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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들이 제 역할 다 했어도 이런 일 안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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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들이 제 역할 다 했어도 이런 일 안 생겼다"

[인터뷰] 김윤주 교사 "아이들 비겁해질까 걱정"

일제고사 대신 체험 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을 통보받은 7명의 교사들. 교육 당국의 유례없는 중징계와 이들의 출근 투쟁은 연일 언론 지면을 달구고 있다.

특히 교장·교감 등 학교 측이 징계 교사들을 대하는 태도는 여론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학교장들은 항의하는 학부모와 직접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교사 한 명을 막기 위해 수십 명의 경찰을 등굣길에 배치시켰다.

지난 19일, 해임 통보를 받은 후 마지막 인사를 하러 출근한 서울 종로구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 김윤주 교사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김 교사가 교실에 일찍 들어간 사실을 안 이 학교 교장은 등굣길에 경찰을 배치하고, 김 교사네 반 학생을 교문 앞에서 확인해 교실이 아닌 교장실로 가게 했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1시간만 수업을 허락해달라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요청에도 교장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청운초 교장은 김윤주 교사를 배웅하러 운동장으로 나서던 학생들을 몸으로 막으며 학교를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왜 이런 '진풍경'을 자초하는 것일까. 지난 19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길을 나선 김윤주 교사와 함께 일제고사와 이번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지난 19일, 해임 통보를 받은 후 마지막 인사를 하러 출근한 서울 종로 청운초 6학년 4반 담임 김윤주 교사. 교장은 배웅하러 나선 학생들을 복도에서 막았고, 학생들은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프레시안
"장학사에게 열심히 하려는 모습 보여주려 그랬나"

"마지막 수업이었지만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교장이 교실에 와서 나가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통곡했다. 대한민국에는 법이 있고, 민간인은 학생을 접촉할 자격이 없다는 등 상식 이하의 발언을 쏟아냈다. 왜 그랬을까. 교실 앞에 와 있는 장학사 앞에서 너무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그런걸까."

김윤주 교사는 방금 전 겪은 일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는 "누가 봐도 그런 조치는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더 자극이 되는게 뻔한 일"이라며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처사를 하는 학교 측에 학부모들까지 흥분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만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이날 같은 시간 길동초등학교에서는 해임당한 최혜원 교사가 학생들과 교문 밖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자 학교 측이 부른 경찰이 그 자리에서 집시법 위반이라고 경고 방송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본관의 모든 출입문을 자물쇠로 봉쇄하고 식당과 화장실에도 못 가게 했다. 거원초등학교에서도 교실에 들어가려는 박수영 교사를 학교에서 경찰을 동원해 막아 학부모와 경찰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이런 촌극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해당 교육청에서 나온 장학사들이 있었다. 기자들이 물어도 끝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던 이들은 교장·교감과 긴밀히 상의하며 대처법을 지시하거나 몸으로 교사들을 막기도 했다.

김 교사는 일제고사 당시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태를 두고 학교장들이 교육자로서 정체성을 생각하기 보다는 교육청의 눈치를 살피고 자신의 안위에 급급한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에 충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체험 학습은 학교장 재량권이라고 법에 명시돼 있다"며 "교장들이 일제고사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발언하고 교직원을 보호했다면 일이 이렇게 흘러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일제고사 결과, 부진한 학교에 예산 투입되지 않았다"

김윤주 교사는 "학교 현장에 있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일제고사의 폐단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로 교직 생활 11년차를 맞은 그는 "일제고사 이후 아이들의 '한해 목표'가 전부 '올백 맞는 것'으로 변하더라"며 씁쓸히 웃었다.

"공정택 교육감이 들어선 2005년부터 서울에 일제고사가 부활했다. 이후 학교 풍경이 정말 많이 변했다. 방과 후에 아이들과 아무것도 함께 할 수 없었다. 학생기자단, 생일파티부 같은 활동을 많이 했는데, 일제고사가 들어온 이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김 교사는 스스로를 "시험이라는 평가 방법에 대해서는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유용할 수도 있다는 중간적 입장"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는 일제고사를 강행하는 교육 당국의 목적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성적을 진단해서 부진한 학교에 예산을 투입하겠다며 표집평가를 계속 진행하지 않았나. 그러나 막상 예산은 정반대로 투입돼 왔다. 진단이 목적이 아니라 학교를 성적에 매몰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성적 경쟁으로 줄세워서 평가권자인 자신들의 권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는 성적과 무관하게 과반수 정도의 학부모들이 체험학습을 희망했다"며 "교육 주체들 누구도 필요성도 못 느끼는 시험을 치르도록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두고, 현장 교사들이라도 여론을 반영한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마음이 아픈 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잊혀진다. 그러나 오히려 깊이 뿌리박히는 것은 불신이다. 교장, 교감선생님이 훌륭하신 분인줄 알았던 아이들이 그 어른들의 밑바닥을 봤고, 소신을 가진 선생님이 저렇게 다친다는 사실을 봤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패배주의, 보신주의 배울까 가슴 아프다"

유례없는 중징계. 김윤주 교사는 해임 소식을 들은 이후 "정말 이 나라가 엉망이 됐다고 느꼈다"며 "교육청조차 이런 무리한 일을 벌인 뒤 책임질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사는 무엇보다도 가장 많이 걱정되는 것은 역시 아이들이라고 했다. 사태를 지켜보는 초등학생들의 마음 속에 남을 '불신'에 대해 말하는 그의 표정은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가장 어두웠다.

"마음이 아픈 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잊혀진다. 그러나 오히려 깊이 뿌리박히는 것은 불신이다. 교장, 교감선생님이 훌륭하신 분인줄 알았던 아이들이 그 어른들의 밑바닥을 봤고, 소신을 가진 선생님이 저렇게 다친다는 사실을 봤다는 것이다.

마지막 수업에서 그 얘기를 굉장히 오래 했다. 당장은 선생님이 손해보는 것 같지만, 스스로 당당하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많이 다치는 사회는 아니라고. 아이들이 사회적 참여에 대한 패배주의, 보신주의를 배울까봐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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