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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업이든 임금 삭감이든 사람 자르지만 않는다면…"

[현장] 갈림길 앞에 선 쌍용차 사람들…"하란대로 일했을 뿐인데"

두 남자가 있다. 모두 '고졸'에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아빠다. 매일 아침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출근을 한다. 조립4팀에서 체어맨, 로디우스 같은 차를 만든다.

아니, 한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만들었다. 얼마 전 실시된 강제휴업으로 쉬고 있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인 또 한 사람도 사실 요즘은 일거리가 별로 없어 출근을 해도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쌍용차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공장은 자주 멈춘다. 부품업체들이 공급을 중단하니, 차를 만들래야 만들 재료가 없다.

지난해 말부터 어려워진 것은 소속에 관계없이 두 사람이 똑같다. 한 사람은 12월 분 월급을 아직도 받지 못해 생활비가 똑 떨어졌고, 또 한 사람은 무려 16일이나 늦게 월급을 받았다. 한 사람은 이달 월세를 내지 못했고, 또 한 사람은 아이 학원을 4개나 줄였다.

부닥치고 있는 어려움의 농도는 다를 수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당장 오늘보다 내일이 더 걱정이다. 그래서 한 목소리다.

"살리긴 살리는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요? 우리는 그동안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우리가 또 나가요? 4년 동안 회사를 '개박살' 낸 경영진은 사표 쓰고 나가면 그리곤 또 다른 데 가겠지요. 우리는 갈 곳이 없습니다."

지난 19일 찾은 쌍용차 평택공장은 조용한데, 사람들의 목소리는 컸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각자 처한 처지도,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도, 때로는 소속도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의 목소리는 오직 '고용 보장'이었다.

▲ 지난 19일 찾은 쌍용차 평택공장은 조용한데, 사람들의 목소리는 컸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각자 처한 처지도,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도, 때로는 소속도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의 목소리는 오직 '고용 보장'이었다.ⓒ프레시안

'스산한' 현장…"체불된 월급, 카드는 연체되고 월세도 못 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사실 지난해 말부터였다. 아니,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대주주가 된 지난 2004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앞서 쌍용차가 대우차에 넘어간 이후 쌍용차는 "굴욕과 좌절의 역사"를 걸어왔다고 한 노동자는 말했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 현장의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부장이 "우리 조합원들이 사실 이골이 나서…"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런데 그 "이골이 난" 쌍용차 사람들도 "이번에는 더 불안하다"고 했다.

당장 지난 12일 나왔어야 할 12월 임금을 아직도 받지 못한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먹고 사는 일이 큰 일"이 됐다. 이미 결제일이 지난 카드는 연체됐고, 내 집 없는 사람이 다수인데 월세도 다 밀렸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현재 강제 휴업 중인 김운산(43) 씨는 "저축이라도 해뒀으면 일주일, 열흘 정도 늦게 나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데 나 같은 비정규직은 단 하루만 월급이 늦게 나와도 난리가 난다"고 했다. 사내하청 노동자 뿐 아니다. 청소, 경비, 식당 일을 하는 쌍용차 공장 내의 각종 용역 노동자들도 모두 월급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3770원인데 5년차인 내가 지난해 시급 3771원을 받았다. 그것도 잔업, 특근 때 계산되는 급여가 그 정도였다. 한 달에 은행 대출로 30만 원, 식비 20만 원, 아이 학원비 20만 원에 난방비 전기세, 월세 등 30여 만 원이 나가면 월급 다 받아도 생활이 어렵다. 그런데 그것조차 안 나오면 비정규직은 삶이 쉽게 깨져버린다."

오늘 차비도 걱정이지만, 더 큰 걱정은 "이러다 아예 사내하청 업체가 문 닫는 것 아닐까"하는 것이다. 쌍용차는 살더라도 사내하청 업체가 부도날 경우 당연히 희망퇴직에서 살아남은 340명도 일자리를 잃는다.

다행히 쌍용차가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숨통이 틘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잠시 뿐이다. 쌍용차 회생의 조건으로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는 판인데, "인력을 줄인다면 가장 먼저 비정규직이 잘려나갈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사표 내고 나가면 그만이고, 우리만 나락으로?"

▲ "일하고 싶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프레시안
입사 15년 차 정규직 노동자인 허호(38) 씨도 바로 그게 걱정이다. 말은 안 해도 서로 "'이번에는 내가 나가나, 네가 나가나'를 눈치보는 답답한 분위기"란다.

