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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삐걱', 땀 '줄줄', 숨소리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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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삐걱', 땀 '줄줄', 숨소리 '헉헉'

[오체투지 68일째] 한여름 날씨에 직접 해보니…

순례 68일째인 11일, 올해 가장 더웠다. 공주의 최고 기온은 26도였다. 다들 힘겨운 가운데 오체투지가 이어졌다.

부활절 전날인 이날은 문규현 신부가 순례단에서 빠졌다. 부활절 미사를 위해 전주 성당으로 10일 저녁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문규현 신부는 12일 저녁에 다시 순례단과 합류할 예정이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공주에서 천안으로 향하는 순례단을 괴롭혔다. 다들 땅바닥에 엎드린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했다. 얼굴이 새빨게 지면서 연신 헉헉거리는 이도 있었다. 날씨가 전날에 비해 갑자기 무더워졌기 때문에 순례단의 피곤함도 그 무게를 더했다.

아버지와 함께 순례단에 참석한 박진영(11) 군은 "아빠가 가자고 해서 왔는데 힘든지는 모르겠다"면서도 다음에 또 올 거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김유민(가명·37) 씨는 "처음 오체투지에 참여한다"며 "이렇게 힘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헉헉거렸다. 이마에 두른 수건은 땀으로 젖었고, 얼굴은 새빨개졌다.

결국 "아직까지 할 만 하다"던 김 씨는 박 군과 같이 얼마 뒤엔 순례단 뒤쪽으로 떨어져 걸었다.

▲ 오체투지 순례단. ⓒ프레시안

"엎드리면 대지를 품고, 누우면 대지를 짊어지는 것 아니냐"

반면 여유로운 얼굴로 오체투지에 임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한일(38) 씨는 "오체투지는 세상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라며 "엎드리면 내가 땅을 품어 안고 지구와 함께 한다. 반대로 뒤로 누우면 내가 지구를 짊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는 엎드리는 것 대신 뒤로 눕는 것을 해보고 싶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박정규(43) 씨는 "누우니 몸에 무리가 없고 편안하다"며 "보이는 것, 향기 등에 대해 분별이 없어지고 의식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체투지는 내 몸과 내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자기를 바라보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외적으로 답답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데 온몸을 던져서 자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편하지 않겠나 싶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복잡한 고민이 없어져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목을 들고 버티다가 이후엔 힘들어서 마음을 놓다보니 코, 입, 이마, 볼까지 땅바닥에 비볐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새까맣게 얼룩져 있었다.

대지의 호흡을 느낀다는 말이 되뇌어지는 길을 가는 순례단

"요즘 느낌이 불편하다. 그래서 편해지려고 한다. 오체투지를 하면 편하다. 포장된 도로보단 땅에서 하니깐 참 좋다. 대지하고 호흡이 처음엔 잘 안되는데 일치되는 경계가 있다. 대지의 호흡을 느낀다. 그리고 대지가 안아주는 푸근함이 있다. 호흡이 일치되면 그렇게 편안하다."

오체투지를 떠나기 전 수경 스님이 화계사에서 한 말이다. 비록 무더운 날이었지만 이 날 순례단이 만났던 길에는 대지가 안아주는 듯한 푸근함이 있었다.

이날 순례단은 오전 일정을 마지막으로 공주시 경계를 넘어 천안 지역으로 진입했다. 차령고개 옛 휴게소 자리 공터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순례단은 구 23번 지방도로를 통해 천안시 경계로 순례를 지속했다.

구 23번 지방도로는 이제껏 순례단이 걸었던 길과 사뭇달랐다. 무엇보다도 조용했다. 이전까지의 길은 신 도로라서 길도 구불구불하지 않고 잘 닦여져 있어 수 많은 차들이 높은 속도를 내며 지나다녔다. 차들이 내는 굉음에 순례단은 정신이 아찔할 수 밖에 없는 노릇.

