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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선 방패·험한 욕설 너머 행복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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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선 방패·험한 욕설 너머 행복이 있을까?"

[용산, 냉동고를 열어라] 슬픔과 행복의 기록

1월 20일 발생한 용산 참사가 다섯 달이 넘도록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5명의 철거민 희생자의 시신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서울 순천향대병원의 냉동고에 있다. 유족, 철거민, 이들을 돕는 시민은 날마다 참사 현장 앞에서, 그리고 수시로 유관기관을 방문해 사과와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지만 정부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행세만 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서 용산의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는 하루속히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태세다. 문정현 신부 등 참사 현장을 지키는 철거민과 시민들은 날마다 용역업체 직원의 시비를 상대해야 한다. 다섯 달 전과 비교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문화예술인이 이 같은 용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연재를 시작한다. 6·9 작가선언 모임을 비롯해 작가, 미술가, 만화가, 사진가 등으로 구성된 '용산참사와 함께 하는 예술가들'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용산 참사에 대한 자신의 에세이를 풀어낼 예정이다. <편집자>

지난 6월 10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는 140인 추도 문화예술행동 행사가 있었습니다. 다섯 명의 용산 주민과 한 명의 경찰 특공대원이 죽음을 당한 지 140일 되는 날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이 텃밭을 새로 만들고, 마을 사진관을 만들고, 캐리커쳐와 벽시와 벽그림들을 그리고, 연극과 춤과 노래와 풍물이 어우러져 12시간 동안 릴레이 문화 공연도 이어졌습니다.

저 또한 제 작은 재주가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이 용산을 기억하게 하고, 이명박 정부가 감춰둔 비밀을 꺼내놓고 사과하는데 도움이 될까 참여했습니다.

경제가,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또한 생명의 귀함을 빛내고자 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막무가내 삽질 경제 정책을 '신자유주의'라는 그럴듯한 미명으로 감싼 채 극악스럽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사실은 그 단어 앞에는 '자본만의' 라는 형용사가 더 붙어야 하지요.) 그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내쫓기고, 다치고,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용산은 그런 참사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어쩌면 저는 제 나름의 행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즐겁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을 더 이상 이 정부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140인 추도 예술행동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각진 투쟁도 중요하지만 부드럽고 경쾌한 문화의 힘으로라도 아픔을 달래고, 기운을 찾고, 다른 사회를 꿈꿔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참가한 문화예술인 시국 선언이 끝나고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제 생각은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재개발 공사를 하기 위해 둘러쌓아 놓은 임시벽에 평화를 상징하는 스티로폼 꽃들을 붙이는 놀이를 하는 순간, 근처에서 하이에나처럼 노려보던 사람들이 나타나 훼방을 놨습니다. 용역 깡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벽에 붙여놓은 꽃들을 마구 떼어내고, 그 벽이 자신들의 사유재산이라며 악다구니를 놓았습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따로 공부를 한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사유재산을 마구 뜯어냈습니다. 사진을 찍는 기자들의 카메라도 막고, 빼앗고 상황이 험악해집니다. 저는 얼른 스케치북을 꺼내 그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들 용역깡패들의 눈빛은 오직 자신들을 고용한 재개발조합과 건설사의 사유재산만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는 듯 했습니다. 실상은 인성을 저당 잡히고 받는 조금의 일당을 지키고 싶은 슬픈 폭력들이었습니다. 벽을 부순 것도 아니요, 불을 지른 것도 아니건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사유재산을 주장하며 다른 이들의 사유재산을 마구 헤집어놨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현재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보는 듯 했습니다. 힘센 자들은 자신들만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사유재산을 훼손합니다. 어디에서 허가를 받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행동대장 격인 듯한 이는 한번씩 몰려와 꽃들을 떼어냈다가 항의하는 우리에게 밀려나서는 눈치를 살핍니다. 아, 이런! 그들이 사유재산을 이야기했던 것은 그냥 핑계였습니다.


그들과 몸싸움을 하다가 누군가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했나 봅니다. 그러자 바로 그 곳을 향해 달려듭니다.

