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초등학교 최혜원 교사가 아이들이 손수 쓴 글이 담긴 A4용지 한 뭉치를 내보였다. "이제 눈물도 안 나온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의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최 교사는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외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초·중학교 교사 3명에게 파면, 4명에게 해임 결정이 내려졌다. 사립학교 교사 1명에게는 해당 재단에서 자체 징계하도록 했다. 지난 10월 이틀간 치러진 일제고사에서 이를 원하지 않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대거 중징계가 내려진 것은 지난 1989년 해직사태 이후 처음이다.
11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징계 결정을 규탄하는 전교조 서울지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교사들뿐 아니라 소식을 듣고 나온 학생과 학부모까지 총 60여 명이 모였다.
▲ 11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징계 결정을 규탄하는 전교조 서울지부의 기자 회견이 열렸다. ⓒ프레시안 |
서울시교육청이 7명의 교사에게 중징계를 한 사유는 모두 똑같다. '성실의 의무'와 '복종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 그러나 교사들은 학부모의 선택권과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교육이 그런 위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저는 정말 평범한 교사다.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가 돌려지는게 싫었다. 학원 많이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성적 비교 당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 때문에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는게 싫었다. 그래서 그런 아픈 마음을 학부모들에게 편지로 써서 보냈다. 학부모 선택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해임 통보를 받은 원인이다."
유현초등학교의 설은주 교사는 눈물을 쏟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가 맡고 있는 학급 29명의 학생 중 11명이 체험학습에 참여했다.
파면 결정이 내려진 선사초등학교의 송용운 교사는 "꿈이려니 했다"며 "이번 징계는 7명 뿐만 아닐 전교조 모든 조합원, 나아가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자행하는 테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품수수하고, 성추행을 하는 교사들에겐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를 보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건 명백한 폭력이자 테러행위다."
최혜원 교사는 "우리는 결코 일제고사를 거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면 시험 감독에 들어가고, 시험지를 채점했겠나"라며 "교육자로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준 것을 두고 의무를 위반했다고 징계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 또는 해임 통보를 받는 교사들은 학부모의 선택권과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교육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
"학부모에게 담임 명의로 1장의 편지를 보내고 체험 학습을 선택하게 한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았다. 소식을 듣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뉴스를 보고 와서 아침에 먼저 물어보더라. 이곳까지 오는데 아이들에게 힘내라는 문자가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구산초등학교의 정상용 교사는 "차라리 일제고사와 관련해 아이들이 생각할 기회를 준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양심과 신념에 따랐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설은주 교사 역시 아이들의 격려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진실은 저와 아이들과 학부모밖에 모른다"며 "반드시 우리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 반에서 서울시교육청이 내려보낸 대회를 진행했다. '스승 존경 사상 고취'가 주제다. 낯부끄러워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어서 진행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출한 글을 읽다가 눈물이 그만 쏟아졌다. 자기들이 체험학습을 가서, 자기들이 이 반에 배정되어서, 우리 선생님이 우리와 떨어지게 되는구나 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애들이 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더라."
▲ 교사들은 모두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받고 있는 격려에 눈물을 흘리고 또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프레시안 |
이날 모인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사가 아닌 학교와 시교육청이 사실을 왜곡하고, 비교육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교육청은 "중징계를 받은 교사들이 일제고사에 불참하도록 유도하고, 학생들이 집단으로 무단결석하게 하는 등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적었지만 이들의 말은 달랐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중학교 학생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교감선생님이었다"고 지적했다.
"저는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교감 선생님이 늦게라도 오면 출석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결국 무단 결석 처리가 됐다. 우리가 대체 그런 선생님에게 뭘 보고 배우겠나."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도 "소신있게 일하는 선생님들을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제, 우리 딸이 너무 속상해서 잠을 못 자더라. 우리 애들은 체험 학습에 가는 걸 교감이 잡았다. 중학교 3학년이면 자신들이 스스로 판단할 나이다. 그런데 교감이 전화를 해서 잡아서, 결국 애들 2명은 지하철에서 울면서 내렸다. 오늘 이곳에 나온 아이들도 선생님이 선동해서 무단 조퇴한걸로 처리됐다고 하더라."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 시교육청에 탄원서를 제출했던 또 다른 학부모도 "장학사가 어떻게 집 번호까지 알고 전화를 해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다"며 "그토록 체험 학습을 강조하더니 10월에만 체험 학습을 인정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질타했다.
6학년 딸을 둔 학부모 이윤아 씨는 "정치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그저 한 아이의 엄마로 나왔다"며 "우리는 충분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서 결정했는데 이것을 너무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말했다. 그는 "애들 졸업할 때 선생님 뵐 수 있도록 어떻게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택, '교육감' 아닌 '교육 모리배'"
이날 전교조는 기자 회견문에서 "20년 동안 피땀 흘려 이룬 교육 민주화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다"며 "서울시교육청의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다가 마침내 군사정권 시대로 완전히 되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학교를 정치 이데올로기의 선전장으로 전락시키고,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사를 길거리로 내쫓고, 권력자의 입맛대로 역사를 마구잡이로 뜯어고치고, 교육관료가 교사, 학생, 학부모 위에 군림하며 교단을 더럽히는 일은 이제 더이상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서울 교육을 송두리째 파탄으로 몰않은 공정택은 '교육감'이라는 이름의 '교육 모리배'일 뿐, 더 이상 교육감이 아니다"라며 "공정택을 교육청에서 끌어내는 것만이 지금 서울교육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징계 결정에 대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징계가 철회될 때까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무기한 철야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다. 또 이날부터 공정택 퇴진 촉구 서명 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오는 23일 중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일제고사에서도 학부모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체험학습 및 대체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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