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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고교 평준화'! 웰컴 투 '입시 지옥'!"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고교 평준화 세대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지난 주말 양재천 산책길에 남편이 말했습니다.

"내 모교인 OO고등학교가 이번에 자사고에 선정될 것 같다고 하더라. "
"그 학교 재단 전입금도 부족할 텐데…."
"현재 2%라는데 재단이 알아서 늘리겠지."


대학생 학부모인 그는 고교 평준화 세대는 아닙니다. 한집에 살지만 한 사람은 '내 학교만 잘되면 된다'는 자율형사립고 찬성 그룹에 속해 있고 한 사람은 '내 아이만 생각하다 우리 교육 망한다'는 자율형사립고 반대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대략 비슷할 것입니다.

14일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자율형사립학교(그동안 일명 자사고·오늘 정부공식명칭은 자율형사립고)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2010학년도 서울 지역 자율형사립고로 13개를, 또 재정 여건 등을 개선한다는 조건으로 2011학년도 자율형사립고로 5곳을 각각 지정했군요. 후년 개교 5개 학교는 일종의 편법인 셈인데, 자사고가 그렇게 좋은 것이면 그대로 놔두어도 신청 학교들이 생길 것인데 왜 그리 급한지 묻고 싶습니다.

이로써 중학교 3학년생들은 전기(특목고, 자율형사립고, 자립형사립고)와 후기(일반고, 개방형 자율학교) 고등학교 등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학교들을 대상으로 '선택'을 해야합니다. 이래 저래 선택을 강요당하는 중3 학부모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 중3 학부모들은 대부분 고교 평준화 세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그간의 상황은 다 아실 줄로 믿습니다. 줄여 말씀드리면 자사고 신청 기준을 충족하는 학교도 절대적으로 적은 데다가 신청한 학교 중에서도 자격 기준이 미달인 학교가 많았습니다. 7월 13일 자율형사립고 전환 신청 마감 결과 서울 25개교, 지방 14개교 등 총 39개 사립고교가 신청서를 냈고 9곳이 돌연 신청을 철회했다고 합니다. '귀족학교'라는 기대감 속에 지난해만 해도 서울 지역 사립고교 중 자율형사립고 신청 의사를 밝힌 학교만 63곳이었는데 그사이 많은 학교들이 신청을 철회한 것입니다.

▲ 지난 달 2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육단체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율형사립고 선정 계획 촉구를 주장하며 삭발식을 열었다. ⓒ프레시안

일부에서는 '지금처럼 학생 선발권도 없고 재정 능력도 없는 학교를 선정하면 절름발이 학교가 될 것'이라고 정부를 비난합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귀족 학교도 특권 학교도 아니고 메리트가 없다'며 외면합니다. 한마디로 학비만 세 배로 비쌀뿐 대학에 갈 때 유리한 점은 없다는 것입니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교가 재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올해 지정은 하되 준비가 되는 내후년인 2011년 이후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는 방법 등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네요. 그러면 지난 1년간 고교 동창회의 소란과 불안은 무엇으로 보상되어야 하나요? 참 딱한 일입니다.

이번에 자율형사립고 18개 학교가(예비 명단 5개학교 포함)가 생기면 그동안 서울 지역엔 일반고가 아닌 10개의 외고, 과고, 국제고, 영재고에 과거 중학교 성적 3~10% 학생만 지원하던 것에서 상위 30~50%까지 확대됩니다. 항간에는 '상위 25%만 데리고 간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라는 소문이 퍼지는 까닭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국 '굿바이 고교 평준화!', 입시 전쟁이 전면화 되고 고교 평준화가 물건너 갑니다. 아파트에는 벌써부터 자사고와 자율학교 대비 학원 마케팅과 입시 설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율형사립고는 교육 시장화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꼽힙니다. 질좋은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입시 교육이 돈을 주고 사야하는 상품이 된 것이지요. 유식한 말로 교육시장화라고 한다지요.

