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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위 '천종순'에 이어 명동에 '천미순'이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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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방위 '천종순'에 이어 명동에 '천미순'이 떴습니다"

거리로 나선 천정배-최문순 명동 서명운동 취재기

"애국시민 여러분. 이곳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위한 1000만인 서명이 진행 중입니다. 30초만 시간 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언론은 여러분의 눈이고 귀이고 입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여러분의 눈과 귀와 입을 막기 위해 언론악법을 만들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원천무효 결정을 내리기 위해 여러분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십시오."

5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거리로 나선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지나가는 차에 전선이 밟혀 소리가 켜졌다 꺼졌다 말썽인 마이크를 쥐고서 거리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옆에서는 김희선 전 의원이 "이봐 젊은이 잠깐만 시간 좀 내줘"라며 행인들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 마이크를 들고 서명 동참을 촉구하고 있는 최문순 의원. ⓒ프레시안

서명대에는 최 의원과 함께 의원직을 던진 천정배 의원이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서명을 받고 있었고, 정동영, 추미애 의원, 김재홍 전 의원도 동참했다. 이들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고, 추 의원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나서 시민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명동성당 앞에 서명대를 차린 지 어느새 6일째. 지나는 사람들의 관심이 식을 법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했고, '삐끼' 역할을 하는 최 의원과 김 전 의원이 잡아끌지 않아도 알아서 서명대로 성큼성큼 걸어가 서명하는 시민들도 제법 많았다. 한 젊은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쳤다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쓴 채로 터벅터벅 되돌아와 서명을 하기도 했다.

10분 동안 얼마나 서명을 했나 세 봤더니 50여 명이었다. 오후 6~8시 2시간 동안 서명을 받는데도 하루 평균 600~700여 명이 서명을 했고, 날이 갈수록 늘어 5일에는 900명가량이 서명을 했다고 한다. 100일 동안 1000만 명을 채우기(1일 10만 명꼴)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지만 시민들의 호응도가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천정배 의원은 "무엇보다도 젊은 친구들의 반응이 뜨거워 힘이 난다"고 말했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다주는 시민들도 많다고 한다.

▲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정동영, 천정배, 추미애, 김재홍. ⓒ프레시안

최문순 이야기

지난해 11월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법을 내놓아 긴장이 고조됐을 때, 언론단체 관계자들이 민주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열었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이 정세균 대표를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언론악법을 막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해야 한다"고 잡아 먹을 듯 몰아붙였다.

분위기가 다소 험악해지려던 찰라 당시 간담회 사회를 보던 최문순 의원이 "전 아직 국회의원 1년도 못해봤는데"라고 특유의 순박한 표정으로 계면쩍게 웃는 바람에 좌중엔 폭소가 터졌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랬던 최문순 의원이 미디어 관련법이 직권상정 처리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달 23일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라며 미련 없이 사퇴서를 던졌다.

최 의원은 항상 '현장파', '행동파', '열정파'였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는 가장 먼저 촛불시위에 나가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 썼고, KBS 정연주 전 사장 퇴임 압력 논란이 일었을 때 KBS 앞에서 매일 촛불을 들었으며, 연말 '입법전쟁' 당시에는 문방위 점거로 다른 동료 의원들보다 더 많은 점거 농성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대한문 시민 분향소를 지키느라 '노숙 의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던 그가 이번에는 국회의원으로서 최고 수위의 행동을 감행했다.

기자를 보자 마자 "나 삐끼됐어요"라는 그에게 '의원 생활' 1년 4개월에 대해 물었더니 "너무 힘들었다"고 답했다.

"딱 1년 전이네요. 작년 8월 7일에 KBS에 경찰이 들어갔습니다. 그 때 성유보 선배, 최상재 위원장, 김용철, 조한기 보좌관이 잡혀갔어요. 바로 다음날 KBS 사장 해임이 의결됐고, PD수첩 수사가 시작됐고, YTN 사태가 터지고, 언론악법이 나오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서거하셨죠. 우리는 40전 40패였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연패'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MBC 인사권을 쥔 방송문화진흥회의 인사가 최근 논란이다. 그는 MBC 사장 출신이기도 하다.

