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최근 큰 관심을 모으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더 나은 모습을 찾는 새로운 인터뷰 연재를 마련한다. 전문 인터뷰어 권은정 씨가 직접 한국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이 연재는 총 2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소장 이영환 교수)는 사회적 기업가 인적 자원 개발 교육과 사회적 기업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는 성공회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이다. (☞사회적기업연구센터 바로 가기) ① "'금호동 철거민' 유 이사, 사고 치다" ② "20대 청년의 반란…빗자루 들고 아줌마와 함께 청소를!" ③ "일하고 싶은 실업자는 다 모여라" ④ "중고를 새 컴퓨터로…덤으로 세상도 재생합니다" ⑤ "'대박' 연극 흥행 비결은? '옆집 아저씨·아줌마!" ⑥ "귀농? 농사 지을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세요" |
▲ '바리의 꿈' 황광석 대표. ⓒ프레시안 |
끝도 없는 지평선 대륙의 바람에 흔들리는 콩잎파리. 프리모르스키(연해주)의 햇빛을 받고 자란 콩은 고려인 동포의 손길을 거쳐 청국장이 된다. 바로 이 청국장이 한반도 우리 밥상에 오른다. 연해주 콩의 여정을 따라잡으러 '바리의 꿈' 대표 황광석(48) 씨를 만났다. 고려인이 만든 청국장을 들여와 판매하는 이 사회적 기업의 사무실은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고려인을 아세요?"
황 대표는 만나자마자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바리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우리의 민족 신화 '바리 공주 이야기' 말이에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바리 공주가 서역만리 생명수를 찾아와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려낸다는 그 신화의 주인공 바리, 회사 이름은 바로 거기서 따왔다.
'바리의 꿈'은 창업한 지 5년 되었지만 이야기는 그전에 시작된다. 10년 전 쯤에 식량난에 처한 북한 동포를 돕는 운동을 하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활동가 몇몇은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 동포를 만나러 갔다. 그 팀에 황 대표도 있었다.
"그때가 1월 한창 추운 겨울이었는데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막사에 살고 있더라고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동포들이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있으면 돕는 게 당연하다, 이런 생각에 고려인 자매결연 사업을 시작했지요. 그때 우리 돈 5만 원 정도면 4인 가정이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식량난에 처한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운동이 중국의 조선족과 구소련의 고려인 동포에게 관심의 폭을 넓히면서 재외동포 지원 조직인 동북아평화연대가 탄생했다.
"고려인 동포라면 과거 독립 운동했던 이들의 후손들 아닙니까? 그들이 받는 대우에 화가 났습니다. 고려인 동포를 돕는 것이 또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려인 동포는 우리와 같은 핏줄을 나눈 존재, 조국을 떠난 유랑하는 그들이 어쩌면 바리 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조국을 지키는데 큰 힘을 보태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동북아평화연대 사람들은 고려인 동포를 돕기 위해 팔을 걷었다. 한글 교실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센터도 문을 열었다.
그러나 동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살 거처였다. 집을 사서 수리해 그들에게 기부했다. 그리고 고려인들이 정착해서 살아가는데 가장 효과적인 사업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려인들이 앉고 지나간 자리에는 바위 위에도 풀이난다.' 고려인의 강점은 농사라는 것이지요. 그전부터 중앙아시아 쪽에서 목화나 쌀을 재배하던 대표적인 콜호즈는 전부 고려인들이 맡아하던 곳이었습니다."
비닐하우스와 양계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연해주의 특성에 맞추는 체계적인 농업 방식이 필요했다. 연해주 지역은 방대한 지역이라 대부분 기계로 농사를 짓는 조방농법이었지만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는 그 방식은 고려인 동포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충청북도 괴산의 자연농업연구소가 힘을 보태 순환농법을 연해주 땅에 적용하기로 했다. 곡물 재배에 축산 퇴비를 활용하는 친환경재배 자연농법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고려인 동포들이 차츰 관심을 가져 지금은 230여 가구가 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고려인 동포가 만든 청국장 맛보세요"
▲ "연해주 고려인 동포라면 과거 독립 운동했던 이들의 후손들 아닙니까? 그들이 받는 대우에 화가 났습니다. 고려인 동포를 돕는 것이 또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레시안 |
천혜의 콩밭, 콩의 원산지가 아닌가! 러시아의 '콩 바구니'라고 할 만한 지역이었다. 품질은 물을 것도 없이 최상. 워낙 드넓은 땅이니 화학비료나 농약과는 상관이 없었다. 봄에 씨를 뿌려놓고 그저 기다릴 뿐이다. 콩은 여름의 비바람을 맞으며 해충이 오면 견디고 잡초가 자라면 그보다 더 강하게 자랄 뿐이었다. 가을에는 실로 튼실한 콩들이 열매를 맺었다. 자연 그대로의 콩, 연해주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면?! 한국 시장에서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고려인 아주머니들한테 청국장을 만들 줄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안다고 하시더군요. 옛날에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만들어서 드시던 것을 기억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만들기 시작했지요."
