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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삼성 VS 삼성의 이재용 …최종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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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재용의 삼성 VS 삼성의 이재용 …최종 결론은?

[건망증 한국경제③] 재벌의 세습경영 고착될 것인가

"2세 경영인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따고 파이낸스를 전공했다. 이들이 전공한 재무적 투자는 항상 리스크관리를 하기 때문에 소극적 모습을 보인다.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지만 개별적으로 만나 얘기를 해보면서 어떤 투자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재벌들은 1950-60년대 생성기, 70년대 확장기를 거쳐 70년대말에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만석군의 아들로 일본 유학생 출신인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씨가 정미업, 부동산업 등에서 출발해 무역회사인 삼성물산을 세운 것이 1948년, 미곡상으로 돈을 번 현대의 창업주 정주영 씨가 현대건설을 세운 게 1950년이다. 길게는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재벌은 한국경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60-70년대 산업화 시기 정부는 장기저리의 정책금융, 사업 인허가 우선 배정 등 각종 특혜를 재벌기업에 제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재벌들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정부는 '빠른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를 기반으로 정통성이 부족한 집권과정의 문제를 가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겼다. 정경유착과 부패는 한국의 재벌체제의 '그늘'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한 재벌은 역사가 길어지면서 창업주에서 2세,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는 짧고 유교적 관념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경영권 세습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재벌의 경영권 세습은 당연한 일인가?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꼭 짚어봐야할 문제다.

2세 경영…97년 외환위기 재벌 줄도산의 한 원인

서두의 후대 경영인들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한 사람은 재계에서 말하는 소위 '반기업적' 인사가 아니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다. 그는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일하던 2004년 9월 국내 주요 중견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한국CEO포럼 연례회의 석상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이 전 장관의 발언은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경제상황에서 재벌들의 투자를 독려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창업주와 후대 경영인의 '차이'는 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심각하게 불거졌던 문제다.

1997년 1월 신흥재벌인 한보철강의 부도는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로 가는 '신호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해 7월 재계순위 8위인 기아의 부도 위기를 전후로 삼미, 진로, 한신공영, 쌍방울, 우성 등 대기업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정부의 통제와 감시에서 벗어난 대기업들의 무리한 중복·과잉 투자는 97년 외환위기를 불러온 주범이었다. 공교롭게도 쌍용(김석원), 한보(정보근), 동아(최원석), 우성(최승진), 삼미(김현철), 진로(장진호), 쌍방울(이의철), 한라(정몽원) 등 당시 무너졌던 상당수 재벌이 2세 경영 체제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자기 사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운 창업주와 달리 재벌 2-3세 경영인은 '부모 덕'에 그 자리에 올랐다. 미국 유학을 통해 전문지식을 습득했으나, 기업 경영은 전문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입사 후 5년 가량의 기간을 거쳐 평균 31세에 경영 임원으로 승진한다. 실무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벌닷컴> 조사, 2009년 1월 22일)

이들이 별다른 검증 없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약점은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기 위한 무리한 사업 확장을 부르기 십상이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무너졌던 재벌들 중 상당수가 2세 경영인의 '과욕' 때문이었다. 재계 서열 6위까지 갔던 쌍용은 자동차 사업 실패로 그룹 해체를 겪었다. 진로는 진로소주에 만족하지 않고 유통, 건설, 식품 등 사업을 확장하다 결국 부도를 냈다. 삼미도 5개의 계열사를 12개로 늘리다가 무너졌고, 우성도 10여개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외환위기 직후 50년 만의 첫 정권교체로 민주당 정권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시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재벌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부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01년 8월 김대중 정부가 'IMF 조기 졸업'을 선언하면서 재벌들의 형식상 '자숙 기간'도 끝났다. 재벌들은 정부에 '투자 확대'를 명분으로 규제 완화 등 자신들의 원하는 정책을 요구했고, 정부는 대부분 수용했다.

집권 초 "재벌 총수들과 독대하지 않겠다"며 나름의 재벌개혁 의지를 밝혔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5월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이라도 정부 간섭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사실상 재벌에 '백기투항'하는 발언이다. 노무현 정권 동안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다. 법과 제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삼성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였다.

이어 재벌 계열사 사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다. 외환위기 직후 부활했던 출총제도 2009년 3월 다시 폐지됐다. '공공성'을 이유로 금기시되는 재벌들의 은행과 방송사 소유를 허용하는 법들도 추진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벌개혁의 핵심으로 지적되던 세습 경영 문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가 하나도 도입되지 못한 채 어느덧 '3세 세습 경영'으로 넘어가고 있다.

