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권순만 부위원장의 말이다. 현대자동차 에쿠스공장의 비정규직 115명 해고,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310명의 희망퇴직을 시작으로 자동차, 철강, 조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정규직부터 해고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권 부위원장은 "해고가 아니더라도 강제 퇴근을 통한 임금 삭감, 복지 축소 등 경제 위기의 한파를 비정규직이 고스란히 껴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산하의 13개 비정규직지회 대표자들이 모여 '총고용보장-노동자살리기 금속비정규투쟁본부'를 만든 이유다. 이들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 한 명의 비정규직의 해고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규직은 휴업이 임금 삭감이지만, 비정규직은 해고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인해 속속 대공장들까지 감산 및 휴업을 단행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의 예고대로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먼저 그 여파를 톡톡히 실감하고 있다. 정규직에게는 휴업으로 인한 임금 삭감과 각종 복지 혜택 축소 수준이지만, 비정규직은 생계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GM대우에 이어 쌍용차도 17일부터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이미 쌍용차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640명 가운데 310명을 희망퇴직으로 잘라냈다. 남은 330명 가운데 40명은 강제 휴업 중, 나머지 200여 명도 내년에는 전원 감원한다는 얘기가 현장에 돌고 있다.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12개 하청업체 가운데 3~4개만 남고 모두 폐업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쌍용차보다 먼저 휴업에 들어간 GM대우 사정은 더 열악하다. 이미 지난 2000년 대우자동차가 부도나면서 1750명이 정리해고 당했던 경험이 있는 GM대우는, 정규직에게는 우선 복지 혜택부터 축소하고 20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한다고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498명의 전환 배치에 노사가 합의하면서 이들이 배치되는 공장의 비정규직들이 다 해고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부품을 수출하는 생산라인의 4개 업체 가운데 2개 업체가 이미 폐업해 140여 명의 비정규직이 해고됐고 또 다른 업체도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비교적 덩치가 큰 기업들도 비정규직부터 해고해 위기를 모면하려 시도하고 있는데, 작은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금속노조는 "2~3차 하청업체와 계약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한시하청 노동자는 얼마나 잘려 나가고 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조선소의 경우 대규모 비정규직 구조조정이 예고된다.
▲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여파를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먼저 톡톡히 실감하고 있다. 금속비정규투쟁본부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고용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사람들의 사진에 신발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갖기도 했다.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기자 |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제각각 '투쟁' 시작…한 곳으로 모아질까?
금속비정규투쟁본부는 이날 "최근의 상황은 명백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학살"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총고용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싸우겠다"고 밝혔다.
산업별 노동조합인 금속노조를 통해서라도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정규직에 전달할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비정규직노조 조차 없는 사업장은 손 놓고 구조조정을 당할 상황이다. 때문에 이들은 노조 가입 운동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에도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건은 역시 정규직과의 연대다. 정규직 가운데는 쌍용차지부가 이날 회사의 강제 휴업 조치에 맞서 처음으로 '투쟁 깃발'을 들었다. 과연 제각기 시작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싸움이 한 곳으로 모아질 수 있을까.
이날 금속비정규투쟁본부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상대로 "비정규직과 연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역설적으로 '연대'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금속노조는 각 지부에게 "계약해지, 폐업 등을 통한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비정규직 우선해고를 목표로 한 배치전환과 휴직을 반대하라"고 대응 지침을 내렸지만, 각 지부의 실천력 또한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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