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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과적 시킨 사람이 벌금 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현장의 목소리] 35년 경력 덤프 기사의 항변

사회에 나와서 본격적으로 가진 직업이 덤프 트럭 운전기사였다는 이승규(54) 씨는 벌써 35년 동안 덤프 트럭을 몰았다. 한 동안 돈 벌이가 괜찮았다는 그는 지난해 경유가 인상으로 매달 100만 원 이상의 적자를 본다고 21일 기자를 만나 토로했다. 게다가 최근 강화된 과적 단속이 여러가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현재 파업을 진행중인 덤프 연대는 이날 오전 서울시 관계자와 과적 단속과 관련한 면담을 앞두고 서울시청 앞에서 바로 이 과적 단속의 문제점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바로 이 자리에 함께 참여했던 이 씨를 만나 이들이 최근 파업에까지 이르게 된 최대의 현안 가운데 하나인 과적 단속의 문제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서울시가 올해 초부터 강화하고 있는 과적 단속이었다. 단속에 걸리면 영락없이 초범일 경우 50만 원, 재범일 경우는 최대 200만 원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올해만 4번 단속된 이 씨의 경우 과적 단속에 걸리면 벌금 200만 원은 호주머니에서 꺼낼 각오를 해야 한다.

도로 파손을 막고 운행 안전을 위해 과적을 단속한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수긍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씨는 기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걸걸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과적 단속의 불합리성은 일정 타당해 보였다. 이씨는 최근에 부당하고 느낀 한 가지 사례를 기자에게 소개했다.

***제멋대로인 측중기(저울)**

지난 5월 9일 경기 구리시 꽃단지 앞을 지날 때 이 씨 앞에 과적단속반이 나타났다. 봉고차에 측중기(과적 여부를 가리는 저울)를 실은 단속반은 단속반원 2~3명과 공익근무요원 5~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속반이 무게를 달아보니 11t 350㎏. 영락없이 이 씨는 벌금을 물어야 되는 상황에 몰렸다.

15t 트럭이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무게는 10t이 정량이다. 단속반은 오차를 감안해 보통 10% 초과분까지는 벌금을 부과하지 않지만, 이 씨는 거기서도 350㎏을 더 초과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경기도 안 좋아 생활비도 쪼들리는 판국에 벌금을 내려니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이 씨는 단속반원과 2시간 동안이나 벌금을 내지 않겠다고 승강이를 벌였다. 하지만 이 씨가 벌금을 낼 수 없다고 버틴 이유는 단지 억울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벌금을 내도록 한 측중기를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속반원과 이 씨는 서로 합의해 재측정을 했다. 2번 정도 측정을 다시 해봤지만, 정량 초과는 마찬가지. 저울의 바늘은 500kg씩 늘고 줄기를 했지만 11t은 훌쩍 넘었다.

이 씨는 다시 한번 간곡히 재측정을 부탁했고, 이번에는 장소를 바꿔 인근 고속도로 위에서 재측정을 시도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11t 이하로 나온 것. 결국 이 씨는 2시간의 승강이 끝에 벌금 부과를 피할 수 있었다.

이 씨는 이같은 일화를 소개한 뒤 "장소마다 다르게 나오는 측중기를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며 "덤프 트럭 기사 누구도 측중계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나처럼 성질 있는 사람이나 재측정을 요구해 벌금을 피할 수 있지만, 대부분 트럭 기사들은 억울한 것을 알면서도 벌금을 내는 일이 태반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씨와 같은 경험을 한 덤프 기사들이 다수다. 덤프연대가 작심하고 지난 14일 단속반원들과 서울북부도로관리사업소 소유의 계측기 2대를 가지고 국가 공인 계측기 교정기관인 CAS를 오가며 측정해본 결과 측중기가 엉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측중기 마다 500㎏ 이상 오락가락 했던 것.

***"왜 내가 벌금을 내야 합니까? 난 과적을 원치도 않았는데…"**

한편 이승규 씨는 측중기의 불안정성은 둘째 문제라고 했다. 그는 "범죄를 강요한 사람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니냐"며 "과적을 강요한 업주는 놔두고 과적을 원치도 않은 운전기사에게 벌금을 왜 때리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말을 이었다.

"과적하면 기름값 더 나오죠, 벌금 낼 위험 있죠, 사고 위험 있죠…. 운전 기사에게 좋은 것 하나도 없어요."

따지고 보면 과적 안 하고 정량만 운반하면 운반 횟수가 늘어나 운임료도 높아지기 때문에 운전기사에게는 과적 보다 정량 운반이 훨씬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승규 씨뿐만 아니라 어느 덤프 트럭 기사도 과적을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도로법은 과적 단속에 걸리면 해당 운전기사에게 벌금을 물리도록 되어 있다. 덤프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과적 단속 5만여 건 중에 사업주 처벌은 100여 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덤프 운전 기사에게 벌금이 부과됐다.

'누가 과적을 강요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씨는 "토목공사를 하는 원·하청 회사와 업주들"이라고 지목했다. 나아가 '(부당한 과적 요구를) 거부할 수 없냐'는 질문에 그는 "딱 한번 과적하기 싫다고 대들었더니, 다음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고 답변했다.

이승규 씨는 "한 업주와 관계가 틀어져 한번 일거리를 잃게 되면, 다른 일거리를 찾는 데까지 많은 노력과 함께 시간이 소요된다"며 "억울하더라도 업주 등의 과적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나는 전과자"**

이씨는 끝으로 자신은 전과자라고 밝혔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과적으로 단속이 되면 형사입건 조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과적 강요당하고, 억울하게 벌금내고, 결국 전과자까지 되는 것이 덤프 트럭 기사의 운명"이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덤프 기사 중에 전과자 아닌 사람 없다"며 과적 단속의 불합리함으로 덤프 기사 대다수가 피해를 보고 있음을 암시했다.

이같은 덤프 운전 기사들의 억울한 사정은 정부도 일정 부분은 이해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최근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덤프연대와의 실무교섭을 통해 과적 관련 요구사항을 상당부분 받아들이기로 내부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로 정부는 조만간 과적 책임자에게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 조항을 첨부한 도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밖에 오는 26일 서울시 건설안전본부 책임자와 덤프연대는 이승규 씨의 사례와 같이 계측과 관련된 문제점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사실 확인을 거친 뒤 개선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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