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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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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돼…"

[현장] 오체투지 떠나는 성직자들…"낮은 곳에서 희망의 근거를"

'뿌~~~' 짧게 5번, 그리고 길게 한 번 나팔소리의 울림이 28일 충청남도 공주 계룡산에 위치한 신원사 중악단 앞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천고제의 시작을 알리는 대고 소리가 퍼지면서 비나리가 시작됐다.

다시 대고의 울림이 중악단에 퍼지자, 오체투지를 떠나는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가 중악단 앞에 마련된 재단 앞으로 나섰다. 이들은 재단 위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워 하늘과 땅을 모시는 분향 의식을 진행했다.

이후 중악단에서 참신례를 올린 후 대고 소리에 맞춰 솟대를 앞세우고 정안수와 향로, 다례상을 받쳐들고 중악단을 나와 참례자 모두와 상호 삼배로 인사를 올렸다. 2009년 오체투지를 시작하는 천고제의 시작이었다.

▲ 다시 오체투지를 떠나는 세 명의 성직자들. ⓒ프레시안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는 세명의 성직자들

'징~~~' 징소리가 흙바닥 위에 울리자 세 명의 성직자들은 땅바닥에 코를 납작하게 엎드렸다. 중악단 앞에서 징 소리를 기다리던 진관 스님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선 눈을 감았다. 문규현 신부는 자신이 쓰던 안경을 신도에게 넘겼다. 전종훈 신부는 두 손을 합장한 채 앞으로의 고행을 준비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세 성직자는 세 발을 떼고 난 뒤 땅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나선 다시 하늘을 향해 몸을 꼿꼿이 세웠다. 신체의 다섯 부분인 양 팔꿈치, 양 무릎 그리고 이마를 땅에 완전히 대는 오체투지를 그렇게 수십 번 반복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아지는 자세였다. 이들 세 명의 성직자 뒤엔 오체투지를 함께하는 200여 명의 시민들이 뒤따랐다.

땅바닥에 몸을 던질 때마다 간헐적으로 '허억'하는 소리가 땀방울과 함께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땅으로 내딛는 오체투지는 멈추지 않았다.

이들 성직자들은 "사회적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지식인이나 종교인이 아직도 나서지 않고 있다"며 "그렇지만 희망을 찾기 위한 몸짓은 중단할 수 없다"고 다시 오체투지를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평화와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은 본디 하나"라며 "더 낮은 자세로 우리 삶을 성찰하고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 그 속에서 대립과 갈등을 넘어 사람과 생명과 평화의 길을 찾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 세 개의 솟대를 들고 등장한 무희들. ⓒ프레시안
오체투지는 희망의 깃발

박남준 시인은 고천문을 통해 "이기심의 마음이 나와 내 이웃을 짓밟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을 키우고 있다"며 "인간 중심의 개발 논리가 자연을 병들게 하고 큰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병상 신부는 오체투지가 많은 사람들을 깨닫는 길이 되도록 도와주는 길이 되길 기원했다. 그는 "지금 현실은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공간도 없을 정도"라며 "세 분의 오체투지 발걸음은 새 희망의 깃발을 열어주는 행보"라고 칭송했다.

그는 "이들의 행보가 비록 무력해보이지만 이들 뒤엔 힘을 가진 국민들이 있다"며 "오체투지를 통해 모든 생명체가 용솟음 하는 계기와 평화의 길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평화로운 삶은 비교하고 경쟁하지 않는 삶

이날 오체투지에 참석한 시민들도 평화를 기원하긴 마찬가지였다. 성직자들이 외롭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 참여했다는 홍승표(45) 씨는 청주에서 내려왔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가 잘못 돌아간다고 한다"며 "그들 잘못도 있겠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이것을 풀어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지금 오체투지 같은 힘들이 모아진다면 세상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오체투지로 인해 이미 코 끝이 아스팔트에 문질러져 새까맣게 더럽혀져 있었다.

경기도 화성에서 내려왔다는 장경훈(54) 씨는 현재 사회에서 사는 것이 험악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개개인이 서로 경쟁하고 비교한다"며 "평화로운 삶은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체투지는 더불어 함께 살자는 것"이라며 "시혜적으로 약자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함께 살자는 것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오체투지의 본질을 알면 더불어 함께 산다는 의미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참여를 독려했다.

오체투지 통해 자비의 정신 이뤄지길

어리석은 마음을 길 위에 내려놓고 희망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나는 성직자들. 이들은 이날 오체투지로 2킬로미터(㎞)의 거리를 지나왔다. 매일 4킬로미터의 거리를 지나간다는 계획이다. 첫날인 이날엔 이미 2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수경 스님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비워야 하는데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며 "오체투지는 몸을 낮추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낮추는 기도 행위"라고 설명했다.

세 명의 성직자는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마당을 시작으로 6월 6일 임진각 망배단까지 약 230km를 71일간 일정으로 오체투지한다는 계획이다.

'오체투지(기도)란 옳고 선하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이들은 현실의 모순을 바로잡고 인간관계의 건강성을 회복시키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같이 쓴다'는 자비의 정신이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 오체투지에 참석한 시민들. 한 초등학생이 합장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성직자들. 문규현 신부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프레시안
▲ 오체 투지에 참석한 시민들. ⓒ프레시안

이날 천고제에는 기도 순례 출발을 위해 신경림 시인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서'라는 시를 낭송했다. 다음은 시 전문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서 - 오체투지 2차년도 순례에 부쳐

우리가 나서 자란 땅에 두 무릎을 꿇고
두 팔굽을 붙이고 이마를 맞추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

하늘을 우러러
산과 바위와 나무와 풀을 우러러
내가 흙이 되고 땅이 되고
땅 속의 하찮은 미물이 되어서

천지에서 가장 낮은 것이 되어서
낮은 걸음으로 걸으며 다시
무릎과 팔굽과 이마를 땅에 깊이 붙이며

우리가 염원하는 것은
오로지 이 땅에서 대립과 갈등이 없어지는 것
손과 손이 서로 굳게 얽히는 것
숨결과 숨결이 따뜻하게 섞이는 것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이
오직 하나의 염원으로

서로를 모독하는 말도
서로를 상처내는 폭력도
사람을 죽이고 우리가 쌓은
문명을 파괴하는 온갖 무기도
무릎과 팔굽과 이마처럼 땅에 붙여
흙이 되게 하면서

이 땅을 평화의 땅으로
이 땅을 사랑의 땅으로
이 땅을 희망과 생명의 땅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땅에 다시
무릎을 꿇고 팔굽과 이마를 붙이고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모두 하나가 되어서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모두 하나가 되어서
남쪽 북쪽 모두 하나가 되어서

지라산에서 계룡산까지
계룡산에서 다시 묘향산까지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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