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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의 추억'…대박 쫓다 쪽박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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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의 추억'…대박 쫓다 쪽박 찰라

[건망증 한국경제②]'성장우선주의'의 그늘

7% 경제성장. 이명박 대통령만의 대선 공약이 아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명박 대통령과 맞붙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5+2%'로 사실상 7% 경제성장을 내세웠다.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7% 경제성장'을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7% 성장' 공약이 나온 배경에 대해 2004년 11월 당시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6% 경제성장률'을 공약으로 내놓길래 저도 약 올라서 7%로 올려 내놓았다"고 고백했다. '7%'라는 숫자가 나온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7% 경제성장, 4만 불 국민소득, 7대 경제대국)도 논리적 근거는 없다. 좌파 정부의 '잃어버린 10년'을 바로 잡아 각 분야를 선진화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세웠던 '빈약한 근거'였다.

집권 첫해인 2008년 성장률은 2.5%(추정), 2년차인 2009년 성장률은 98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747공약'이 공수표에 그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시간이 갈수록 물러섰다. 대선 당시에는 '매년 7% 경제성장'을 얘기하더니, 집권한 직후에는 "금년(2008년)에 6%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기 중에는 7%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2008년 8월 <야후> 인터뷰에서는 747 공약에 대해 "10년 내에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말했다. 자신의 임기 중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그리고 2009년 들어서는 성장률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747공약'을 진정 버렸는가? 윤증현 경제팀에 또 다시 묻고 싶은 질문이다.

7% 경제성장률에 담긴 고성장의 열망

▲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경제 철학에 있어 이 대통령은 여러모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시스
대선 공약은 집권 이후 정책 기조와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경제에서 정당간 정책 경쟁이 본격화된 것은 87년 대선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집권 이후 공약이 실현된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선심성 공약에 그쳤지만 말이다.

87년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물가상승률 2-3% 유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게 뻔한 주택 200만 호 건설 공약도 함께 내걸었다. 실제 노태우 정부에서 부동산가는 폭등해 1988-90년 사이에 전국 땅값은 2배, 집값은 1.6배 올랐다. 특히 이 기간에는 전세값이 크게 올라 1990년 봄 이사철에 17명의 세입자가 전세금 폭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인용)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신한국 창조'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면서 OECD 조기 가입을 주요 공약으로 발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후 96년 OECD 가입 목표는 달성했으나, 이를 위한 성급한 자본시장 개방 등의 여파로 집권 말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 직후인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는 IMF 조기졸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5강 진입을 목표로 내세웠다. 당시 외환위기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이래로 떨어진 직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대중 후보의 공약도 747공약 못지않게 허황된 것이었다. 부동산 거품과 신용카드 거품으로 김대중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7.0%라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때 형성된 거품은 후임 노무현 정권에서 2003년 카드대란을 일으켰다.

2002년 대선부터 경제성장률이 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게 됐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6%,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7%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실제 노무현 정부 5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3%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7%, 정동영 민주당 후보가 6%,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8%의 경제성장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6-8%의 '고성장'을 공약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세계 13위인 한국이 이 같은 고성장을 기록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7% 성장률은 개발도상국에서나 가능한 수치다. 각론에 있어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모든 정당이 '성장우선주의'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계에 부딪힌 '성장우선주의'

실제 한국경제는 제2차 오일쇼크의 영향을 받은 1980년(-1.5%)과 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6.9%) 두 해를 제외하고 매년 성장해왔다.

표. 집권자별 연평균 실질 경제성장률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성장우선주의의 열망'의 산물인 이명박 정부 들어 상황이 변했다. 성장우선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밖으로는 2008년을 전후해 몰아닥친 미국발 금융위기, 안으로는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이식된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경제적 양극화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 주도의 수출중심 경제체제를 확립한 뒤 한국경제는 큰 구조적 변화가 없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침체기에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한국경제 상황이 나아지기 힘들다.

더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내수경기가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발표한 '중산층의 정의와 추정'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산층의 비중이 10%포인트 감소했다. 중위소득 50%에서 150%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비중이 외환위기 전인 1996년 68.5%에서 2006년에는 58.5%로 줄었다는 것. 줄어든 중산층 가운데 70%가 빈곤층으로 이동해, 빈곤층의 비율은 1996년 11.3%에서 2006년 17.9%로 늘었다.

여권이 최근 비공개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경제위기의 여파로 중산층이 더 빠르게 붕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민 10명중 6명 이상이 자신이 '빈곤층'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사됐다. 이들은 '돈 때문에 힘들다', '우리 사회에선 능력이 있어도 성공하지 못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빈곤층이 늘어날수록 내수경기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자영업체 10곳 중 6곳이 '적자상태'라는 조사 결과는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2009년 3월 16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내수에 의존하는 자영업과 영세 중소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빈곤층은 더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빈곤층 증가가 내수침체를 야기하고, 내수침체가 다시 빈곤층 증가를 불러오는 악순환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감세·의료민영화의 정책 목표는?