3세 경영으로 접어든 삼성…이재용-이부진 경쟁 구도?

BJ. 삼성 내에서 이부진(39) 호텔신라 전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삼성에서는 이건희 전 회장 가족을 의전 차원에서 모두 이니셜로 부른다고 한다. 이재용(41) 삼성전자 전무는 JY, 이서현(36) 제일모직 상무보는 SH라는 식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A, 그의 부인인 홍라희 씨는 A'다.
▲ 삼성사건에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기소됐던 이재용 전무가 2008년 7월 1일 증인신분으로 출석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월 삼성그룹의 정기임원 인사와 지난 2월 이재용 전무의 이혼 문제가 불거지면서 삼성 내에서 BJ를 입에 올리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그 전만해도 BJ는 SH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었는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삼성 내부 인사의 전언이다.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의 후폭풍으로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3세 경영' 체제 모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1995년 당시 대학원생이던 이재용 전무에게 61억 원을 증여하면서부터 오랫동안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세습을 준비해왔다.

이건희 전 회장이 물러나고 '3세 경영'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이부진 전무가 급부상하게 됐고, 여기에는 이재용 전무의 이혼 사건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재용 전무의 부인 임세령(대상그룹 임창욱 회장 장녀) 씨가 이 전무를 상대로 양육권과 10억 원의 위자료, 또 수천억원에 이르는 재산분할을 요구하면서 제기한 이혼소송을 일주일 만에 취하하고 합의이혼하면서 자칫 이 전무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혼 사건으로 이재용 전무는 이건희 전 회장뿐 아니라 삼성 내에서도 신망을 많이 잃었다는 후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 전무가 이혼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2월 14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삼성 측은 이 전무 부부 일과는 무관한 "정기적인 건강검진"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전 회장은 3월 18일 일본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다시 '감기몸살'로 입원했다.

이재용 전무는 경영에 있어서도 '흠결'을 남겼다. 이 전무는 1991년 삼성전자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입사한지 9년 4개월 만에 임원이 됐다. 하지만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원을 거쳐 미국 하바드대 경영대학원 박사 과정을 2000년 수료할 때까지 임원이 되기 전 대부분 시간을 공부를 하며 보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2001년 그는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관심을 보였던 사업은 당시 가장 떠오르던 인터넷 사업이었다. 그는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지원에 힘입어 E-삼성 등 인터넷 기업 16개를 거느리게 됐다. 하지만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이들 기업도 부실해졌다. 참여연대는 이재용 전무의 인터넷 사업으로 "제일기획, 삼성에버랜드가 E-삼성의 이재용 씨 지분을 매입해 163억여 원의 손실을 입은 것을 비롯해 삼성SDS·삼성카드·삼성전기 등 계열사 6곳이 떠안은 손실이 모두 387억6000만 원에 달한다"고 밝혔었다. 경영자로서 첫 도전이 실패한 셈이다.

반면 연세대를 졸업하고 95년 삼성복지재단에 입사해 2001년부터 신라호텔 경영에 관여해온 이부진 전무는 신라호텔 매출 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호텔이 단순이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편의를 증진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탈바꿈시켰고, 이게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1월 정기임원 인사에서 이건희 전 회장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승진했다. 또 지난 2월부터 삼성에버랜드의 식음료 사업과 리조트 사업을 관장하게 됐다. 삼성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를 거쳐 다시 삼성에버랜드로 돌아오는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이다.

삼성 내에서는 이에 따라 '이재용 후계 체제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병철 선대회장도 경영 능력을 보고 장남이 아니라 삼남인 이건희 전 회장에서 그룹을 물려줬듯이 '이재용-이부진 경쟁체제'로 만들어 놓고 최종 선택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다. (<한겨레21> 756호 보도)

재벌 3-4세, 그들은 누구인가?

재벌전문 사이트인 <재벌닷컴>에 따르면, 현재 임원으로 재직 중인 대기업 총수 자녀 37명은 입사후 평균 4년8개월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들이 임원인 된 평균 나이는 31세. 또 임원이 된 후 평균 28개월마다 승진했다.

대기업의 신규 임원 승진자의 평균 연령이 45세, 임원이 되기까지 기간은 평균 22년 4개월이었다. 임원이 된 후 승진 기간은 평균 43개월이다.