▲ 이날 길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프레시안

'축복받은 길' 하지만 앞으론…

구 23번 지방도로는 대부분의 차량이 신 도로를 이용하는지라 조용했다. 굉음도 들리지 않으니 길 양 옆 산에서 들리는 산새 소리부터 순례단의 발자국 소리까지도 들렸다. 이날은 징 대신 죽비가 등장하기도 했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죽비가 잘 들리지 않아 부득이 징을 이용했다.

명계환 불교환경연대 조직팀장은 "축복받은 길"이라고까지 칭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오체투지는 계획된 구간보다 500미터(m) 더 나아간 뒤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것도 12일부터는 호사가 될 예정이다. 앞으로 천안부터 안양까지 가는 길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다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천안 시내를 관통할 예정이다. 오체투지 진행팀장인 명호 씨가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하는 이유였다.

▲ 쉬는 시간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두 성직자. ⓒ프레시안

ⓒ프레시안

팔다리 '삐걱', 땀 '줄줄', 숨소리 '헉헉'

"오늘도 해야죠?"

지난 11일 취재를 위해 순례단을 찾은 기자에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오체투지 순례단의 명호 진행팀장이 다가와 '능글맞게' 웃으며 이와 같이 말했다.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오체투지를 또 하라고?'

지난 번 취재차 순례단을 방문했을 때 명호 팀장의 '강압'에 못이겨 이미 하루 오체투지에 동참했었다. 그 때 명호 팀장이 권유한 이유는 "어떻게 오체투지를 해보지도 않고 취재를 할 수 있느냐"였다.

그래서 오기로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오기는 결국 화만 불렀다. 취재는 고사하고 제 한 몸조차 간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시작한 지 1시간…팔다리는 삐걱, 땀 삐질, 숨은 '헉'

처음에는 생각보다 힘들진 않다. 도리어 속으로 '얼마 전 새로 산 청바지가 더러워지겠네, 잠바를 벗을까, 옆에 사람과 보조를 잘 맞춰야 '쪽'팔리지 않을 텐데…', '하루 평균 4킬로미터를 가니깐 한 번 엎드리는데 5미터 간다고 치고, 그럼 대략 800번을 땅에 엎드려야 하는 군'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만큼 여유로웠다.

얼굴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 엎드리면서도 이마를 아스팔트 위에 대지 않고 목에 힘을 주고 버텼다. 가뿐하다는 생각에 명호 팀장의 "쉬어가겠습니다"는 말이 너무 자주 나온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어깨와 팔, 다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날씨가 더운 것도 아니었는데 이마에서는 땀이 삐질 삐질 나기 시작했고, 숨은 거칠어지다 못해 엎드릴 때 '헉'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도 목이 너무 아팠다. 아스팔트 위에 이마를 대지 않으려고 버티니 목이 뻐근할 수밖에. 취재하는 척 하며 빠져나올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수첩과 카메라는 진행 차량에 태워져 있었다. 어쩌랴. '쉬어가겠습니다'라는 말은 왜 그렇게 나오지 않는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한 번 더 하라는 말에 황급히 줄행랑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힘은 더 들었다. 몸이 힘들다 보니 이마도 닿기 싫어했던 아스팔트를 뺨으로 대고 턱으로 문지르는 등 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다. 팔과 다리는 아예 땅 위에 비비는 수준이었다. 새로 산 청바지 걱정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얼마를 했을까. 엎드려있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일어나고 다시 엎드리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고난이었다. 일어설 것을 알리는 징소리는 정말 듣기 싫었다.

그렇게 4킬로미터 가까이 되는 구간을 오체투지로 지나왔다. 천신만고 끝에 오체투지를 끝낸 기자에게 명호 팀장이 다시 찾아왔다. 그는 웃으며 "내일까지만 더 해보라"며 "그래야 진정한 오체투지를 깨달을 수 있다"고 붙잡았다. '또 하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오체투지를 하고 난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엎어지고 말았다. 팔, 다리, 어깨, 목, 무릎, 가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갈비뼈 부분은 멍까지 들어 아주 가관이었다. 이날까지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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