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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잡셰어링이 '절미통'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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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식 잡셰어링이 '절미통'이 될 수 없는 이유

일선에선 강제해고로 변질…경영진·주주의 '십시일반' 정신은?

대졸 초임의 30%를 삭감해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대한 자화자찬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잡셰어링에 대해 "외환위기 때 금 모으던 정신이 되 살아났다"며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9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재정부 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잡셰어링을 부뚜막의 절미통에 비유했다. 윤 장관은 이날 재정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어릴 때 집집마다 부뚜막에 절미통이라는 게 있었고 어머니는 밥을 하실 때 늘 쌀 한 줌을 덜어내 절미통에 넣곤 했다. 이렇게 모인 쌀을 부녀회에서 모아 마을의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마을 공동사업에 썼다"며 "이렇게 쌀 한 줌을 덜어내던 그 마음이 우리가 경제위기 극복대책의 하나로 선택한 잡셰어링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누어진 일자리가 팍팍한 살림살이를 조금이나마 펴주고 이렇게 지급된 임금이 우리 사회의 실질 구매력을 높여 소비 침체를 막는다면 그야말로 한국은 경제위기 극복의 새로운 교과서를 쓰는 셈이 되는 것"이라면서 "금 모으기의 저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듯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위기극복은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잡셰어링' 위해 강제해고?

하지만 임금삭감 계획만 있는 잡셰어링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였던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이나 십시일반의 정신이 응축된 '절미통'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부문과 민간기업의 잡셰어링이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원래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뚜렷한 근거 없이 노동시장의 취약 계층인 신규 취업자 임금을 30%가까이 삭감하겠다는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을 훼손하는 등 위헌적 요소도 있다. 올해 입사자들은 1년 선배에 비해 무조건 20-30% 임금을 적게 준다고 치자. 향후 임금 체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1년 늦게 입사했다고 수십년을 20-30% 적게 받아야 한다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정부와 대기업의 잡셰어링은 이런 점에서 굉장히 단견적인 발상이다.

▲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 등 국내 30대그룹이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까지 삭감하고 이 재원으로 신규직 및 인턴채용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전경련. ⓒ뉴시스
또 정부와 대기업이 잡셰어링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 내지는 '지키기'에 진력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일선에서는 잡셰어링을 위한 강제해고가 일어나고 있다.

잡셰어링을 위한 (강제) 희망퇴직은 특히 공기업에서 두드러진다. 정부 방침에 따라 의무적으로 10-15%의 인원을 감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이라며 칭찬을 받았던 한국농촌공사는 작년 말에 487명을 명예퇴직 형식으로 정리했다. 공사 측은 이 과정에서 직급에 따라 일정 연령을 제시하고 해당하는 사람들은 명퇴를 신청하도록 유도했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달 23일까지 희망퇴직을 받았으나 신청자가 28명에 불과하자 25∼27일 2차로 받았다. 노조 측은 추가 접수과정에서 회사 측이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한 몇몇 사원에게 희망퇴직을 권유했다고 주장한다. 자산관리공사도 최근 7년 이상 근속 직원 60명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신청이 부진하자 일부 직원에서 희망퇴직을 권유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잡셰어링에 동참한다고 선언한 한화의 경우 지난 달 20일 몇몇 직원에게 퇴사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고참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현대기아차도 지난달 중간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실시했다.

경영진·주주의 책임은 어디에?

또 현재 고용불안의 진원지를 따져 봐도 이명박 정부의 잡세어링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부실로 먼저 무너졌던 11년 전 외환위기 때와 달리 현재는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의 부도가 먼저 시작되고 있다. 9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부도 중소기업은 649개로 전년 동기보다 50% 급증했다. 작년 한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 법인은 전년보다 44.7% 증가한 191개로 주로 중소기업이다.

자영업자는 작년 9월 606만 명에서 올해 1월 558만7000명으로 급감했고, 경기에 가장 민감한 음식점은 작년 12월 1만4845개에 이어 지난 1월 1만7764개가 휴업했고 3093개는 폐업했다.

임금 삭감을 통한 잡셰어링은 이들 영세 자영업자들과는 하등 상관없는 정책일 뿐 아니라,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정책이다.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낮아질 경우 소비는 줄어든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더 위축될 경우 직격탄을 맞는 것은 자영업자들이다.

반면 잡셰어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당연 임금삭감 없이도 고용유지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다. 기업들의 임금삭감 계획은 나왔지만,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몇 명의 고용을 어떤 형태로 늘릴지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잡셰어링에 있어서도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정부가 진정 절미통의 '십시일반' 정신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임금이 가장 낮은 대졸 초임들의 임금을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깎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노동계와 학계에서는 고액 연봉자들의 연봉상한제 도입 내지는 주주들의 배당금 삭감을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고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경제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쳐졌기 때문이지만 이 두 가지 방안은 기업 경영에 대한 경영자와 주주의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국, EU, 중국 등은 이미 도입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 기업들을 대상으로 연봉 및 보너스로 50만 달러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U도 미국의 연봉제한 조치 발표 직후 회원국들에 비슷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했고, 중국도 지난달 중순 금융공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을 280만 위안(5억6000만원)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JP모건, US 뱅코프, PNC 등 이번 금융위기로 크게 손해를 본 미 금융회사들 사이에서는 주주 배당금 삭감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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