그동안 일부 돈많은 학부모들이 말했습니다. "특목고는 돈 있고 공부 잘하는 애들만 간다. 우리 집은 돈은 있는데 애가 공부는 못한다. 우리 애가 진학할 학교도 만들어 달라." 겉포장은 고교의 자율과 다양성이되 속 내용은 학부모들의 그런 요구에 맞추어 나온 것이 자율형사립고입니다.

자율형사립고의 교육 과정 '자율'이 제대로 실행되어 입시 지옥에 빠진 타 학교들의 모범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희망사항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대안학교를 내세우며 개교한 이우학교 관계자들이 학부모들의 입시 교육 요구를 물리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대학입시란 괴물에 귤이 탱자가 되듯 모든 것이 녹아나는 실정입니다.

일부 학교들이 자사고를 포기한 이유에는 학생 선발 방식의 불만이 컸습니다. 입시 지옥을 우려한 국민의 비판에 정부는 시험선발이 아니라 추첨 선발을 주장했습니다. 경쟁 과열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해 지금 당장은 자율형사립고 선발을 성적 상위 50%에서 추첨한다고 두루뭉술 말하지만 성적 하위 50%는 자율형사립고에서 공부할 권리도 없단 말인가요? 상위 50%라는 기준이 애매할 뿐입니다.

결국 "전국의 모든 사학을 자율화하라"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에 입시명문이 되려는 학교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요. 그래서 이래저래 엇박자가 난 것 같습니다. 정부로서는 현재 특목고 열풍도 잡기 어려워 입시 방식을 규제하려고 하는데 자사고 입시 규제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니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군요.

중3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3년 후 2013년 대학입시에서는 3불정책도 폐지될지 모릅니다. 지금 정부 일정이 그렇습니다. 집 근처 학교에 보냈다가 고교등급제에 희생이 되기라도 한다면? 혹시 있을지도 모를 고교등급제의 피해를 예방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1년 학비 1000만 원 짜리 자율형사립고를 구매해야겠지요. 돈이 있어 선택이 자유로운 학부모들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정부가 이렇게 무리하며 시행한 자율형사립고 정책, 설마 모르는 척을 하진 않겠지.'

한국 교육은 언제부터인가 돈 놓고 돈 먹는 증시보다도 더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정글이 되었습니다. 교육운동 단체들은 자율형사립고 선정은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자율형사립고 명단이 발표되는 오늘은 35년간 지켜오던 고교 평준화에 1차 경고, 1차 조종이 울린 날입니다. 자사고는 지난 35년간 이루어온 고교 평준화를 야금야금 해체하는 것입니다. 고교 평준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만 고교 평준화의 장단점을 공론화시켜 이를 보완하거나 내실화해야지 무턱대고 이런 식으로 해체하면 한국 교육은 절망입니다.

그래서 오늘 억수같은 비가 오나 봅니다. 그 비에는 입시 교육에 지친 학생들의 절망의 눈물과 사교육비를 제대로 주지 못해 가슴을 쥐어뜯는 서민 학부모들의 피눈물이 모여 흐르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자사고 도입을 반대하던 교육운동 단체들은 자사고 도입을 막기위해 길거리 특강이다, 기자회견이다, 집회, 삭발과 릴레이 단식 등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막아내려고 노력했지만 불도저처럼 치닫는 정부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그들 의도대로 특권 교육, 서열화 교육으로 올인하지 못한 데에는 영어몰입 교육을, 특권 교육을, 서열화 교육을 죽어라 비판하는 교육운동 단체들의 목소리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교육운동 단체들이 이념적이어서 자율형사립고를 막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학교가 생기면 한국교육이 지금보다 더 심한 입시 생지옥이 되기 때문에 막은 것입니다. 교육운동 한다면서 잘못된 교육정책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학부모님들에게 그런 고민을 안겨주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이 참에 고교 평준화 세대일 것이 거의 확실한 중3 학부모님들도 명문학교, 자율학고에 대해 막연한 선호를 거두고 내 자식살리는 셈 치고 원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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