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에 들기름을 쏟아 부은 것은 지금 여당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뒤죽박죽 예산들이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이다. 즉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기본 방향이다. 정부와 토목관련자들이 당분간 TV와 라디오 그리고 신문을 장식하며, SOC의 불가피성과 경제적 효과 등을 얘기하며, 마치 무당굿 하듯이 "내년에는 다 잘 될거야"라고 외쳐댈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은 루즈벨트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라디오 주례연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녹색 뉴딜' 정책은 실제 뉴딜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뉴딜정책에서 토목관련 예산은 10%이상을 넘지 않았다. ⓒ청와대 |
한국은 평소에도 그 두 배 가까운 건설지출을, 국책사업이라는 형태로 억지로 끌어오면서, 지난 10년 동안 새만금과 각종 특구와 지역도시 등을 만들어냈다. 많은 지방공단의 입주율이 50%도 제대로 넘지 않는 현 상황에서, 국민경제의 나머지 남은 돈을 탈탈 털어 건설에 넣으면, 위기가 극복이 될까?
불행히도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는 경기침체가 하반기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내수 위축으로 연결되면서 내년 9월 이후 청명한 가을 어느 날, 한국 경제는 사회붕괴라고 할 수 있는 '경제 빅뱅'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사람은 굶고는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사람들의 밥과 일자리에 들어갈 돈을, 시멘트 사는 돈, 불도저 움직이는 돈, 그리고 토호들에게 토지 보상비로 풀 돈으로 쓰고, 정작 "배고파"라고 하는 국민들에게는 아무 것도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류 경제학 혹은 표준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경제원론 체계를 지지하는 그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약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이 '위기이론'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 이론은 '일반 균형' 그것도 '장기 균형'이라는 개념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이질적인 케인즈의 거시경제 이론을 교과서에 끌어다 놓았다. 그러나 케인즈의 경제이론에도 왜 위기가 생기고, 이 위기의 전개, 즉 '과정'에 관한 이론은 거의 없다. 지난 주에 내가 얘기한 위기의 패턴 분석 같은 것들은 표준 경제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콘트라티에프의 장기파동설과 '공황론'과 같은 비주류경제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패턴 분석들이다.
내년에 한국에서 벌어질, 1945년 시작된 한국 경제사 초유의 사건에 대해 경제학 교과서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같은 구조가 재생산된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는 어떠한 시뮬레이션 모델도 내년도의 한국 경제 상황을 모델 속에서 재현해줄 수는 없다. 이건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모델 구조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데이터는, 지금 부동산을 위해 국민들이 융자한 개인 부채가 상당하고, 이로 인해 실제 '소비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고, 내년도에 '건설 일용직' 일부를 제외하면 추가적인 일자리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현 정부가 염두에 둔 2~3%의 지방토호와 재력가들의 '다주택 보유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어차피 내년 내내 부동산 경기는 일부 지방개발지에 대한 투기를 제외하면 꽁꽁 얼어붙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현 상황은 여러 가지 이유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국민 혹은 이사가 필요했던 국민들이, 이 공간에 대한 지출을 일시 정지시키고, 경제빅뱅이 초래할 최소 2~3년 간의 대공황 상황에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가처분 소득'을 지키려고 하는 상황이다. 불행히도 경제빅뱅이 진행되면 현재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는 영세민 혹은 도시빈민으로 경제적 위상이 변하게 될 것이다.
그 밑의 사람들은? 일부는 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지방으로 공사장을 따라다니며 일용직 근로자로 살게 되는, 1939년 출간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연출될 것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답을 찾기가 어려우므로, 잠시 시계를 십년 전으로 되돌려 1998년 막 집권한 DJ 정권 내부에서 있었던 논의들을 잠시 생각해보자.