▲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은 이 대통령. 지난 2008년 한 토론회에서 미국인 연사가 불도저라는 설명이 붙은 이 대통령의 사진을 소개하며 주제 발표를 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고성장에 집착해온 한국경제는 궤도를 수정하지 않고는 '활로'를 찾기 힘든 미궁에 빠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칭, 타칭 '불도저'인 이명박 대통령의 소신이 아무리 '성장우선주의'라 할지라도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무작정 밀어붙일 수만은 없다.

747공약을 기안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국가경쟁력위원장)은 '역대 최악의 경제팀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교체됐다. 국내외 경제상황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감세, 규제완화, 고환율 정책 등 고성장을 위한 정책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정책에 반영하지 않는 경제팀 수장은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2월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새 경제팀장으로 앉혔다.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진 현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도 '3% 경제성장'을 고집하던 강 전 장관과 달리 윤 장관은 취임기자회견에서 2009년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2%로 전망했다. 2008년 연말부터 외국계 기관에서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해 '마이너스 성장' 전망이 계속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마이너스 성장' 전망을 발표하는 게 일종의 '금기'였다. 윤 장관의 취임하면서 그 금기를 풀어준 셈이다. 환율에 있어서도 윤 장관은 강 전 장관처럼 노골적인 구두개입은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전 경제팀과 달리 위기 상황에 걸맞는 정책 대응이 나오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윤 장관이 취임 이후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은 교육과 의료의 영리법인화다. 지난 15일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양도세 중과제도를 전면 폐지하는 등 대규모 감세 정책도 발표했다.

의료와 교육의 영리법인화는 한 마디로 의료와 교육을 통한 이익 추구를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사 면허증이 있어야만 병원 설립이 가능하지만 의료 영리법인 설립이 허용되면 일반인은 물론 외국 투자자들도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교육기관도 지금은 비영리재단을 통한 출연(기부)만 가능하지만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투자자들이 전문대 및 중·고등학교 영리법인에 지분 투자를 하고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좀더 높은 질의 서비스를 원하는 고소득층의 수요를 반영해 교육과 의료서비스의 다양화를 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또 의료 관광 등 해외 수요를 끌어들여 일자리 창출 등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료·교육의 영리법인화는 전반적인 교육비, 의료비 상승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미국 등 다른 나라를 통해 충분히 증명됐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8년 26조 규모의 대대적인 감세를 실시한데 이어 이번엔 양도세 중과도 폐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1년 만에 강남 3구의 투기지역 지정만 남겨놓고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모두 해제했다. 부동산 투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당연히 제기된다.

게다가 경제위기를 맞아 정부 재정이 부족하다면서 25조 원의 적자재정에 30조 원의 슈퍼추경까지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수를 줄이는 감세정책을 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감세정책은 고소득층에게만 혜택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부자들의 부담을 덜어 전국민에게 나눠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윤증현 경제팀이 추진하는 의료·교육 영리법인화와 감세 정책은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가뜩이나 한계에 몰린 저소득층을 더욱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정책으로,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를 고집하는가? 재벌들에게 새로운 사업(의료, 교육)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투자를 늘리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성장률을 1%라도 더 늘리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이유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7%'라는 수치적 목표를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고성장에 대한 열망'은 결코 포기한 게 아니라고 보여진다.

'선배' 노무현의 조언 "성장률 공약 하지 말라"

"대권주자들이 경제 성장률 공약은 가급적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더라도 가급적 빨리 잊었으면 좋겠다."

'7% 성장' 약속이 임기 내내 발목을 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에 한 자성의 말이다. 노 대통령은 2007년 5월 <매일경제>·<MBN>과의 인터뷰에서 "성장률 공약을 하면 자연히 목표를 높게 잡게 되고 그 공약에 매달리다 보면 결국 무리한 경제정책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뿐 아니라 앞으로도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새겨들을 '선배'의 조언이다.

고성장의 열매는 과연 달기만 할까?

정권별로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따지면 전두환(9.3%), 박정희(8.5%) 등 군부독재시절이 가장 높다. 당시 한국이 산업화를 막 시작한 개발도상국가였다는 점, 국가주도 경제체제, 대외 경제여건의 호조, 올림픽 특수 등의 결과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어쨌든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연 내실있게 성장했을까? 이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연평균 8.5%의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했지만, 이 기간동안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16.5%나 된다. 일종의 '국토 개조 사업'이었던 경제개발5개년 계획으로 부동산가도 크게 올랐다. 집권 18년 동안 전국의 땅값은 연평균 33% 올랐다. 엄청난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국민들이 큰 고통을 받았다.

또 같은 시기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높은 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동안 대만은 연평균 10.0%, 홍콩은 8.8%, 싱가포르는 9.0%를 기록했다.

전두환 정권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세계경제 호황 덕을 많이 봤다. 2차 오일쇼크(79-80년)로 엄청난 오일머니를 챙기게된 중동이 이 돈을 풀면서 또 한번 중동건설 붐이 불었다. 또 각국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하고 85년 '플라자 합의'로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호황기에 접어들게 됐다. 이후 86-88년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의 '3저 호황'이 펼쳐졌다.

또 전두환 정권은 국가 주도의 물가안정정책, 산업정책 등을 통해 고성장을 이룩했다. 그 결과로 정경유착, 부패경제 등의 문제가 심화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수천억원대 비자금도 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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