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선'이 돌아오다
김창완의 복귀가 크게 부각되지 않을 정도로 활동을 재개하는 음악인들이 눈에 자주 띈다. 음악을 내세운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기도 했다. 어느 국회의원이 불순하다고 했다는 (바둑판 앞에서 "장이요, 멍이요" 외친 꼴이다) <고고70> 덕에 '데블스'가 기지개를 켰다. 재결성하여 까마득한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서고 있는 '백두산'은 새 앨범 발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50대 청춘로커들과 전영록의 전설적인 조인트 무대가 재현된다면 꽤 감동적일 것이다. 음악인이 박탈당한 유일한 권리는 은퇴이다. '선언'까지 했던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십여 년의 두꺼운 일기장을 갖게 된 인디 신에서도 1세대의 활약과 귀환이 돋보인다. 어느덧 30대 중후반인 그들 덕에 한국도 조만간 40대의 '젊은' 음악인들을 얻게 될 것이다.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가 말했듯이 "좋은 일"이다. 가요계가 침체하고 영화가 흥하던 시절에 배우 전업을 말했다가 상황이 뒤바뀌자 가수로 돌아온 사람과는 경우가 다르다.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공존이 이루어진 이 동네에서 혁신과 복고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유명인사들을 삶의 표시점으로 여기는 대중은 그들의 죽음에 상실감을 느낀다.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을 "국가적 손실"이라고 말하는 천박함과는 다른 차원이다. 어떤 음악 역시 기억의 실루엣이 되어 시간과의 관계를 표시한다. 물론 시간은 일률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문명뿐만 아니라 개인은 서로 다른 시계를 가지고 산다. 동년배의 연예인들을 열거하다 웃음이 터지듯이 같은 시기에 발표된 음악 역시 전혀 다른 지점에 표시된다. 공기에 음악적 에너지가 가득했던 1990년대 후반의 언더그라운드를 떠올리게 하는 표식들 중 하나가 레이니 선이었다. 이들은 수풀을 밟아 길을 내는 행렬에 있었다.
1993년에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96년에 레이니 선으로 하나가 된 젊은이들은 이듬해 서울에서 연 공연으로 단번에 주목 받았다. 해안에 출몰한 이양선과 같은 기괴함은 페이크(fake)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영화 속의 면도 장면과 같은 긴장감이 감도는 데뷔앨범(1988)에 사이키델릭과 호러를 기묘하게 접목했다. 부분의 조합에 머물지 않은 밴드의 아우라는 추종을 불허했다. 얼터너티브 메탈은 신선한 기운을 제공한 움직임이 메인스트림에서 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본으로 활용되었는데, 레이니 선은 그 교본을 가지고 다시 언더그라운드로 탈주했다. 그리고 음반 구석에 'Porno Virus'라고 적어 넣었다.
세상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헤비 록이 쇠퇴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고, 정통에 집착했던 헤비메탈 팬들에겐 사생아로 보였다. 음악을 향한 애정과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개성이 항상 동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이들과 달리, 오히려 확고한 개성이 레이니 선으로 하여금 주변을 맴돌게 했다. 레이니 선을 탐낸 기획사들의 틈바구니에서 맥이 풀리면서 오착륙지에 놓여버렸고, 서서히 전해지는 이야기, 즉 전설이 되어갔다.
모든 과거가 역사가 되진 않는다. 기록되고 평가받지 못한 과거는 검은 장막 너머로 사라질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고 말하고 다시 적어 내렸다. 레이니 선 스스로도 조난당할 곳마저 잃은 난파선이 되기를 거부했다. 꾸준히 음악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는 충분하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 시작했던 친구들이 다시 뭉쳐 네 번째 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박건, 윤두병, 김바다와 같은 '역전의 용사들'까지 힘을 보태주었다.
▲레이니 선. (좌로부터) 김태진(기타), 김대현(드럼), 정차식(보컬), 최태섭(베이스) ⓒ곰엔터테인먼트 |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한 음악하기
잔뜩 심각하게 부르지만 박장대소를 유발하는 <바람피지마>나 듣는 사람까지 부끄럽게 만드는 <부끄부끄>같은 노래들은 딴엔 대중을 의식했을 것이다. 평이함과 무난함을 대중성이라 말하는 위험한 발상 덕분이다. 그러나 막장드라마가 시청률 막강드라마라고 해서 즐겨 보는 이들의 지성마저 막장은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 사랑과 증오의 경계면은 의외로 얇다. 비상함은 곧잘 이상함으로 취급받는다. 평균에 안주하지 않고 파내려가는 시도가 값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이니 선은 이상한 개성을 과감하게 표출하는 쪽을 택했고, 신선한 낯설음과 고유한 중심을 함께 유지하려 든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가능했을까?
