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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수영 경총 회장님, 뭘 양보합니까?"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나중에 '목돈'으로 갚겠다고요?"

지난 23일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만 참여한 가운데 노·사·민·정 합의가 이뤄졌다. 노사 관계 측면에서 이번 합의의 핵심을 요약하면 임금 동결과 고용 보장이다. 임금 동결에는 반납과 절감도 들어간다. 고용 보장은 지금까지의 고용 수준이 유지되도록 한다는 말이다.

'사회적 대타협' 거룩한 결단인가, 빛 좋은 개살구인가

기업별 노사 관계가 주축을 이룬 우리 상황에서 임금과 고용은 한국노총이나 경영자총연합회(경총) 같은 전국 수준이 아니라 기업 수준의 노사 차원에서 결정돼 왔다. 소속 조합원의 절반 이상이 산별노조에 속한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 조합원의 대부분은 기업별노조에 속해 있다.

한국노총이나 경총에게는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두 단체 모두 소속사와 산하노조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자기 희생, 자기 부담의 그런 거룩한 결단"이라고 치켜세운 임금 동결과 고용 보장 합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 지난 23일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만 참여한 가운데 노·사·민·정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자기 희생, 자기 부담의 그런 거룩한 결단"이라고 치켜세운 임금동결과 고용보장 합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벌써부터 현대, 기아, 대우 같은 재벌기업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경제 파탄 합의문"이라며 어기대고 있다. 최대 규모의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올해 임금 요구율을 4.7%로 잡아놓고 있다. 한국 최초의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는 5% 앞뒤로 요구할 것이라 한다. 더군다나 한국의 자본가들은 근로기준법이나 비정규직법 같은 현행법도 안 지키는 데 이력이 난 집단이다.

25일 한국노총 대의원대회에 참가한 박희태 대표는 "경제가 좋아지는 날, 근로자들이 희생한 부분을 반드시 '목돈'으로 갚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4년 동안 경제가 좋아질 리 만무하다. 설사 경제가 좋아져도 '부자와 자본가들의 국가권력'인 현 정부가 근로자들에게 '목돈'을 내놓을 리도 없다. 그래서 박 대표가 약속한 '목돈'은 현찰이 아니라 100% 부도난 어음이 될 게 뻔하다.

노사정위원회 외면하더니 갑자기 웬 노·사·민·정 합의?

물론 경제가 어려운 시절에 노사에 더해 정부와 민간까지 참여해 서로 양보하고 도울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물전에서 맨날 생선을 훔치던 도둑고양이가 하루 아침에 말 잘 듣는 고양이로 변신할 수 없듯이, 시장근본주의를 맹신하면서 노사나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를 발톱의 때만큼도 못하게 여겨온 현 정부와 독점 자본가들이 민간까지 끌어들여 합의 문서 몇 장 만든다고 사회적 대화가 성사되는 건 아니다. 현 정부가 앞장서 '뇌사 상태'를 만들어버린 노사정위원회의 유명무실함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합의는 합의 자체를 내오기도 힘들지만, 합의된 사항을 지키기도 어렵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의 내용은 구체적인 게 별로 없고 추상적인 정책이나 선언글 투성이다. 하지만, 노·사·민·정 합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임금과 고용은 구체적인 숫자로 평가가 가능하다. 임금 양보와 고용 보장은 돈 얼마와 사람 몇 명으로 구체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장석춘 위원장 출신 사업장인 LG전자 노동자들은 얼마나 반납하나?

그래서 궁금해진다. 이번 합의의 결과로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소속 사업장인 LG전자 노동자들은 임금을 얼마나 동결·반납·절감할 수 있나? 그리고 그 돈으로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그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 있나?

노·사·민·정 합의의 진실성과 이행 점검의 효과성을 담보하려면 이런 수치가 나와야 한다. 한국노총 산하 대기업노조 전체를 총괄할 경우 얼마의 임금 절감이 이뤄지며, 이렇게 절감된 돈으로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안이 나와야 한다.

사실 임금 동결은 노동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노동자 임금의 수십 배에서 수백 수천 배를 받는 재벌회장들은 동결 수준이 아니라 대폭의 임금 반납과 삭감이 이뤄져야 한다. 동양제철화학 대표를 맡고 있는 이수영 경총회장은 얼마나 회사에 반납하게 되나. 동양제철화학의 임원들은 보수의 얼마를 반납하거나 삭감할 것인가? 그리고 그 돈으로 동양제철화학을 위해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몇 명이나 자르지 않고 고용을 보장할 수 있나?

'룩소르' 고등학교, 들어는 봤나?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맛난 음료 마시며 "한국노총이 이번에 보여준 대타협의 정신에서 변화의 기운을 읽고 있다"는 한가한 소리만 할 게 아니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만든 정부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국민 혈세가 공무원과 공기업 종사자들의 '고급 유흥비'로 전용되는 현상은 기독교 신앙심이 깊다는 장로님 대통령이 들어서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을 1등부터 100만 등까지 줄 세우는 학업성취도 조작 사건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그 업무를 담당한 장학사들이 1인당 나랏돈 500만 원을 들여 이집트의 '룩소르' 고등학교 등을 탐방한다며 이집트, 스페인, 터키로 여행을 떠난 일이 알려져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눈먼 돈만 잘 관리해도 아낄 수 있는 정부 예산은 수십조 원이 족히 넘을 것이다. 정부는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파악해 계획을 짜고 그 내역을 밝혀야 하며, 그 돈을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쓸 것인지 안을 내놓아야 한다. 구체적인 수치와 자료에 바탕한 대차대조표는 없고, 기분 좋은 표현들과 추상적인 선언들만 나열된 노·사·민·정 합의문만으로는 진정한 사회적 타협이 불가능하다.

'미국식' 외치던 당신들은 얼마 낼 건대?

지금의 경제 위기는 금융 세계화로 불리는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되었고, 그 진앙지는 미국이다. 시장 만세를 외치던 미국식 모델은 이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낡은 경제 체제로 낙인찍혀 몰락해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6일자 특집을 "지금 우리는 모두 사회주의자"라는 자기 모욕적인 제목으로 꾸몄을까. 그런 미국을 좇아가자고 정부와 자본이 설치다가 덩달아 우리 경제도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벼랑 끝에서 정부와 자본이 같이 살자며 매달리는 통에 한국노총이 노·사·민·정 합의문에 덜컹 서명해버렸다. 그래 그것까지는 좋다고 치자. 하지만 질문이 잇따른다.

이명박 씨, 이수영 씨 당신들은 무엇을 양보할 겁니까? 나라 경제가 거덜나도 "미국식으로 가자"고 떼쓴 정부와 자본의 대표자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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