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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우리는 쪽배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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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몰려오는데 우리는 쪽배 타고 있다"

경제 위기, 노동운동은 무엇을 고민하나?

'경제 위기'라는 네 글자가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누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거꾸로 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탓하고, 또 누구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같은 국민의 희생"을 요구한다.

대외적 상황과 별도로 "자신들에게 별 실익도 없는데 이참에 준비했던 모든 것을 다 밀어붙이겠다는 듯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는 가만히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조직 노동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온갖 어두운 전망 속에서 노동운동은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2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주최로 열린 '경제위기와 노동운동의 대응' 포럼은 그 절실함의 표현이었다.

양대 노총 관계자,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6명이 머리를 맞대고 벌인 3시간여의 토론에서 모두가 "2009년의 상상하는 어떤 상황보다도 더 최악"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런 "10년 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쪽배를 타고 있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 했다.

"상용직도 내년되면 마이너스 될 것"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1980년, 1998년에 이어 내년에 세 번째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고용 사정을 놓고 "지금은 비록 자영업자와 임시직, 일용직에서 전년 대비 마이너스 고용 증가폭이 나타났지만, 내년에는 상용직도 마이너스 증가폭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되살아나는 '대량 실업'의 공포인 것이다. 문제는 10년 전과 달리, 이번 위기는 "취약계층부터 단계적으로 장기전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데 있다. 임영일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소장은 "대기업 정규직은 가장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을 때가 돼서야" 해고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로 여기에 10년 전과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것은 고스란히 노동운동의 대응에 있어서도 주요한 장애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또 10년 전과 달리 지금의 조직노동은 그 힘이 참 미약하다. 임영일 소장은 "사실상 민주노총은 무력한 상황까지 와 있다"고 진단했다. "그 밑의 산별노조 역시 오십 보 백 보"다.

민주노총도 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10년 전에 비해 현장의 동력도 죽어 있고 지도부의 집행력도 떨어진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이석행 위원장은 '촛불 총파업'으로 구속돼 있고, 정부는 최저임금제와 비정규직법 등을 개정해 '규제 완화 실현'에 열을 내고 있지만 비판 성명과 "그 흔한 국회 앞 농성"이 전부다.

한국노총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 체결한 정책 연대로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만 허공에 공허하게 날릴 뿐이다.

▲ 문제는 10년 전과 달리, 이번 위기는 "취약계층부터 단계적으로 장기전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데 있다. 10년 전과 달리 지금의 조직노동은 그 힘이 참 미약하다. ⓒ프레시안

"위기는 기회라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 똑같은 얘기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라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 조직 노동이 갖고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 똑같은 얘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당사자인 양대 노총이 이날 내놓은 대응책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실업과 고용 문제에 대한 대비책으로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산별고용안정기금을 다시 한 번 공세적으로 밀어붙이고 정규-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축소와 연대임금 실현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 말 앞에 "매년 해왔던 얘기긴 하지만"이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한국노총의 해법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차이점만 강조됐다. 사회적 대화냐 전면적 투쟁이냐의 문제였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시장 중심 패러다임을 꺾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원하는 사람도 지금은 힘을 보여야 할 때"라고 날을 세웠다.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비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 까닭이다.

"사회적 대화, 들어가 있는 사람은 잘 하고 들어가기 싫으면 안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 싫다는 민주노총의 대안은? 총파업밖에 없었다. 총파업이 가능한가?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면 새로운 기구 만들면 안 되나? 안 들어간다면 그 대신 정책과 제도 개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백화점식 대응 말고 우선 순위 명확히 하자"

노동운동이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번 노동자대회를 할 때면 나오곤 하는 양 노총의 요구안은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길게 늘어선 요구안들이 과연 국민에게 희망이 될까? 김유선 소장이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충고한 이유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요구를 나열하지 말자"고 공감을 표시했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우선 "실업과 고용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었다. 김유선 소장은 "현재 3~7개월인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확장하고 지급 대상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체 취업자 2500만 명 가운데 실제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600만 명 수준"이라며 "비정규직 뿐 아니라 자영업에게까지도 실업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제 개악 반대'가 아니라 '최고임금제 도입'으로 치고 나가자"

김유선 소장은 특히 정부의 최저임금제도 무력화 시도에 맞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최고임금제도를 들고 나오는" 상상력을 얘기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이 80만 원이라면 최고임금은 8000만 원으로 제한하자"는 얘기다. 그는 "대통령이든 누구든 그 이상 받는 사람은 그것을 반환해 일자리 창출에 쓰도록 하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동운동이 국회 밖의 거리 투쟁에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국회 안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예산 투쟁'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민영 사무처장은 "1년 내내 지속적으로 예산에 관심을 가져 고용 지원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등의 방식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유도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김민영 사무처장은 "진보진영의 각종 연구소를 하나로 뭉쳐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이 경쟁력 있는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곳에서 국민의 정책을 만들어내 그것이 이명박의 정책과 1:1로 맞붙어 설득력 싸움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가 가진 총알 3개 가운데 무엇이 실탄인지 MB는 이미 알고 있다"

▲ 남택규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우리가 가진 권총 안에 총알은 고작 3발 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부는 그 중 무엇이 실탄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한 것은 이명박 정부라는 외부 상황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였다. ⓒ프레시안
임영일 소장은 "이번 위기를 잘 넘기지 못하면 노동운동 또한 빅뱅으로 들어갈 것"이라 했지만, 문제는 노동운동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토론을 지켜보던 남택규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우리가 가진 권총 안에 총알은 고작 3발 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부는 그 중 무엇이 실탄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한 것은 이명박 정부라는 외부 상황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였다.

또 "여러 정파와 계파, 의견 그룹이 비상한 위기의식을 가질 때"라는 임영일 소장의 주문은 갈기갈기 찢어져 서로 '네 탓'하기에 바쁜 노동운동 내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했다. "별 이념도 없으면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김금수 이사장) 민주노총의 내부 분열만 문제일까? 2006년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이후 사이가 틀어진 양대 노총은 사안별 공조마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날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이 "진보진영이 일정하게 통일 단결된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 얘기가 그저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는 까닭이다.

또 다시 통일 단결?…"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부터 유보하자"

여러 단체들과의 연대와 단결에 앞서 노동운동 내부부터 불필요한 싸움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다시, 내년으로 예정된 최초의 직선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맞춰졌다.

"이대로라면 내년 노동운동의 움직임이 뻔히 보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상반기에 모든 싸움을 마무리해 버리고 그 후에는 선거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년에 힘 있는 공동투쟁?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통일된 공동전선을 해칠 수 있는 요소들은 합의를 통해 미리 제거해야 한다."

임영일 소장의 말이었다. 직선제 도입을 폐기하거나 최소한 유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이는 "지금은 누가 지도부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김유선 소장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그는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큰 차이가 있는 듯 말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아무 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록 한국노총의 정책연대에 대해 민주노총의 직선제 선거만큼 구체적인 목소리가 나오진 않았지만, 양대 노총 모두 갈 길이 험난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날 나온 목소리들을 양대 노총이 받아 행동에 옮길 수 있을까?

"짚을 건 다 짚었는데 손에 남는 것은 없는 듯하다."

토론을 지켜보던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토론회 말미에 꺼낸 말이었다. "길고 오래 이어질" 경제 위기 속,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노동운동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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