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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감원? 아직 전초전일 뿐이다"

"내년 봄 본격화…일자리 나누기 모색해야"

"지금, 고용 문제는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얽힌 실타래의 수준이 아니다."

미국 발(發) 금융 위기가 전 세계의 실물 경제 위기로 이미 전이되고 있는 가운데 "지금은 비정규직 뿐 아니라 자영업, 청년, 정규직을 포함해 국민 경제의 고용 틀 전부가 흔들리는, 말하자면 고용 대란 국면"이라는 진단이 19일 나왔다.

현재 우리 사회의 고용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 즉 고용의 양극화가 주된 것으로 꼽히고 있지만 앞으로 닥칠 고용의 문제는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얽힌 실타래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면서도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경고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이날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정갑득)이 주최한 토론회 '금융위기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에서 "(현재의 경제 위기는) 고용창출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고용) 구조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격"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대규모 '감원 칼바람'? 아직 전초전일 뿐"

김병권 센터장은 "앞으로 고용 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폭과 깊이를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미 인력 감축 등 대규모 구조조정은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번 위기는 "중소기업, 자영업, 고용과 같은 경제 구조의 하부에서부터 심화돼 왔기 때문"이다. 위기가 본격화되기도 전인 지난 상반기,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도 국내 고용의 87%를 담당하는 중소 기업이었다.

대기업도 안전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쌍용자동차가 이미 비정규직의 감원을 포함해 350여 명의 잉여 인력에 대한 유급 휴가에 들어간 데 이어 희망퇴직까지 검토하고 있고, 건설업과 금융계도 조짐이 심상치 않다. 최근까지도 초호황을 누려 왔던 조선업마저 이미 대규모 감원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김 센터장은 "지금은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실물 경제 하락 속도가 빨라지는 올해 겨울부터 내년 2~3월이 감원 등 구조조정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는 국내의 경우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체감 위기'를 덜 느끼고 있지만, 올해 말부터는 대기업에서도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센터장의 예측이다. 따라서 현재 임시직과 일용직에만 미치고 있는 감원의 칼날이 올해 말,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상용직 즉, 정규직까지 겨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원래 저조했던 고용, 마이너스 돌입 가능성…외환위기 충격 넘어설 것"

▲현재 임시직과 일용직에만 미치고 있는 감원의 칼날이 올해 말,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상용직 즉, 정규직까지 겨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
더 큰 문제는 한국 경제의 고용 창출력이 원래부터 약했다는 데 있다.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신규 취업자의 수는 두드러지게 감소해 왔다. 김 센터장은 "경제성장률의 하락과 제조업의 고용창출력 하락"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서비스업의 고용 확대가 이를 보완해 왔으나 최근 3~4년 간은 그마저도 막혀 버렸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최근 추세를 볼 때 전년 대비 취업자가 조만간 마이너스 증가로 돌아서고 취업자 절대 규모 자체가 감소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내다봤다.

이미 신규취업자 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2005년 이후 해마다 유지돼 온 28만 여 명의 취업자 증가 추세는 지난 10월 9만7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김 센터장은 "정부가 내년 목표로 삼은 20만 명의 고용 창출이 어림없는 얘기인 것은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원래 저조했던 고용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입한다면 그 충격은 외환위기를 사실상 넘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 대란…보수의 대응은? 안이하다"

"고용 대란"의 위기 속에 김 센터장은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보수의 대응이 "안이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 등 고용 문제의 해법으로 내놓는 비정규직법 개정 등의 방안이 "어이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지금은 비정규직 고용 편리성을 조금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시국이 아니다"라며 "(이런 해법은) 기업에게도 물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김 센터장은 "강한 체질을 갖는 경제로의 전환이 최대의 화두"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센터장은 "현재 수출 부진은 수출 기업의 내부적 문제보다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수출 지원에 정부의 재정을 쏟아 붓는 것은 효과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중소기업 대책도 그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100개의 중소기업 정책보다 1개의 납품가 연동제가 훨씬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조합, 일자리 재분배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가야"

경제가 어려우니 개개인의 먹고 사는 걱정도 심각하지만, 노동조합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고용에 대한 조합원의 불안감을 잠재울 대책도 필요하고, 장기화될 경기 침체에 맞서 어떤 해법과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도 고민스럽다.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아직 구체적인 정책과 일정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다만 "10년 전처럼 대응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만 있을 뿐, '어려운' 고민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아주 원론적인 얘기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기존 일자리의 재분배를 통해 실업자를 최소화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위원은 "정규 노동 시간의 단축과 가동 시간 조정을 통해 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집단적 의미의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특근 폐지와 연장 노동 축소는 가장 효과적인 실업 대책"이라고 말했다.

김병권 센터장도 "개별 노동의 방어보다는 전체 고용 구조의 틀을 바꾸는 방향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총괄적 안목에서 틀을 바꿔 개별 고용 문제도 풀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노동 시간 감소가 일자리 나누기에는 역할을 할 수 있겠으나 기존 정규직의 임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집단적 노동자"의 입장에서 최고의 선택이 "개별 노동자"에게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 아직까지 노동조합이 이런 문제에 대해 "임금 체계의 개선"이라는 역시 장기적 과제 외에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노동계가 정부를 향해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경제 위기의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핏대를 높이면서도 최근의 경제 위기에 자꾸만 속이 타들어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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