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해보자"…독기 오른 민주 "24시간 대기"

선진당도 "원천무효"…'법안 전쟁' 줄줄이 대기

"저 쪽에서 전쟁을 선포하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전쟁은 살고 죽고의 문제이다. 살려면 싸워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18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상정된 직후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이 한 말이다.

▲ 부서진 외통위 회의실 앞에 연좌한 민주당 의원들. ⓒ프레시안

이날 한나라당의 '전광석화', '질풍노도'와 같은 한미 FTA 상정을 경험한 민주당이 "원천무효 투쟁"을 선포하며 국회의장실 무기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아울러 상정 직전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경고했던 '장외 투쟁'은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이 한미 FTA처럼 'MB 법안'들을 줄줄이 처리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국회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하는 한편, 외통위 박진 위원장과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및 경호책임자를 특수공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회의원의 의원직 수행을 불법적으로 봉쇄한 점, 최규식 의원을 외통위 위원장실에 6시간 동안 불법 감금한 점, 민주당은 물론 자유선진당 등 다른 야당의 회의 참여까지 배제한 점 등에 대해 사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 몸싸움을 벌이다 점심 시간에 복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 ⓒ프레시안

선진 "회의장 가고 있는데…무효!"

자유선진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통해 의원 전원 명의로 "한나라당의 한미 FTA 상정은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에서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폭거"라고 규정하며 '불법성'을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본인이 외통위원이기도 한 이회창 총재는 "2시 정각에 외통위 회의실 앞에 도착해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열어주지 않았다"며 "문을 잠근 뒤 밀실 안에서 한나라당 의원끼리 모여 상정한 것은 적법한 참석자에게 참석기회를 주지 않고 한 회의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말했다.

선진당은 이날 물리적 저지는 하지 않으나 회의에 참석해 한미 FTA 상정 반대 토론을 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외통위원인 이회창 총재와 박선영 대변인이 회의장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한나라당 의원들이 단독 상정한 뒤 회의장을 빠져나간 뒤였다.

외통위로 향하는 복도에서 오후 1시58분에 한나라당 황진하 간사와 통화를 한 박 대변인은 "통화 시 황 간사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며 "회의에 참석하라고 해놓고 2시가 되기도 전에 상정을 한 것은 절차에 위배되는 분명한 무효 사유"라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함께 외통위 회의장 앞에서 몸싸움을 벌였던 민주노동당도 격앙된 분위기다. 박승흡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의회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헌정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폭력적 쿠데타"라며 "외통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등 한미 FTA 비준안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온 몸을 던져 투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새벽에 퇴원한 뒤 보좌관의 부축을 받으며 외통위 몸싸움에 참여했던 이정희 의원은 빈 외통위 회의장에서 "이게 무슨 국회냐"고 절규하며 "나라 팔아 먹는 한나라당은 반드시 응징 받을 것"이라고 외쳤다.

▲ 절규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프레시안

'내홍' 민주당, '외통위 전투'로 '벤치 클리어링' 효과?

한나라당의 한미 FTA 단독 상정 직후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린 국회의사당 245호 회의실. 소속 의원들과 보좌진, 당직자들이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내려온 터라 회의실 안에는 땀 냄새가 풍겼다. 소화기를 뒤집어 쓴 옷을 입은 채 계단에 앉아 얼굴을 파묻고 있는 보좌관과 눈가에 물기가 어린 여성 당직자 등 사뭇 비장감이 넘쳤다.

▲ 외통위 문을 해머로 내려치고 있는 김영록 의원. ⓒ프레시안

규탄사를 낭독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김영록 의원은 "농촌에서 자란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망치를 들고 위원장실 문고리를 때렸다"며 "초선이지만 국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비장한 각오가 생겼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실력 저지'를 위해 신낙균 의원을 대신해 17일 외통위원이 된 김 의원은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무소속으로 당선 된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는 이날 이날 외통위 회의장 앞에서 문학진 간사와 함께 번갈아 출입문 해머질을 하는 등 확실한 '민주당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본의 아니게 6시간 동안 외통위원장실에서 '감금' 됐던 최규식 의원도 이날 화제의 인물이었다. 최 의원은 오전 8시께 문학진, 송영길 의원 등과 외통위 위원장실에 진입을 했는데, 문학진, 송영길 의원이 다른 민주당 의원들을 데리러 간 사이에 문이 잠겨 나오지 못하고 상황이 끝난 오후 2시까지 위원장실에 머물게 됐다.

최 의원은 "혼자서라도 회의장에 들어가 항의해보려 했으나 국회 경위들이 막아 못 들어갔고, 밖에 나가 동료 의원들과 같이 싸우기 위해 나가려고 해도 경위들이 못 나가게 막았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대신 위원장실 안에서 휴대전화를 통해 안 상황을 최재성 대변인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최 의원은 "6시간 동안 박진 위원장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속기록에 박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한 걸로 나온 걸 봐서는, 박 위원장이 새벽부터 회의장에 나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추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 몸싸움에는 장년층에 속하는 김성순(69세) 의원이 적극 동참하는가 하면, 조배숙, 최영희, 김상희, 김유정, 전현희 등 여성 의원들을 비롯해 여성 당직자들도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발휘해 당 내에서 큰 격려를 받았다.

한나라, 연내 처리 드라이브

민주당이 '결기'를 다지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한미 FTA 비준안 연내 처리 드라이브를 멈출 기세가 아니다. 게다가 한미 FTA 비준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동의안'이다. 민주당 소속의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수문장으로 지키는 법사위 관문을 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이날 외통위에 상정된 비준동의안은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심의.의결과 전체회의.의결을 거치면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 상정과 표결까지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진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지만, 한나라당은 최소한 상임위 처리는 연내에 매듭지으려는 속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