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글씨를 보고나서 한 동안 멍했습니다. 가슴에 큰 돌을 올려 놓은가 싶더니, 숨통이 막혀 숨이 '헉'하고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입가에 닿는 짭짜름한 맛이 어찌나도 슬펐던지. 그 때의 기분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통에 홀로 남은 다섯 살짜리 꼬마애가 된 듯했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아무런 해답도 찾지 못하고 그냥 울었습니다. 다섯 살, 그 또래가 그렇듯이 세상의 전부라 여겼던 부모님이 영영 떠나간 후, 내가 느끼는 감정은 비통함과 슬픔은 물론 무지막지한 박탈감과 상실감이었습니다.
민주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다섯 살 꼬마만큼이나 어립니다. 그 고사리 같은 양손에 부모의 손을 꼭 잡고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건너는 동안, 우리의 목적지를 역행하는 수없이 많은 그리고 거대한 사람과 부대껴야 합니다. 아이는 아주머니가 든 큰 비닐봉지에 몸을 치이기도 하고, 아저씨가 피우던 담배 연기에 콜록콜록 기침도 합니다. 울퉁불퉁한 길에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금세 넘어지고 맙니다. 그런 아이가 유일하게 시장통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하고 온화한, 그러면서도 엄히 꾸짖을 줄 아는 부모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부모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는 시장의 끝이 자신의 집임을 잘 알고 있지만 자신보다 더 큰 어른들을 뚫고나가기엔 아직 여리고 미숙합니다. 어른들은 각자의 집과 안락을 찾아 아이가 가야할 길을 역행하기도 하고 비틀어가기도 하고 꺾어서 가기도 합니다. 그들은 장바구니에 한가득 든 맛난 야채와 고깃덩어리가 무거워 걸음을 재촉하고, 이 때문에 길 한가운데 서있는 작은 아이가 귀찮아 비키라며 핀잔을 주기도 하고, 어쩌면 말없이 밀치고 가버릴지도 모릅니다. 혹은 나쁜 마음을 먹고 다가가는 사람도 있겠죠.
이제 기나긴 추모의 행렬이 시작되겠고, 긴 시간이 눈 깜빡할 새 지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아직 '거기'에 남아 있습니다. 故 김 前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에게 단순한 슬픔이 아닌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있는 시장터에 홀로 서있는 어린 아이를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친절하게도 故 김 前 대통령은 이미 그 답을 우리에게 주고 가셨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
우리의 손에는 남들과 똑같이 과일과 야채, 고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아주 무겁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편안한 집과 거기서 오는 안락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길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우리 집과 평안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선량한 누군가는 그렇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울다 지쳐 꺽꺽 소리를 내는 가엾은 아이를 바라보고, 그 아이가 힘든 발을 내딛을 수 있게 길을 터주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싶다면 장바구니 속에 담긴 작은 사과 한 알을 건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성장, 그리고 민주주의의 올바른 발걸음을 염원하셨던 DJ는 그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걸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손문상 화백이 그린 만평이었던가요. 아주 친근한 웃음과 흙내 풍기는 농부 옷을 입으신 '그 분'과,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웃으시던 故 김 前 대통령.
"너무 걱정마세요.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인데요!"
"그럼, 그럼!"
두 분은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를 믿고 그렇게 가셨습니다. 지금 내가, 그리고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이, 슬픔이 그 믿음에 부합하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故 김대중 前 대통령님.
부디 그 곳에서 우리를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우리가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민주주의의 길을 닦을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 시련은 다 추억처럼 여기시고 부디 그 곳에서는 행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당신과 같이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여고생 올림.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