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300억 달러 한도의 통화스왑 협정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모처럼 훈풍이 불었다.
코스피지수는 무려 115.62포인트 오른 1085.31로 거래를 마쳤고, 원-달러 환율도 177.00원 폭락해 1250.00원을 기록했다.
악재만 이어지던 시장에 모처럼 온기가 도니, '몸과 마음이 아프다'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데 대해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점잖게 조언까지 했다. "저는 항상 5개의 위험이 있으면 7-8개 정도를 걱정하고 대비한다"고 긴 안목을 자랑도 했다.
한미간 통화스왑 협정이 풀 죽어 있던 경제관료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만큼 정말 오랜만의 호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예언대로 주식시장을 잠시 웃게 할 '반짝' 호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 1일 외환 거래액이 400억 내지 600억 불"인데 300억 불은 하루치도 안 되는 규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 코리아'의 근본 원인이 '유동성' 문제에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외국인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자신하는 경제 체질이다. 현재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은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거품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폭탄이 '부동산 거품'이라는 점은 가계부채, 부실 건설사, 제2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은행들의 단기외채 등 현재 우리경제의 가장 아픈 지점을 꼽아봐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아픈 구석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는 문제다.
거품 붕괴 국면에서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하지 못하고 경착륙할 경우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초토화'될 것이란 점은 누구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미간 통화스왑 협정 체결이라는 호재가 있던 날, 이명박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면서 수도권 규제완화 등 또다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 또 31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 추가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무엇으로 경기를 부양시킬까 하는 문제가 관건인데, 국가기간산업(SOC)에 투자해서 경제도 살리면서 국가경쟁력도 강화해야 한다"며 대규모 토목사업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부동산 거품을 꺼뜨리는 게 아니라 거품을 오히려 키우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부양책과 '화학적 결합'을 통해 한미간 통화스왑은 호재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에서 당장 급한 불을 끄고 시간을 번 이명박 정부가 '삽질 경제'로 매진한다면? 한미 통화스왑 체결이라는 단기 호재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자산 붕괴를 두려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을 팔고 나갈 일시 반등기를 제공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경제가 빠진 늪이 '300억 달러'로 쉽게 빠져나올 게 아니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고마워 하는 미국의 경제도 아직 '부실의 늪'의 깊이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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