재벌 3-4세의 경우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 평균 17년 6개월이나 빨리 임원으로 승진하며, 임원이 된 이후에도 15개월이나 빨리 승진했다.

가장 어린 나이에 임원이 된 경우는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37) 조선호텔 상무로, 그는 96년 24세에 입사와 동시에 등기이사에 올랐다. 이명희 회장의 아들 정용진(41) 신세계 부회장도 26세, 입사 1년 6개월에 임원이 됐다.

효성 조석래 회장의 아들 조현문(40. 효성 부사장), 조현상(38. 효성 전무), 조현준(41. 효성 사장)은 모두 입사 후 1년 만에 임원이 됐다.

정의선(39) 기아자동차 사장은 2000년 현대자동차 이사로 경영에 참여한 뒤 2001년 전무, 2003년 현대모비스 부사장, 2005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평균 24개월마다 승진했다.

재벌 3-4세들의 '주가조작 사건'

또 <한겨레>와 경제개혁연대 조사에 따르면, 재벌 3-4세는 재벌 2세와도 확연히 다른 경영수업 과정을 거쳤다. 이병철, 정주영 등 창업주들이 현장에서 실전과 경험을 통해 몸으로 경영을 익혔다면, 이건희, 정몽구 등 재벌 2세는 창업주 옆에서 도제식 경영 수업을 받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3-4세는 53%가 미국 등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전공도 경영관련 학과가 46.3%로 경영 이론을 먼저 익힌 경우가 다수다. 대학원 출신자들의 65%가 MBA 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또 지난 연말과 연초 인사에서 재벌 3-4세들이 대거 승진하는 등 그룹 내 입지가 더 탄탄해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전 재벌 2세들의 '과욕'이 무분별한 기업 확장으로 과잉·중복투자를 야기했자면, 최근 재벌 3-4세들의 '과욕'이 부작용으로 나타난 사례가 '주가조작사건'이다.

검찰은 2008년 6월부터 LG그룹 일가인 구본호 레드캡투어 대주주, 한국 도자기 창업주의 손자 김영진 전 엔디코프 대표, 두산그룹 4세 박중원 전 뉴월코프 대표,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한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효성그룹 3세) 등을 상대로 주가조작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특정 기업의 주식을 자원개발 공시를 통해 주가를 부양하고, 헐값에 주식을 받을 수 있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시세차익을 나눠갖는 방법 등을 통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과 부패 낳는 세습경영

두 남매 중 누가 이건희 전 회장의 '후계자'가 되던 간에 이 전 회장이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불법과 부정부패가 불가피하다. 정상적으로 50% 상속·증여세를 낼 경우 지배주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재계에서 현 정부 들어 '상속·증여세 인하'를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잘 알려진 대로 삼성그룹은 이재용 전무 후계 체제를 마련하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변칙 증여했다. 삼성의 각종 로비 의혹도 경영권 승계와 연관된 문제다.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불거진 탈세 및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 법원은 이건희 전 회장의 456억 원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만 인정했지만, 법원 판결의 공정성 논란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삼성의 불법 사실은 확인된 셈이다.

▲ 최근 삼성이 본사를 강남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삼성을 다짐했다. 새로운 삼성이 되기 위해서는 꼬여 있는 지배구조의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뉴시스
또 세습 경영 체제는 조직 운영도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 삼성은 지난 1월 삼성사건 1심 판결 직후 계열사 사장의 절반 가까이를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라는 이 인사에 대해 삼성은 부회장급을 제외하고 만60세 이상의 경영진 교체라는 원칙이 적용됐다고 한다. 이 인사로 반도체 신성장이론인 '황의 법칙'의 주인공 황창규 삼성전자 기술총괄사장, '애니콜 신화'로 유명한 이기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등 '이건희 시대'를 대표하는 경영자들이 물러났다. 대신 이재용 전무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최지성 사장이 삼성전자를 이끄는 '투톱' 가운데 한 명으로 기용됐다.