고려인 동포들은 청국장을 먹을 줄 모른다. 냄새도 친근할 리 없다. 그런데 그들은 가정마다 온돌에서 청국장을 발효시켰다. 순재래 방식으로 만들어 나오는 '고려인 차가 청국장'은 차가버섯 진액과 함께 발효시킨다. 자작나무에 자생하는 차가버섯에 든 항암물질 때문에 이 청국장이 더욱 인기가 높다.
"처음엔 싫어했는데 유전자 안에 뭔가 통하는 게 있는지 익숙해지시더군요. 또 무엇보다 사업이니까요. 하하하…."
이제는 마을마다 공동 작업장을 지어서 청국장을 만든다. 작업장마다 품질 검사가 까다롭다. 품질 유지를 위해 가구당 생산량을 조절한다. 맛을 잘 내는 가구에게는 생산량을 조금씩 늘려나간다. 고려인 2만여 명이 살고 있는 우스리스크를 중심으로 고려인 마을 6개 지역 -우정마을, 순얏센마을, 아시노프카, 끄레모바, 치카일놉카, 노보루사 노프카-중 4개 지역 공동 작업장에서 청국장이 생산되고 있다.
연해주 쪽 현지법인 '동북아평화기금'은 김현동 이사장이 맡아 일하고 있다. 고려인 정착 지원 사업을 제대로 하고자 그는 일찌감치 가족 전부를 데리고 연해주로 옮겨가 살고 있는 사람이다.
'대박'난 연해주 '청국장'…감동의 물결
▲ 황광석 대표는 연해주에서 고려인이 직접 만든 청국장을 한국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성공했다. ⓒ프레시안 |
"맛을 봐주세요. 이건 청국장 쿠키예요. 신제품으로 곧 출시됩니다. 청국장은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이 쿠키는 젊은 층들이 좋아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치즈와 청국장을 순우리 밀에 섞어 만든 것이지요. 4월말에 나오는데 가격은 3300원입니다. 괜찮겠지요?"
괜찮다고 맛있다고 대답했다. 예의상 인사한 게 아니다. 정말 쿠키가 맛있었다. 특히 어린이들 영양 간식으로 딱 알맞을 성 싶었다.
"이건 청국장 말림인데 콩이 작고 알차서 씹어 먹는 맛이 아주 고소합니다. 청국장 가루는 물이나 요플레 같은 것과 섞어 드시면 좋습니다. 음식은 약이 아니니까 꾸준하게 드셔야 효과가 있습니다. 다이어트 효과도 만점이지요. 콩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세 요소가 골고루 들어 있지 않습니까? 요즘 피부 미용도 장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청국장만큼 장에 좋은 음식이 없지요! 일단 한번 드신 분들이 다시 찾으니 그게 큰 힘이 됩니다. 제품에 자신이 있는 것이지요!"
황 대표는 내친 김에 '고려인 차가 청국장' 자랑을 늘어놓는다. 당연하다. 그는 청국장 회사의 대표다. 그간 판로 확장을 위해 동분서주한 것을 생각하면…. 사실 애초 '바리의 꿈' 계획은 국내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고려인 차가 청국장'을 시장에 들여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벽에 부딪혔다. 수입품이라서 생협 내부 규정상 취급 불가라는 것이었다. 국내 생산자들의 반발이 크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2007년부터 운영을 맡았던 황 대표에게는 판로 개척이 발등의 불이었다. 후원 회원에게 팔고 각 단체 행사나 노조 모임 같은데 가서 호소(?)형 판매를 해보기도 했지만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고려인 동포 아주머니들의 한숨소리가 이곳까지 들릴 정도였다.
