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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연대 파업요? 다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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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덤프연대 파업요? 다 이해합니다"

[르포] 덤프기사 쓰는 건설하도급 업체 사람들

"덤프 기사가 얼마나 버느냐고요? 안 남습니다. 빚이나 안 지면 다행이지…."

덤프 기사의 말이 아니다. 덤프 기사를 부리는 한 하도급 업체 간부의 말이다. 덤프연대의 파업이 식어가는 24일 저녁 기자는 서울 교대역 근방에서 한 시민단체 소속 연구원과 함께 건설업 하도급 업체에서 중견 간부로 일하는 이들을 만났다.

***"덤프연대 파업요? 그 사람들은 그럴 만합니다"**

덤프연대 파업을 취재하고 있다는 기자의 자기소개에, 얼큰히 술기가 오른 그들은 덤프연대의 파업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13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전문건설업체로부터 일감을 수주받아 현장을 뛰어다녔다는 이승철(가명, 41) 씨는 덤프연대 파업에 대해 한 마디로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다.

"내가 덤프 기사 부리는 일을 하지만, 솔직히 그 사람들 그럴(파업) 만해요. 도대체 X 빠지게 일하면 뭐 합니까? 집에 가져가는 돈이 없는데……. 나라도 몇 번 난리쳤을 거예요"

그러고는 얼른 "노가다로 굴러먹어서 그렇다"며 거친 자신의 입심에 대해 이해를 구한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그래도 덤프 기사들 돈 좀 벌었어요. 덤프 기사도 적고, 기름값도 싸고, 운송료도 괜찮았으니까. 몰라도 한 달에 몇 백은 가져갔을 거에요. 그런데 말이죠……."

***경유가 4배 오를 때 운송료는 제자리걸음?**

이 씨는 덤프 기사가 겪는 생활고의 핵심 이유로 '고유가'를 지목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경유가가 1ℓ에 200~300원 했어요. 운송료가 하루에 24만 원 정도 했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였죠. 요즘에는 얼마인 줄 압니까? 에너지 세제 개편이다 뭐다 해서 경유가가 1ℓ에 1200원 정도 합니다. 4~5배 오른 거에요. 앞으로도 더 오른다고 합디다."

"운송료는 얼마 올랐을 것 같아요? 요즘에 한 30만 원 내외 합니다. 경유가는 몇 배 올랐는데, 운송료는 2배도 안 올랐어요. 하루에 130~140ℓ 정도 쓰는데, 그러면 기름값만 하루에 15~17만 원 들어가요. 그럼 얼마를 집에 가져갈 수 있겠어요?"(아래 박스 참조)

<박스 시작>

<표>

위 표에서도 보듯이 1996년 이래로 경유가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또한 눈여겨 볼 것은 경유가에는 교통세, 교육세 등 각종 세금이 부과돼 있다는 점이다. 즉 경유가가 높은 이유에는 다름 아닌 높은 세금이 있다는 것이다.

<박스 끝>

이승철 씨의 계산법에 따르면, 덤프 기사는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해도 고작 10만~15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덤프기사에게 남는 것은 없는 것 같더라……."**

이 씨 옆에서 잔을 들고 있던 김상경(가명, 40) 씨는 "그래도 그 정도면 다행이게……"라고 운을 뗀 뒤 말을 이었다. 이승철 씨보다 나이가 적지만,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발파공사에 손을 대는 등 건설업계에 몸담은 기간은 김 씨도 이 씨 못지 않다.

"형님, 덤프 기사 중에 자기 차 제대로 갖고 있는 사람 봤어요? 1억3000만 원에서 1억7000만 원까지 하는 덤프 트럭을 할부 아니고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매월 할부금 갚는 데만도 돈이 꽤나 나갈 거에요. 또 지입료 내고 하면 남는 돈 없을 겁니다"

"일해도 남는 돈은 없고, 그래도 가족이 있을 테니 애들 교육비에다, 생활비에다 돈 들어갈 데는 많으니……. 그러니까 죽겠다고 파업하는 거 아니겠어요. TV를 보니 그 사람들 '차라리 죽여라'라고 하더만요."

<박스 시작>

실제로 2003년에 발표된 교통개발원의 연구보고서는 덤프 기사의 매월 적자가 100만 원에 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덤프연대는 최근 경유가 폭등으로 덤프 기사의 평균부채가 3800만 원에 달하고, 25%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스 끝>

고유가는 그렇다 치고, 운송료를 대폭 올리는 것은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면박이 돌아왔다.

"운송료 올리면 덤프 기사 부리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다 죽으란 말입니까? 우리도 얼마 못 남깁니다. 원체 도급비가 얼마 안되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전 덤프연대 파업 지지해요. 하지만 운송료 올려주고 싶어도 우리 하도급 업체에서는 여력이 없는 걸 어떡합니까"(이승철 씨)

"남들은 우리가 돈 좀 버는 것 있을 줄 아나본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근근히 버티는 수준이에요"(김상경 씨)

"그래도 너(김씨)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덤프 기사보다는 좀 낫잖아. 그 양반들 얼마나 고생하냐. 우리가 운송료 못 올려주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덤프 기사보다 더 죽는 소리 내면 안 되지……."(이승철 씨)

김 씨와 이 씨의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론은 운송료를 올리는 방안은 별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재벌 건설사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이 여유를 부릴 만한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유가를 낮춰야 문제 풀린다"**

이 씨는 경유가를 대폭 낮추는 수밖에 없다는 종전의 말을 반복했다.

"경유가를 700~800원 선으로만 낮춘다고 하면 덤프 기사들 만족할 거에요. 모든 문제 일소되요. 파업은 무슨 파업이에요. 다 먹고 살자고 건설현장에서 흙 나르고 사는 건데, 정부가 봐줘야 하는데……."

"그러면 형님, 저는 차(승용차)팔고 이 일(하도급일)도 때려치우고 덤프 트럭 기사 할랍니다"(웃음)(김상경 씨)

2시간 남짓 화로 위에 놓은 오뎅국이 식어가는 줄 모르게 이들은 덤프연대 파업,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요약할 수 있는 건설업계의 부조리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과적 시키기 싫지만, 과적을 시켜야 자신(하도급 업체)들도 살 수 있다는 말에서부터, 재벌 건설회사가 일 년에 수억 원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챙긴다는 말도 나왔다.

***"덤프 기사도 서민, 우리도 서민……정부가 나서야죠"**

덤프연대 파업이 내일(25일)이면 끝나기 때문에 내일부터 다시 일해야 한다며 이들은 서둘러 자리를 마감했다.

이승철 씨는 기자에게 "덤프 기사나 우리나 모두 서민이니 누굴 탓하기 힘들다"며 "다만 이런 불합리한 건설업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 가만히 놔두는 정부가 문제 아니냐"는 말을 남기고 귀가길을 재촉했다.

같은 시각 덤프연대 사무실에서는 파업을 지속할 지 여부를 묻는 찬반투표 결과를 집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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