고전음악가는 악보를 팔아 생계에 보태기도 했다. 현대의 대중음악인은 계약에 따라 이윤을 나누지만, 예전 기획사들의 주먹구구식 운영과 정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음원시장이 커졌다고 해도 창작자 몫은 적다. 창작자가 아니라 제공자가 주인인양 행세하는 불법공유는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았다. 간혹 거대 자본이나 체제를 향한 공격으로 합리화하지만 실은 더욱 치명타를 입는 소규모 음악의 소외에 동참할 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나름대로 풀어보려는 노력들 중 하나가 음악인 스스로 레이블을 운영하는 것이다.
기획사 시스템 바깥이 흥미로운 이유는 많다. 레이니 선도 하나의 답안을 썼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활동하며 지지대를 갖추었고, 그간 레이니 선을 떠나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해온 최태섭(베이스)의 회사에서 앨범을 제작했다. 간섭이나 압박 없이, 그리고 서로를 신뢰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덕분에 "시대착오적인" 시도가 가능해졌고, 거추장스러운 기타솔로와 90년대식 헤비 사운드, 그리고 기괴하고 맥없는 보컬이 맘에 드는 앨범을 내놓았다.
잘 만들어진 것보다 찰나의 감각이 환영받고 있다. 더구나 레이니 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음악을 '추억'으로 소비하는 세대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레이니 선의 헤비 사운드를 뒤늦은 고집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크게 보면 오히려 신구세대가 함께 헤비뮤직을 재구축하는 현황이 두드러진다. 팬들이 성장하면서 음악인이 되거나 오피니언 리더로서 발언권을 획득했다. 근래 인디뮤직이 조명 받는 것도 이처럼 세대의 발언권과 무관치만은 않다.
아울러 '앨리스 인 체인스' 등 몇몇 밴드들은 항상 레이니 선의 참고목록이었다. 얼터너티브 메탈의 퇴폐미가 레이니 선에게도 물씬하다. 인간사와 문명사가 그렇듯이 영향이 아니라 보편성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후발주의 숙명이다. 씨 없이 자라는 풀은 없다. 하지만 누구를 추종하는 것과 장르에의 참여는 다르다. 이번에 스스로 언급한 '블랙 사바스'와 '켈틱 프로스트'가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보다는 어떤 지향을 밝혔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헤비니스의 형식과 슬픔의 감성이 만난 [Origin]
▲레이니 선이 5년 만에 발매한 신보 [Origin]. ⓒ곰엔터테인먼트 |
절망의 입김이 서린 텐션으로 채워진 새 앨범에선 연주의 역할이 크다. 기교의 과시 수단이 아니다. 헤비메탈에 대한 반감이 컸던 시절엔 그런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근래의 힙합 마니아들이 이른바 '쌍팔년도 메탈' 식의 기교를 중시하는 것처럼 언젠가 거쳐야 할 단계이긴 했다. 하지만 치장은 접촉면의 확대이기도 하다. 대중예술 역시 감성과 이성이 함께 만들었고, 음악과 기술은 항상 팽팽한 긴장관계의 동반자였다.
