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노동계의 대응책 역시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민주노총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 아래 10년 전보다 더 강경해진 분위기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방향으로 다시 추진 중인 '노사정 대타협'에 대해서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안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총고용 보장" 목소리만 있을 뿐이다. 완성차 4사의 휴업 등 경제 위기의 여파를 가장 많이 실감하고 있는 금속노조가 8일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선언'을 내놓았지만 경제 위기 이전의 노동계의 요구안과 비교해 구체화된 것은 없었다.
정부를 향해 "노정 교섭을 통해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같이 마련해보자"고 제안했지만, 그러면서도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대단히 강하다"며 대화 성사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상대가 귀를 막고 있는 줄 알면서 가능성이 없는 대화 요구를 핏대 세워하는 셈이다.
상대의 귀를 트이게 할 '당근'조차 "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정갑득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총고용이 보장되면 임금 동결도 가능하다"는 소신을 공개적으로 피력해 왔지만, 이날은 그마저도 부정했다. "우리가 먼저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관련 기사 : 민주노총 "MB가 '잘'하면 임금동결도 가능")
"비정규직 우선 해고는 절대 안 된다"면서 '비정규직 고용 보장을 위해 금속노조는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지금은 정부의 대화 의지가 확인돼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해 말 쌍용차가 310여 명의 비정규직을 희망퇴직 하는 등 이미 현장에서는 비정규직부터 정리해고되고 있음에도, 이를 막지 못하는 정규직노조의 한계에 대한 성찰보다 "비정규직의 조직화"라는 오래된 목표를 다시 내놓았다.
그런 면에서 금속노조가 전문가 토론회 등 집중적 논의 끝에 내놓은 '경제 위기 극복 대안'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른 인상이었다. 오직 "경제 위기의 책임은 정부와 재벌에 있다"는 목소리만 컸다.
▲ 금속노조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선언'을 내놓았다.ⓒ연합뉴스 |
"경제 위기 책임은 정부와 재벌에…'총고용 보장'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불어 닥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가운데 노동계가 가장 핏대를 높이는 것은 "총고용 보장"이다. 10년 전처럼 대규모 정리해고 없이, 현재 있는 일자리를 보장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가 내놓은 방법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재벌 기업과 투기 자본의 잉여금 10%를 고용보장기금으로 사회 환원 △중소기업 지원 기준에 '고용 유지' 조항을 추가 등이다.
금속노조는 이 같은 대안을 놓고 정부 및 사용자와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정부와는 협의 테이블을 만들고, 사용자들과는 '금속산업미래전략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이 모든 요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연간 2350시간에 달하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연 2200시간 수준으로만 줄여도 고용유지 및 확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경제 위기라지만 "200조에 가까운 잉여금을 보유하고 있는 10대 재벌이 10%만 특별기금으로 출연한다면 비정규직 고용 안정과 중소기업 지원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금속노조의 주장이다.
"대화하자"면서 "현 정부에 불신, 상당히 강하다…'노사정 타협'도 Never!"
문제는 "정부와 재벌이 곳간을 열어 국민 생존을 보장하라"는 이들의 요구가 정당성의 농도와는 별도로 모두 '상대가 있는' 얘기라는 것이다. '고통 분담'이라는 정부와 사용자의 요구와 '총고용 보장'이라는 노동계의 요구가 접점을 찾으려면, 금속노조의 주장대로 일단 양 쪽이 마주 앉아야 한다.
바로 그 점에서 금속노조의 주장은 공허하다. 1차적 원인은 물론 오직 노동계 무시로 일관하는 현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금속노조 역시 대화 의지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정부에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경제 위기 대안과 관련해 대화 요청을 한 적 있냐'는 질문에 금속노조 관계자는 "없다"고 답했다.
노사정위원회가 추진 중인 노사정 대타협 또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정갑득 위원장은 "10년 전에 (노사정 대타협을) 해봤지만 수십 가지를 약속해도 결국 비정규직법과 정리해고법 2가지만 적용됐다"며 "다시는 그런 협약 체결 안 한다"고 못 박았다.
"임금 동결도 가능하다"더니 "그 얘긴 못 한다"한 까닭은?
구체적 현실로 들어가면 이들의 주장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사용자의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노동조합 내부 의견 통일조차 쉽지가 않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주요한 방법인 노동시간 단축은 기본급이 총 임금의 40% 수준에 불과한 제조업 임금 체계 특성상 필연적으로 임금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임금 하락은 안 된다고 했다. "지금도 이미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이 사라져 임금을 대폭 삭감 당한 상태"라는 것이다.
현대차 노사가 오랜 논의 끝에 주간연속 2교대제를 합의하게 되기까지 가장 큰 난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문제였다. "노동시간은 줄이면서 임금은 그대로 보존해달라는 노조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회사와의 협상도 지난했지만, 노조 내부도 이 문제로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어느 정도까지 양보하고 어느 정도까지 얻어낼 것인가가 핵심인데, 이를 둘러싼 내부 교통정리가 어렵다. 이전까지 여러 차례 "임금 동결 결단도 가능하다"던 정갑득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끝내 "이 자리에서는 그 얘기를 할 수 없다"고 버텼다.
정 위원장은 "전문가들과 다양한 안을 고민 중이지만 아직 밝힐 때가 아니다"라며 "정부의 대화 의지가 확인되고 대화와 토론의 장이 마련되면 그때 (임금 동결이든 삭감이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기자회견 불과 몇 시간 만에 보도자료를 내 "정부가 대화에 나선다면 임금동결이나 삭감 등의 내용은 교섭장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합뉴스> 보도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임금 동결 선언에 대한 치열한 내부 갈등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지극히 맞는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의 '사회선언'에 사회적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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