"결국 KBS와 같은 방식의 갈등을 겪게 되리라 봅니다. KBS 신태섭 이사를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 넣어서 정연주 사장을 해고해 새로운 사장 체제를 출범시킬 것이라고 봅니다. 공영방송의 이사라면 그 나라 최고의 지성이고 높은 품격을 가져야 하는데, 아휴…, 표현을 못하겠네요. 방문진이 88년 12월에 생겼습니다. 당시 MBC를 비롯해 낙하산 사장 인사를 반대한 KBS, <한겨례>의 창간, <경향신문>의 독립, 공영방송인 YTN 등 이른바 87년 체제에 의한 언론사들이 생겨나 김대중 정권에 정착이 됐는데, 이 정권은 언론 환경을 87년 체제 이전으로 돌리려는 것입니다."

'힘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의원직을 내던지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니 그는 씩 웃으며 "더 잘 싸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돌출행동이냐, 선명성 경쟁하는 것이냐, 쇼는 아니냐는 비판이 많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의원직)은 감당하기 힘든 무게가 있었어요. 맘 놓고 까질 못하잖아. 허허허."

국회의원으로서의 지켜야 할 선과 업무를 감안하다보니 행동이나 말이 자유롭지 않았고, 더 열심히 투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런 제한을 벗어던지고 미디어법 무효라는 한 길만 보고 죽어라 달려가겠다고 한다.

2시간의 서명운동이 끝난 뒤 인근 식당에서 국밥에 소주 한 잔으로 건배사를 외쳤다. "한나라당 박살내자. 정권을 탈환하자." 의원직을 던지지 않았으면 사석에서도 이런 말을 못하는 사람이 최문순이다.
▲ 헌법재판소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온 최창현 씨를 정동영 의원에게 소개시켜 주고 있는 천정배 의원. ⓒ프레시안

천정배 이야기

'3대 목포천재 중 한 명'이라는 닉네임이 붙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뒤 잘 나가는 변호사를 하다가 민변에 참여하고 1996년 국회의원이 된 뒤 수도권에서 내리 4선. 이른바 '천신정'이라는 정치개혁의 주역이었고, 여당 원내대표에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인물. 그에게 대뜸 "엘리트 정치인인데, 배지 떼고 이렇게 매일 거리에 나와 사람들 만나면서 서명 받는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가시'를 품은 질문이었다.

천 의원은 "거리 투쟁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민변 출신 시민활동가로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특히 국회에서만 봐왔던 지라 지역구 4선 의원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명동 거리를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고, 그 역시 낯선 사람들에게 편하게 인사를 건네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시민들에게도 상냥했다.

그래도 그는 역시 '엘리트' 이미지가 강하다. 천 의원 스스로도 근처 김밥집에서 된장찌개를 시켜먹는데, 아주머니가 '국회의원이 이런 것도 드세요?'라고 신기하게 쳐다보며 물어봤다고 한다. 정치인과 시민들의 정서적 괴리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이었지만 그 역시 정치인이다.

의원직 사퇴를 한 뒤 그 역시 최 의원처럼 '자유'를 가장 먼저 얘기했다.

"일찍부터 정장, 넥타이와 함께 35년을 살았습니다. 변호사가 넥타이를 안 매고 법정에 갈 수 없었고, 국회의원이 넥타이를 매지 않고 회의장에 들어갈 생각도 못 했습니다. 35년간 내 목을 얽어 맨 넥타이를 푸니 날아갈 듯 자유롭습니다."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지만 '자유롭다'는 말에 꼬투리를 잡았다. "4선 중진 의원으로서 의정 경험 등을 더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원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제가 의원직 사퇴를 한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도 있지만, 민주주의와 국민에 대한 능멸에 어떻게 저항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언론악법이 강행 처리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야당의 존재 가치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회 안에서 사력을 다해 투쟁을 했지만 제가 야당 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무도한 이명박 정권이 야당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난 1년 4개월의 과정을 복기했다.