"씨O! 너 욕했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유재산을 빙자해서 이 행사를 훼방놓을 작정을 한 것이지요.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을 방해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분위기는 그들 의도대로 자꾸 험악해지고 그들은 이제 막 나갑니다. 악다구니를 쓰며 행복을 찾는 행사를 훼방놓기로 작정한 것을 드러냅니다. 정말 악의에 찬 목소리로 침을 튀기며 내뱉는 그의 단발마라니~!


법 집행을 해야 할 경찰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최소한 이 소란을 조정해 줄 경찰. 저는 이들과 타협을 하고 행사를 진행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요.

아, 저기 있네요.
멀찌감치 서서 묘한 표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네요!

"경찰 아저씨! 좀 도와주세요!"
"대체 경찰은 뭐하는 거요?!"

사람들이 소리쳐도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냥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용역깡패들이 부르면 금세 달려가지만 시민들이 부르면 꼼짝않는 경찰.

시민들 뒤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용역깡패들 뒤에는 엄청난 개발이익을 챙기는 재개발조합과 거대 건설사들이 있었습니다. 떡고물을 나눠먹는 구청 직원들과 정치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경찰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 이게 전국 600개 지역 철거 현장에서 철거민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 무리 속에서 어슬렁거리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용역임을 알아 본 대책위 한 분이 저리 가라고 밀어내려 하자 그 젊은이는 마치 고양이가 발톱을 드러내며 휘두르듯 극악한 목소리로 내뱉습니다.

"건들지마, 씨~!"

아, 한참 어린 젊은이는 잘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측은해 보였습니다. 무엇이 저 젊은이에게 저런 극악한 눈빛과 목소리를 갖게 했을까요?


잠깐 상념에 젖는 사이에 다른 한편에서 또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마 용산 참사와 관련해서 관심을 갖고 있던 국회의원이 온 모양인데 저들은 기가 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을 이야기하며 국회의원에게 대드는 저런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불쑥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용역이 주인인 나라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원이면 다야?!"

사진 찍는 기자들을 향해서도 악다구니를 휘두릅니다.

"사진 찍지 마!!"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다행인가요?

저들을 그리기 위해 관찰을 하다 보니 저들의 행동과 대사는 마치 잘 짜여진 각본 같았습니다. 몇 개의 정해진 행동과 대사를 서로 장단 맞추듯 하며 이쪽저쪽을 헤집었습니다.

아, 빨리 우리 스스로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싶은데 저들은 계속 악다구니와 소란으로 훼방을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란스런 시간도 과거가 됩니다.

용역들은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는지 차츰 잦아들고, 우리 중 일부가 시시비비를 떠맡아서 드디어 행복을 찾아가는 본 행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에 맞춰 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노래 가락에 맞춰 어깨도 들썩이며 용역들이 떼어내 버린 평화의 스티로폼 꽃들을 흔들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갑니다.


저 악기는 이름이 뭘까요?
참 신기하게 생긴 악기입니다. 가뜩이나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한참을 뜯어봤습니다.
난생 처음 듣는 악기 소리에 빠져듭니다.
저 멋진 젊은 연주자는 악기만큼 신기한 분위기를 갖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더군요.


계속되는 흥겨운 가락 소리에 우리는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갑니다. 비록 아픔과 슬픔이 우리 곁을 떠돌고 있어도 우리는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용산의 참사를 이겨내고, 가난한 이웃들의 죽음을 깊이 되새기며,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행복은 살인 개발과 날선 방패와 컨테이너 산성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행복은 양심과 정의와 자유와 평등을 향한 우리들의 행동과 놀이 속에 있는 것이니까요.

벌써 용산 참사 158일째.

저들이 주지 않는 행복을 우리 스스로 만들며, 저 꽉 막힌 순천향병원 냉동고를 함께 열어 나가는 꿈을 꿔봅니다. 오늘의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은 기억되지 않아도, 그날 그리고 다시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평등 평화의 문화, 연대의 문화는 역사 속에 꼭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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