얼마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청국장 판매에 서광이 비친 것은 한 인터넷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부터였다. 인터넷 누리꾼은 연해주 콩, 고려인 동포가 만든 청국장에 감동을 받아 '장바구니 담기'를 계속 클릭했다. 주문이 몰리는 바람에 2007년 말에는 납품 기한에 맞추려고 24시간 3교대로 일해야 했다. 감동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상상이 안 되는 일이었지요. 아무리 좋아도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일하는 문화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결국 자기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납품 기한을 지켜야 한다고, 일하자고 하더군요. 또 일한 만큼 소득도 좋으니 그 보람도 컸지요."
다행히 그 이후 매출은 꾸준히 이어져 올해 들어 안정적으로 되었다. 제품 주문이 일정하게 이뤄지니 콩 생산량도 예측가능하게 되었다. 지금 연해주 프림코 농장 500만 평 밭에서는 봄에 뿌린 콩이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다. 현지 고려인 농민들과 연간 36톤을 구매한다는 계약도 했다.
"이제는 신제품 개발에 집중해야지요. 그동안 유통기한 때문에 끓여먹는 된장은 생산을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된장을 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항아리 문제나 그런 여러 가지 조건이 어렵지요. 메주로 국내에 들여와 장을 담아 볼 계획입니다. 그러면 고려인 농민들과 한국의 된장 달인들이 함께 만드는 된장이 되겠지요!"
연해주 지역에 널린 야생초도 역시 개발 대상이다. 도라지, 민들레, 고사리 등을 채취해서 액청이나 액기스로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연해주 청정 지역의 자연 상태를 훼손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은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단다.
청국장에서 시작된 꿈…동북아에 평화를!
▲ '바리의 꿈'의 최종 목표는 모두가 어울려 공생하는 평화로운 동북아시아를 만드는 것이다. 청국장 사업부터 시작했지만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프레시안 |
더불어 '바리의 꿈'은 앞으로 농업 부문 연해주 지역 컨설팅 사업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 말과 러시아 법에 낯설지 않습니다. 고려인 동포들과 연결되어 연해주 지역 해외 농업 개발에 선도적인 컨설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콩과 밀 가격이 급등하였을 때 여러 기업들이 연해주 쪽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연해주 쪽 10년간의 연륜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확한 컨설팅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바리의 꿈'의 다른 중요한 사업은 재단과 함께하는 동북아평화여행학교다.
2007년부터 본격화된 이 여행학교 프로그램은 청소년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게 목적이다. 청소년들이 연해주 지역을 탐방하고 체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발해의 옛터, 21세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연해주에서 한반도 청년들은 큰 숨을 들이쉬며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두만강을 따라 북한을 멀리서 보기도 하고 백두산에 오르기도 한다.
학기 중에는 주로 대안학교 학생들이 다녀가고 방학이 되면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을 다니러 온다. 학생들은 2주정도 머물면서 집수리도 하고 고려인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보기도 한다. 재단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약 80명 정도 인원이 수용 가능한 시설이다.
"연해주 땅 10평을 1만 원에 팝니다"
요즘 '바리의 꿈'이 바라는 큰 꿈이 있다. 다음 달에 시작할 '연해주 희망 캠페인'이다. 지난 10년간 연해주 활동의 성과를 정리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알려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참여 방식은 일반 기부 방식과, '바리의 꿈'에 국민주주로 출자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연해주 희망농장의 10평을 1구좌로 해서 1만 원입니다. 10만 구좌를 모으면 100만 평의 농장이 가능합니다. 거기 콩을 심어 고려인 동포들을 돕고 또 그들이 북한 어린이를 도울 수 있겠지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가공 시설을 만들어 고용 창출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친환경 먹을거리를 제공하면서 또 지속 가능한 평화 지원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바리의 꿈'은 결국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보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 "연해주 희망농장의 10평을 1구좌로 해서 1만 원입니다. 10만 구좌를 모으면 100만 평의 농장이 가능합니다. 거기 콩을 심어 고려인 동포들을 돕고 또 그들이 북한 어린이를 도울 수 있겠지요." ⓒ프레시안 |
이역만리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고려인 동포들, 민족의 암울한 시기에 생존을 위해 혹은 조국 독립을 위해 고국을 떠났던 이들의 후손이다. 외롭고 어려운 처지에 살았지만 바리 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드넓은 대륙의 거친 바람도 피하지 않았다. 그 형제들이 우리 앞에 두 손 가득 노란 콩을 담아 내민다. 우리가 마주 받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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