당시 나는 재벌사였던 어느 그룹의 내부에 있었고, 1월초 어느 날 기획실 간부들이 청와대 회의에 참석한 이후에 벌어진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매각하는 계열사의 가격을 조금이라도 높게 받기 위해서 '기업 가치평가'를 맡은 컨설팅 회사들에게 줄 자료들을 정리하거나, 조금이라도 이 회사들이 나아보이게 하기 위해서 경영계획서 같은 것들을 영문으로 만드는, 그런 귀찮지만 어쩔 수 없던 일들도 했었다. 그리고 막 구성된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몇 가지 자문을 해주기도 하고, 또 개혁적인 경제학자들끼리 정부에 대한 직간접적인 건의에 대한 논의들도 같이 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인수위원회, 그리고 청와대 경제팀에서 가장 심각하게 학자들의 건의에 대해 경청했던 것은 '폭동'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역으로 노숙자들이 밀려들고 있었고, 이런 노숙자들은 서울만이 아니라 부산 등 거의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여기에 잠시 후 기업에서 정리해고 이후로 쏟아지게 될 해직자들에 대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경제적으로 디자인하는 것들을 시급히 하지 않으면, 대규모 폭동으로 인해 정부가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것들을 논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혼동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할 정치적 여건이 형성됐고, 자활 사업 등 한국에는 없었던 적극적인 복지정책들이 급하게 도입됐고, '사회안전망'이라는 복지담론이 성립됐다. 당시 급하게 도입됐던 이런 프로그램들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당시 소장파 학자들이 기대했던 대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실증적 검토와 같은 아카데믹한 논의는 추후에 하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1998년 1월과 2월, IMF 경제위기라는 엄청난 사건 속에서 새롭게 정권을 인수한 사람들에게는 '폭동'이라는 개념이 탑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내 시각이 너무 비관적일까? 나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최근에 보여준 모습대로 '토건 위주의 재정정책'을 강행한다고 하면, 내년 상반기가 지나더라도 중산층과 하층민들, 즉 도시빈민들의 소비여력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고, 그 효과는 끔찍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내수경제로 인해 9월 이후에 경제빅뱅이라는 클라이막스로 가게 될 것 같다.
경제학적이거나 정치적인 수사를 다 제외하고, 이번에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예산은, 솔직히 이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경제 위기 예산'이라기보다는, 2010년 6월의 지역선거를 겨냥한 선거용 선심선 예산처럼 보이지 않는가? 어차피 내년이 되면 선거를 치르기 위해 각 지역에 도로를 놓고, 건물을 짓고, 또 하천정비 등 별의별 사업을 '무슨 무슨 르네상스', '무슨 무슨 중심축 개발' 이렇게 해서 여야가 잘 합의해서 했을, 그런 선거용 예산 사업이다. 이번에는 그 선거용 예산을 1년 당겨서 미리 선거준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상편성을 해놓고, 내년도에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몇 가지 간단한 원칙을 생각해보자. 지금 재정지출이 가야할 곳은, 지역복지, 노동, 그리고 창의성 이 세 가지이다. 창의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것은, 2~3년 경제가 힘들다고 해서, 산업활동이나 생산활동을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고, 글로벌 경쟁이라고 하는 것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과 발상을 위해서 예를 들어보자. 지금 사실 이번 국회에서 시급히 논의해야 했던 것은, 실업급여의 지급 기간을 한시적으로라도 1년 이상 장기로 연장하는 방안과 같은 것들이다. 어차피 내년에는 실업자 혹은 유사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있는데, 1929년의 대공황과 달리, 이미 존재하는 실업급여 제도를 약간 손질하고 그 기간을 특별대책 등으로 연장하면, 가장 시급한 서민들에게 바로 재정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두고,온 국토를 헤집는다고 해서, 그게 내년도에 바로 '삽질 들어가게' 만들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멘트 사오는 돈이 늘어난다고 해서 국민들의 지급여력이 단기에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실업급여, 사회적 일자리, 창의성 사업, 이 세 가지만 주력해도 단기적인 충격을 받아내면서도 장기적인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정부는 도무지 이런 일들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년 9월과 10월, 아마도 한국 경제에 다시 폭동 형태로 배고픈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위기가 실제 닥칠 가능성이 높다. 배고픈 사람들이 가게에서 생필품을 집어가거나, 그중의 일부가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기 시작하면, 그 혼동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러 가지 형태로 국민경제 내에서 폭동의 위험은 항상 잔존하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경제 폭동이다. 이게 내년도 하반기에 실재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굶어봐라. 역사가 '근대의 탄생'이라고 찬미하는 프랑스 대혁명도, 경제적 눈으로 보면, 자식들에게 빵을 먹여야겠다고 길거리로 나선 여성들이 베르사이유 궁으로 행진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의 경제빅뱅이 여의도 증권가와 정가 그리고 과천의 관청에서 사무직들의 컴퓨터와 서류 위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는 2009년도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에 대해 아직 하나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국민경제라는 것은 부자들만의 것도 아니다.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아랫 단계에는 "배고프다"라고 아우성치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이 그 시기이다.
대기업와 중소기업에서 내년 한국 경제를 헤쳐나갈 힘과 일자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시 자활 혹은 시민경제의 영역을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 복지로 연초부터 사회안전망을 대대적으로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할 것인가?
그냥 대책 없이 삽질만 하고 있다가는, 정말로 '빈곤형 경제빅뱅'을 볼 수 있다. 제발 폭동이라는 개념이 경제 과정에 존재한다는 것을 탑재하기 바란다. 한국은 좋든 싫든 이미 중남미형 경제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중남미에서 언제 폭동이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내년 연초 경제팀은 그걸 연구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서로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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