이 인사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비자금 조성이나 불법로비 의혹과 관련된 인사들의 승진이다. 삼성특검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한 차명계좌 거래 사실이 확인돼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던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이 삼성정밀화학 사장으로 복귀했고, 불법로비의혹이 제기됐던 장충기 삼성물산 부사장은 삼성물산 사장 겸 삼성브랜드관리위원장으로 승진했고, 삼성특검에 의해 피고로 기소됐던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도 삼성토탈로 옮기면서 사장직을 유지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라는 경영진 물갈이에서 삼성 비리 의혹 연루자들은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승진했다. 삼성 비리 의혹의 핵심은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세습과 연관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월 인사에 대해 "결국 이재용 전무의 등극을 준비하는 경영권 승계구도의 일환인 것으로 의심된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건희-이재용 부자에게 '충성'하면 보상받는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업무능력, 효율성, 경쟁 등이 '경제 논리'가 핵심으로 작용해야할 사기업에서 사주에 대한 충성 등 '정치논리'를 앞세우게 될 경우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처럼 몸집이 거대한 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큰 조직이 효율성이나 합리적 의사 결정을 담보하기 매우 어렵다. 삼성자동차 실패가 대표적 사례다. 산업연구원이 1994년 "한국의 자동차 생산능력은 이미 적정선을 넘어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는 등 이미 시장은 포화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자동차산업에 진출하려고 김영삼 정부에 전방위 로비를 했고, 결국 95년 3월 법인을 설립했다.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자동차 광'인 이건희 전 회장의 숙원이었다. '경제성 없음'이 이미 판명된 상태였지만 총수를 제어할 사람이 내부에 아무도 없었다.

결국 손실은 삼성그룹이 떠안아야 한다.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삼성이 3조1000억 원을 서울보증보험 등 채권단에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대주주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기업 지배에 연연하는 경우라면 누가 보기에도 해악이 더 크다. 정몽구 회장이 구속돼 있는 동안 현대차는 오히려 수출 실적이 좋았다. 대우 계열사 가운데는 김우중 회장의 손에서 벗어나면서 과거보다 더 높은 실적으로 거두는 경우도 많았다. 삼성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을 창업주 가문의 그늘 안에만 가둬 두어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중에서 인용)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삼성특검'이 꾸려지는 등 삼성그룹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분위기가 확산되자 "본사를 해외로 옮길 수도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올 정도로 삼성은 '글로벌 기업'이다. 국가라는 '틀'이 좁다는 삼성이 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서야 되겠나.

잊혀진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바람 잘 날 없었던 현대

현대는 '왕회장' 정주영 명예회장의 생전에는 재계 순위 1위의 재벌그룹이었다. 하지만 2000년 '왕자의 난' 등 형제들 간의 경영권 분쟁이 커져 계열 분리되면서 지금은 7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중견그룹이 됐다.

▲ 횡령, 배임 등으로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아 한 어린이집에서 사회봉사를 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 ⓒ연합
'왕자의 난'은 사실상 장남(장남 정몽필 씨는 1980년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인 2남 정몽구(현대기아차 회장)와 5남인 정몽헌(전 현대그룹 회장. 사망)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다. 고령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룹 회장 자리를 정몽구 회장이 아닌 정몽헌 회장에게 물려줬으나, 정몽구 회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도 두 형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가운데 몽구, 몽헌 두 형제 간에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에 대한 인사 조치, 왕회장 친필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자 정주영 명예회장은 2000년 3월 '깜짝 선언'을 했다. "3부자 동반 퇴진 선언"을 한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의 모든 계열사에서 대주주는 경영에서 빠지며,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이사회 권한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혁신적인 선언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는 흐지부지 됐다.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뜻에 반기를 들고 현대차그룹을 현대그룹에서 역계열분리해 나갔다. 3남인 정몽근 회장이 경영하는 현대백화점그룹과 6남인 정몽준 고문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도 분리돼 나갔다.

정주영 회장의 적통을 이어받은 정몽헌 회장은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대북사업에 매진했지만, 대북송금 특검수사에 휘말리면서 지난 2003년 8월 현대 계동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정몽헌 회장 사망 뒤에도 현대가의 경영권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회장이 사업을 이어받자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가 지킴이'를 자처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대량 매입해 '시숙의 난'을 일으켰다.

2006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이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26.68%를 전격적으로 매입하면서 '시동생의 난'까지 발생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이 형제들의 경영권 분쟁을 보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했지만, 역설적으로 범현대가에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사람은 의정 활동 때문에 경영에 전념할 수 없는 정몽준 의원 한 사람 뿐이다.

한편 정몽구 회장은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고 글로비스 등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 편법으로 지분을 승계하다 검찰 조사 등을 통해 드러났다. 정 회장은 분식회계를 통한 900억 원 가량의 비자금 조성과 부실 계열사의 유상증자 등을 통해 다른 계열사에 3900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지난 2006년 검찰에 구속됐다. 정 회장은 유죄를 인정 받아 2008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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