험법이 개정되면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도 6개월 이상만 일을 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이 업무를 주관하는 고용지원센터조차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미가입 사실을 신고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음에도, 정부의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신청조차 하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계속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업자 대비 실업급여 지급 비율이 43.6%에 달한다는 정부의 통계는 사각지대에 있는 실직자들은 애초부터 대상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수치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는 "실업급여제가 있지만 혜택을 보지 못하는 해고자가 많다"며 "법 위반 업체 단속을 강화하고 특히 공공부문은 정규직화하려는 정책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무엇보다 정책당국이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노동부는 비정규직법에만 매달리지 말고 사회안전망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등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노동 문제 해결)을 해야 할 때"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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