"지금 나가면 어디 가서 뭘 하겠나. 이력서 내볼 곳도 없다. 일용직이나 해야지."

이들은 지난 2006년 있었던 1000여 명의 '희망퇴직'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봤다. 김운산 씨는 "쌍용차는 사실 상하이차가 인수한 이후 지난 4년 간 매년 500여 명씩을 줄여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완성차 4사에 비해 '아담한' 덕에 공장을 나간 이들의 이후 삶도 고스란히 이들 귀에 들려온다.

"말이 좋아 '희망퇴직'이지, '절망퇴직'이다. 그때 1억5000만 원 정도 챙겨 나간 정규직도 그 돈에 집까지 팔아 가게 차렸다가 망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나가서 '멀쩡한' 새로 일자리 구한 사람은 10%도 안 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은 일용직이 된다."

김운산 씨의 말이다. 허호 씨도 "누군가 나가게 되면 나간 사람도 문제지만 남은 사람은 또 어떻게 웃으며 출근하겠냐"고 했다. "나만 해도 전체 노동자 가운데 60%는 얼굴을 안다"면서.


"이 지경이 되기까지 대체 누가 잘못한 것인가?"


▲ 허호 씨가 "상하이차? 때려죽일 놈들"이라고 핏대를 세우는 이유는 너무 많다. 투자 약속도 전혀 안 지켰다. 신차 개발? 없었다. 심지어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도 모두 취소됐다.ⓒ프레시안
그런데 지금 누가 쌍용차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김운산 씨는 "사실 없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그런데 2004년 상하이차 매각 당시 연 3000억 수익이 나던 회사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대체 누가 잘못한 거냐"고 따져 물었다.

당연히 첫 번째 책임자는 경영진과 대주주다. 허호 씨가 "상하이차? 때려죽일 놈들"이라고 핏대를 세우는 이유는 너무 많다. 투자 약속도 전혀 안 지켰다. 신차 개발? 없었다. 심지어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도 모두 취소됐다. 그러면 중국 판매 시장 개척은? 역시 "헛소리"였다. 허 씨는 "게다가 이미지까지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국민들에겐 중국하면 '짝퉁'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쌍용차 대주주가 중국 기업이라니까 우리 차까지 'made in China'로 인식됐다. 판매가 떨어진 데는 그런 탓도 크다. 지난해 말부터 위기 얘기가 나와서 노동자들이 '고통 분담' 결의문도 내고 그랬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법정관리 신청하곤 '못 하겠다'며 내뺐다."

배신감이 큰 것이다. 허 씨는 "게다가 경영진이 무능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임금 협상 때 7만8000원 오르고 성과급도 200만 원이나 줬다. 그때 경영진은 하반기에 이런 사태가 올 것을 전혀 예상도 못 했다는 것 아니냐."

상하이차만 문제일까? 이들은 "잘 나가던 회사를 엉뚱한 곳에 팔아치운 '놈'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회사가 일하라면 하고 쉬라면 쉰 죄밖에 없다. 잔업·특근? 하고 싶은데 안 시켜주니 못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보고 희생해야 한다고?"

김운산 씨의 말이다. 김 씨는 사실 쌍용차에 오기 전에 10년 동안 용산에서 잘 나갈 때는 월 매출 10억의 컴퓨터 가게 '사장님'이었다. "외환위기 때 거래처들이 펑펑 문을 닫으면서 가게도 집도 다 팔 수밖에" 없었다.

가게 문을 닫고는 역시 컴퓨터 매장에서 4~5년 동안 일도 했었다. 그러나 그가 "빨간 날은 쉬는" 직장을 얻고 싶었을 때는 온통 비정규직 일자리뿐이었다. "정책적으로 비정규직을 정부가 양산한 덕"이었다.

"매출 10억 사장님이 비정규직이 되는" 견고하고 촘촘한 올가미

▲ 아무리 성실하고, 아무리 똑똑해도 한 번 '추락'하면 다시 올라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프레시안
김운산 씨의 삶은 지금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의 올가미가 얼마나 견고하고 촘촘한지를 잘 보여준다. 아무리 성실하고, 아무리 똑똑해도 한 번 '추락'하면 다시 올라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고졸이었지만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고 컴퓨터 지식도 많아 한때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캐드(CAD)를 가르치기도 했던 그였다. 그러다 용산에서 직원 6명을 거느리며 가게 월세만 한 달에 500만 원씩 내는 '사장님'이 된 그는 지금 월 120만 원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외환위기 때 '한 번 맞고'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 셈이다.