"작년 촛불집회 때 국회를 통해 얻어낸 것이 하나도 없었고, 정기국회 때 예산안은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추모 민란이 일어나고 5대 요구사항을 내걸었지만 정부 여당이 머리카락 한 가닥만큼도 들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국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언론악법이 강행처리 됐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텐데 국회에 들어가 여당하고 의논하고 토론하고 그렇게 해야겠습니까? 원내투쟁보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국민들과 힘을 모아 민주주의 말살과 민생 부인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세균 대표가 목포 기자간담회에서 현안에 대해 언급하다 등원을 시사했다고 알려주자 "번번이 패배해왔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리라 본다"고 말하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부분적 사안에 얽매이면 큰 틀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지켜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4선 의원으로서 '원외 정치'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 그 역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13년을 넘게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에 마음 한 편에 두려움까지는 아니지만 불안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국회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국회 밖은 시선조차 끌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만은 국민, 서민대중들과 직접적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가면 국민들의 바람과 요구를 현장에서 몸으로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라 더 열심히 국민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이익을 옹호하는 활동을 할 것입니다. 원외 핸디캡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몸으로 느낀 다는 것' 말은 쉽다. 그런데 천 의원은 '의원직 사퇴'를 계기로 조금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달 24일 사퇴서를 내고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이 되니까 실직자 기분이 들었어요. 일정이 있든 없든 평소 같으면 의원회관이라는 출근할 곳이 있는데, 막상 갈 곳이 없어지니 막막하더군요. 점심 약속 때가 될 때까지 집에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실제 생계가 불안한 서민대중의 실정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만은 취직 걱정하는 젊은이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들, SSM에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내몰린 영세 상인들, 최저임금도 못 받는 222만 근로자들, 이런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돕는 것을 제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습니다."

천 의원에게 처음부터 '엘리트 정치인'이라고 몰아 붙였더니 내심 불편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천 의원은 "나 스스로는 낙후된 섬에서 태어나 힘들게 공부를 했지만, 부정적 의미의 엘리트적 요소가 있다면 암덩이를 제거하듯이 확실하게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해 총선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독하게 정치하겠다"고 다짐 했었다. 그에게 그 당시 인터뷰 얘기를 꺼냈더니 "그 때부터 야당하려면 투옥을 각오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지나와보니 생각보다 심한 것 같다"며 "이제 내가 가진 걸 모두 포기하고서 더 독하게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천정배-최문순 이야기

최문순 의원이 먼저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고, 천정배 의원이 하루 뒤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다. 그리고 둘은 함께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노타이에 세로 줄무늬 셔츠 차림이다. 별도로 짠 것은 아니란다.

이들의 목표는 명료했다. "헌법재판소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여론을 전달하는 것." 앞으로 서명운동에만 그치지 않고 헌재 앞 1인 시위 같은 것도 할 생각이란다. 금배지를 달고서는 '헌재 앞 1인 시위'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고.

국회 문방위 시절 천정배, 이종걸 의원과 자주 어울려 다녀 '천종순'이라 불렸다는 최문순 의원은 "요즘은 '천미순'이에요. 허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추미애 의원이 동참해 열심히 활동해줘 고맙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내가 서서 떠들면 좀 칙칙한데 추미애 의원님은 말씀도 잘 하시고 사람들도 많이 알아봐 부럽다"고 또다시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평소 '발랄한 정치'를 꿈꾸던 최 의원은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궁리 중이라고 했다.
▲ 마이크를 들고 나선 추미애 의원. ⓒ프레시안

정동영 의원도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서명운동 자리에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익히 얼굴을 널리 알린지라 정 의원과 사진을 찍자는 행인들도 많다. 또한 민주당은 이 곳에서 서명운동본부를 발족할 계획이다.

어느 덧 콤비 가 된 천정배, 최문순 의원을 각각 다른 자리에서 상대방에 대해 물었다.

"언론악법저지 특위 간사가 의원직을 던지는데 위원장이 그냥 있을 수 없었다"던 천정배 의원은 최문순 의원의 '추진력'을 가장 높게 샀다.

"위원장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최 의원이 설득해 맡게 됐습니다. 언론노조 위원장, MBC 사장을 해 경험도 풍부하지만 추진력이 탁월합니다. 100% 호흡이 맞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이 틀리면 최 의원이 고쳐줍니다."

최 의원은 '거리'에서는 자기가 '한 수 위'라며 천 의원의 건강을 걱정했다.

"훌륭하신 분이죠. 내 입으로 말해 뭣 합니까. 허허허. 그런데 나야 원래 거리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천 의원님은 조금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뭐 금방 익숙해지시겠죠. 허허허"

인터뷰를 위해 마이크를 추미애 의원에게 넘기고 잠깐 명동성당 안쪽에 들어와 있던 최 의원은 "이거 마이크 소리가 너무 큰 거 아냐. 미사에 방해가 되면 안 되는데"라고서 서명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 해의 긴 낮이 완전 저문 저녁 8시. 이들은 서명대를 접고, 근처에서 '감시' 하던 경찰 정보과 형사에게 '퇴근 신고'를 한 뒤 근처 국밥집에 5000원짜리 국밥과 소주, 막걸리로 하루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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