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인천부평을과 시흥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전주 덕진과 완산갑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완패했다. 절반의 승리인 것이다. 그래도 현 정권의 가장 중요한 근거지인 수도권에서 승리하면서 5월 정국의 주도권을 확대 강화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민주당에게 뜻 깊다.
야당 존재감의 부재, 10%대 중반에서 화석화된 지지율, 허약한 리더십 등 고질적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도 발견했다. 10%대 중반에서 고착돼 있던 당 지지율은 수도권 승리의'지지율 선도효과'로 인해 20%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수도권에서 이탈했던 지지층이 일부 복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과정에서 사정정국의 영향력을 일정부분 흡수했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사정수사의 파장과 상관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의혹을 공세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전주에서의 패배로 인해 현 정세균 대표 체제를 중심으로 한 주류의 리더십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동영 전 장관의 복당을 둘러싼 비주류의 공세를 제어하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은 당의 앞날에 불길한 징조다. '주류 vs. 비주류'간 당권투쟁의 전초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정치적 근거지인 호남에서 야당 지지자들의 투표가 갈라졌다는 점은 민주당 지도부와 정동영 전 장관 모두에게 분열의 원죄를 제공한다. 당분간 양측은 분열과 분당의 요소를 조기에 제거해야 할 책무를 같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동영 전 장관은 신건 전 국정원장과의 동반승리를 통해 호남대표성을 일부 인정받았지만, 선거과정에서 정치적 도덕적 명분을 상당부분 손실한 것은 치명적이다. 설사 복당이 이뤄진다 해도 N분의 1 이상의 지도력을 보장받기 힘들다. 본인이 했던 말처럼 무소의 뿔처럼 한동안, 혼자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대 수혜자는 손학규 전 대표다. 당의 부름에 백의종군하면서 정동영 전 장관과 대비되는 희생과 헌신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질적 정체성과 한나라당 탈당 전력 등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을 상당부분 치유하면서 10월 재보선을 통한 원내진입까지 보장받았다. 수도권 승리의 전과를 현 지도부와 나눠 가지면서 향후 정세균 대표 체제 이후를 예비할 정치환경을 조성한 것도 중요한 성과다. 이제 그의 칩거는 한결 더 그 모양새가 좋을 수밖에 없다.
아직 심판의 날은 오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5대0 참패의 악몽이 현실화되면서 선거책임론과 함께 당내 분란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 동반 퇴진론까지 거론되면서 본격적인 내홍의 시기에 접어드는 것이다.
선거참패의 책임론을 둘러싸고 벌어질 권력투쟁이 현 지도부의 리더십으로 제어되지 않는다는 점과 현 지도부를 대체할 진영도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앞날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경주에서 친박 무소속 정수성 후보의 당선으로 새삼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을 확인했지만,'자당의 후보를 지원하지 않은 도덕적 원칙의 문제'를 친이계가 직접 공격한다면 양대 계파간 전면전이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선거패배의 여파로 인해 5월부터 시작되는 당내 정치일정이 정상적으로 집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으며, 이는 당협위원장 교체와 원내대표 경선의 과정이 당내 정치그룹간 합의보다는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월 초로 예정된 당협위원장 임명은 당 내홍의 첫 번째 진앙지가 될 것이며, 차기 원내대표 선출 과정은 친이친박간 권력암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출발선이다. 친이친박간 권력투쟁은 6월에 있을 지역 시도당위원장 경선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그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내 제 2기 권력지형과 세력재편이 완결될 것으로 보인다.
▲ 이명박 대통령의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기존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
그러나 이 모든 영향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처음부터 4.29 재보선의 이슈가 정권심판론에서 비껴 있었다는 점은, 재보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해석을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심판이 아닌 집권여당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축소할 수 있다. 재보선의 참패로 인한 정치적 부담의 가중과 상관없이, 선거패배의 책임을 여당에게 돌리면서 MB식 국정강경드라이브를 가속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진 것이다.
당연히 여당 참패 후 제기되는 국정쇄신이나 인적개편은 고려될 가능성조차 없으며,'정치와 국정을 분리하는' MB식 국정운영 스타일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천신일로 대표되는 측근관련 검찰수사가 곧 공식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도덕적 이슈에 대한 데미지가 약한 정권의 특질상 이명박 대통령이 받을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정정국의 일상화를 통해 국정에서 정치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사정정국의 강화가 MB식 국정기조를 뒷받침하는 우호적 기제로 계속 작용되는 것이다.
결국 답답한 것은 국민들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심판했지만 심판받지 않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권력의 오만한 통치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권의 통치력은 국민들이 불신하는 만큼 누수의 정도를 더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아직 심판의 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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