김태진은 기타솔로를 종종 등장시킨다. 이 조각은 단편이 아니라 전체와 부분의 동등한 관계 안에 있다. 형식은 형식에 머물지 않고, 부분이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전통적인 기법에는 사연과 전통이 있어서 방해물이나 쇠퇴물이 아닌 그 시대와 장르의 가치를 간직한다. 기타솔로에 대한 고집은 자신의 기원(origin)을 기억하고 싶다는 제스처이다. 또 한계치를 넘는 녹음 사운드를 시도했다. 오디오가 아니라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세상이라 판별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Origin]은 그저 과거의 변형이란 말인가? 옛것의 강조는 쇠퇴를 의미하지 않던가. 이제 단서가 더 필요하다. 레이니 선을 지지해온 이유는 빌려 입은 옷만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신이 아니라 변장을 해왔고, 중간의 여정을 생략하지 않았다. 그 '실밥'이 감성인데, 기묘하게 노래하는 정차식(보컬)이 예전에 '포티셰드'를 말한 적이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차식의 감성과 멤버들의 취향이 혼합"이라는 최태섭의 자평은 적확하다. 게으르게 말하면 남성적인 사운드와 여성적인 감성의 결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다가 누그러지길 반복하기도 한다.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하고 청승을 떨듯하다가 흥겹게 "음, 어디쯤 있을까"하며 분위기를 바꾸는 '동물원'의 <말하지 못한 내 사랑>과 같은 방법도 있다. 반면, 눈과 얼음으로 바람막이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밑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사람이 사고를 당하면 멍해지면서 고통이 완화되는데, 극도의 정신적 충격에 반응하는 방식이라든가 임종 때 환상을 본다거나 하는 것들 역시 생명체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위로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렇게 열망의 표현인 과장과 넘침을 허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레이니 선 역시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보다 누군가 앗아간 감정 자체의 과장에 매달린다. 부산물로서의 감정이 아니라 슬픔 자체에 대한 찬가인 <재>에서 고사목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현악이 되고, 잔해는 시끄러운 록 연주가 되며, 몸의 일부가 된 가시 같은 상처는 노래가 된다. 그리고 꿈꾸고 있을 때엔 납득했어도 깨어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들처럼, 애초에 규명이 불필요한 무엇이 음악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인은 판명되지 않은 영감을 전달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떠 앉기 마련이다. 물론 개연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둡고 무거운, 그리고 뛰어난 트랙들이 곳곳에 자리한 이 앨범의 키워드는 '헤비니스'와 함께 <재>, <Innocent>, <Snuff> 등에 퍼져 있는 '슬픔'이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정차식은 전부터 '시인과 촌장' 등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유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나긋하게 들릴 수 있는 시인과 촌장의 선율 너머엔 절망의 끝자락에 서서 구원을 갈망하는 슬픔이 있었다. 이러한 정서와 함께 팝송 또는 가요의 무드를 표면에 드러낸 <그 후로 오랫동안>은 지난 앨범의 <안개문>을 잇는 레이니 선 특유의 서늘하고 아름다운 발라드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음악'이 수작의 조건
'미드 열풍'도 언제고 끝난다. 정점은 쇠락 이후에 알게 된다. 유행코드 또는 흥행코드가 나쁘진 않지만, 유행을 활용해야 한다는 유행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보니 종류도 다르고 미끼도 다른 낚싯대들을 주룩 펼쳐놓고 월척을 기다리는 식으로 앨범을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있는 [Sensibility]도 그렇게 조립되었다. 이 글을 쓰는 이는 아직 이런저런 트렌드의 게으른 진열을 마냥 좋아할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 문제의 본질은 대중음악을 존재하게 하고 번창시킨 시장이 자기 자녀에게 가하는 위협이다. 끝장 낼 수는 없는 이 근사한 족쇄의 열쇠를 왕실과 귀족에게서 시장이 넘겨받았을 뿐이다.
유행에 둔감한 채로 음악에 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부정하는 방법은 하나다. 동떨어진 것을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외화벌이'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정직한 록으로 승부를 거는 레이니 선과 같은 부류가 세상에서 너무 떨어져 걷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말이 동의를 얻는 딱 그만큼, 세상은 음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레이니 선이 아니라 '판' 자체가 말이다. 설령 판이 건재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똑같이 등반을 하고도 조연이 되어야 하는 세르파처럼 음악이 대우받는다면 말이다. 만약 이런 생각이 편협한 취향이라면 세상에는 편협한 취향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음악적 역량과 강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유리벽을 마주하곤 했던 레이니 선의 새 앨범은 빠르게 변해온 트렌드와 동떨어졌다기보다는 그것을 초월한다. [Origin]은 [Porno Virus] 이후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현재의 헤비뮤직과 언더뮤직의 조감도를 그릴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어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최태섭의 말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허투루 만들지 않고 최선을 다한 앨범"에 담았다. 두 가지는 수작을 낳기 위한 전제조건들이다. 헛된 기대를 잃은 대신 자기의 운율을 찾았다. 1998년의 그 때 그 친구들 그대로 레이니 선이 돌아왔다. 그리고 출항한 이들은 레이니 선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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