2004년 입사 때도 '비정규직으로 들어간다'는 건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단어의 의미를 미처 잘 몰랐다. "쌍용차 사내협력업체라니까 그냥 회사라고 생각"했다. 막상 공장 안에 들어와 보니 비정규직이란 게 참 "골 때렸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임금 차이야 그렇다 치고, 잔업도 정규직은 시켜줄 때 비정규직은 안 시켜줬다. 그러면서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은 다 비정규직 몫이었다. 근속연수가 10년이면 쌍용차를 살 때 10%를 할인해주는 혜택도 비정규직은 없었다. 옆의 정규직은 옷이 2벌 나올 때 김 씨는 1벌만 받았다.

그는 "너무 많은데 막상 말하라니까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웃었다. "기자님도 한 번 해보시라"면서.

게다가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아이와 아내는 서울의 처갓집에, 자신은 부모님을 모시고 평택에 떨어져 산다. 120만 원은 다섯 식구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일자리마저 위태롭다.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며 그는 지난해 10월 비정규직노조를 만들었다. 대학도 가지 않았으니 소위 '학생 운동' 출신도 아니다. 조심스럽게 물었던 질문에 그는 이렇데 답했다.

"운동권? 전혀 아니다. '오너' 생활만 10년 했다니까. 평범하고 선량했던 일반 서민을, 뭐랄까 투사를 만든다고 할까. 세상이, 그렇게 내몰고 있다."

곳곳에서 터지는 비정규직의 싸움에서마다 들리는 얘기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목으로 비정규직을 대거 늘렸던 정부가 그들을 싸움터로 몰고 있다.

"노조가 강성이라고요? 지난 3년 간 파업 한 번 안 했는데?"

김 씨도, 허 씨도 모두 "쌍용차 노조가 강성"이라는 말에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쌍용차노조가 파업을 한 번 했나 점거농성하고 때려 부수기를 했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 노조가 어떻게 하면 강성이 아니라고 할 거냐"고 되물었다.

쌍용차노조의 마지막 파업은 지난 2006년이었다. 1000명 구조조정과 상하이차의 기술 유출 의혹 때문이었다. 금속노조의 '한미 FTA 저지 총파업'에도, 지난해 있었던 민주노총의 '쇠고기 총파업'에도 쌍용차는 참여하지 않았다.

김 씨는 "대화하자는데 무시한 건 회사 아니냐"고 했다. 허 씨도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상하이 이사회가 열릴 때까지 개표조차 미루면서 회사와의 대화를 촉구했다"고 말했다.

"대화하자고 하면 강성노조인가? (웃음) 결국 구조조정 위한 사전 작업일 뿐이다. 노조가 강성이라 회사가 망했다고 뒤집어씌우려고."

▲쌍용차노조의 마지막 파업은 지난 2006년이었다. 1000명 구조조정과 상하이차의 기술 유출 의혹 때문이었다. 금속노조의 '한미 FTA 저지 총파업'에도, 지난해 있었던 민주노총의 '쇠고기 총파업'에도 쌍용차는 참여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순환휴직하며 중국집 배달하더라도 정리해고는 절대 안 된다"

노조의 이창근 부장은 '쌍용차 구조조정'과 '일자리 늘리기'를 동시에 얘기하는 정부의 모순을 지적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도 해야 하지만 기존 일자리도 보호하고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쌍용차를 살리기 위해 노조가 구조조정에 동의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일자리 7000개 줄이는 데 도장 찍어줄 수 있냐'는 질문이랑 똑같다. 답은 하나다. 못 찍는다."

허호 씨도 "월급이 좀 줄어드는 한이 있어도 옆의 동료가 잘려 나가는 것은 절대 못 본다"고 했다. 1995년 입사해 결혼한 지 채 몇년 되지 않았던 외환위기 때 6개월씩 순환휴직도 견뎌 왔던 허 씨였다. 휴직 기간 기본급의 60%만 받으면서 어린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중국집 배달을 했었다.

"옛날처럼 다시 중국집 배달 할 수 있다. 1년이든, 2년이든, 좀 오래 고통을 받더라도 내가 적게 쓰면 된다. 하지만 정리해고는 안 된다. 새 주인이 누가 되든, '몇 명 잘랐다'고 정부에 자랑하고 칭찬 받으려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짜 쌍용차의 미래 비전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그들에게, 미래 비전은 어디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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