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집권 직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지내면서 '과천'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이한구 의원이 정책위의장을 그만둔 후 경제부처 관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스터 쓴소리'는 국회예산결산특위위원장으로 돌아와 돈줄을 틀어쥐고 있다.
이 위원장은 29일 오전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최근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이명박 정부가 건설업 지원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 속도를 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과거 건설업을 통한 경기부양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효과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차도 안 다니는데 도로를 만드느니 몇 조원을 들여 하천이나 해안에 인력 투입해 쓰레기 치우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고용 창출도 얼마 못하고 사후 관리에 돈만 들어가는 무리한 토목사업보다는 국토 대청소가 환경도 좋아지고, 관광사업 좋아지고, 물 깨끗해지고 더 생산적"이라고 강조했다. 토목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은 관료들에게 익숙하고 편한 낡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예결위원장인 그가 정부의 예산에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재정은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서 "기업이야 넘어갈 수 있어도 은행이 넘어질 위험한 상황이 올 때도 대비해야" 하는데 정부 관료들이 당장 편하자고 방만한 예산안을 짰다는 것이다.
"예산을 조정해야 한다"도 아니고 "불필요한 예산은 자르겠다"고 단언한 그는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완화만 미뤄도 1조 8000억 정도가 여유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이 종부세와 상속세 완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위기상황일 수록 국민의 마음을 해치고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는 정책은 미뤄야 한다"는 것. "부자들 가슴에는 대못을 박아도 되냐"며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조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도 기본적으로 '감세와 규제완화를 강조하는 경제적 우파'다. 그는 "경쟁력을 올리려면 지금보다 규제완화와 감세를 해서 민간부분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유세는 왕창 매겨도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완화를 주장했고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인세, 각종 준조세 완화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보수주의자'답게 시장에 대한 무리한 개입을 극히 우려하며 현 경제팀의 행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초장부터 내가 주식시장, 외환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는 건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면서 "최소 2, 3년은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이제 마라톤의 초입에 불과한데 100미터 달리기 식으로 접근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는 차기 경제팀에 대해서도 "관치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김석동 전 재정부 차관 등 여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관치전문가'에 대한 비토를 확실히 한 것.
그는 "김대중 정부 때 그나마 외환위기를 넘어간 것은 당시 경제팀이 IMF 핑계를 대고 간섭을 최소화 한 것"이라며 "청와대가 경제팀을 개별적으로 지휘하기 시작하면 사표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못 견딘다"며 청와대의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한 시사주간지의 전문가 대상 여론조사에서 '차기 기획재정부 장관 1위'로 꼽히고, 다음 아고라의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위기 관리 팀장 1순위'로 지목하기도 한 그는 "입각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재정 건전성 신경 쓰기도 머리가 아프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싫다"고 답하진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가 깐깐하기로 소문난 이 위원장을 입각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음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과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빚은 그대론데 자산은 자꾸 줄어들게 된다"
프레시안: 쉽지 않은, 어쩌면 허망한 이야기겠지만 향후 경제를 좀 전망해볼 수 있을까? 최근엔 국가부도위기가능성 지표인 CDS(신용디폴트스왑)프리미엄 급등으로 인해 시장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한구: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이번 혼란이 만들어진 근본 원인은 미국과 유럽인데 그 쪽 사람들도 부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세계화로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됐기 때문에 미국에서 시작된 파장이 바깥에서 어떻게 변형돼 다시 미국으로 넘어올지 전체를 알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다보니 각종 대책을 내놓아도 그게 시장에 먹힐지, 안 먹힐지 자신이 없는 것이다. 선진국 상황이 어떻게 될지, 실물경제는 어떻게 될지, 그게 또 어떤 식으로 피드백 될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CDS문제는 그렇다. 이거 하나만 가지고 뭘 알 수는 없고 우리가 들여오는 돈에 리보(런던은행간 금리) 플러스 알파(가산금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어느 것도 좋지 못하다.
프레시안: 정부와 해외 시각이 엇갈리는 것이 더 불안을 증폭시킨다.
이한구: 정부는 기본적으로 불안을 내비치는 것을 싫어하고 국민들이 안심하도록 좋게 해석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 돈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선 부정적이랄까 비관적인 관점에서 보려는 성향이 있다. 원래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인데, 요새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상황이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급속히 변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자산이 부채보다 많다', 정부는 이렇게 좋게 해석을 하는데 자산이라는 게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게 문제다. 위기 땐 자산가치가 그대로 있지 않는다. 쉽게 말해 빚은 그대로 있는데 주식이나 집값 같은 재산 가치는 자꾸 떨어진다.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 이건 팔 수도 없는 재산이다. 미국 국채를 팔면 시장에 '저기 이상하구나' 하는 소문이 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미국 국채도 실제 값어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한국 상황이 나빠지면 그 보유 자산이 향후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까지 감안해서 평가한다. 그리고 해외 금융시장은 소위 끼리끼리 노는 게 있다. 자기들끼리 정보교환도 하고. 그럴때 평소 우호적이지 못했던 나라나 그룹들에 대해 애를 먹인다. 나쁜 소문이 우세해진다는 말이다.
프레시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0.75%p인하는 어떻게 봐야 하나? 안 그래도 시중은행들이 보유자산에 비해 과다한 대출을 해서 문제인데, 금리인하가 과대출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이한구: 기준 금리와 유동성 공급은 다른 이야기다. 기준금리 인하는 은행의 비용을 낮춰주는 것이다. 기준 금리인하로 예금 금리, CD(양도성예금증서) 발행 금리도 낮추려는 여유 생긴다. 그러면 시중에 금리인하 압박이 가해지는 것이다. 유동성 문제는 좀 다른 이야긴데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주면서 '대출도 많이 해주라' 이러면 위험상황이 발생한다.
신용 있는 곳에 대출을 해줘야 은행의 신용도가 유지된다. 시원찮은데다 돈을 풀면 일정 기간 뒤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지금도 외국에선 (은행들이) 지나치게 돈을 풀어서 부실해졌다고 보고 돈 안 빌려주는데. 시원찮은데다가 돈을 돌리라는 조건으로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건 위험하다.
은행들이 적절하게 잘해야 한다. 그리고 부실한데다가 돈 대주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도 위험한 짓이다. 물론 사회에선 다 어려우니까 '이자율 낮추라. 더 빌려줘라 건설업체도 구해라. 키코도 구해라' 이러지만 이게 지나치면 은행 신용이 위험해진다. 외국으로부터 돈 빌리는 게 더 어려워진다.
외환위기 직전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1997년에 진로, 한보, 기아 등에 계속 돈 대주라고 압박을 가하고 '부도내선 안 된다' 이렇게 몇 달을 끌다가 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한국이 이상하다'고 주목을 받은 것이다.
프레시안: 기획재정부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량신흥국가들을 대상으로 마련 중인 통화스왑 방식의 자금 지원 신청 여부를 두고 '왔다 갔다'해서 시장의 불신을 자초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이한구 : 그건 아직 만들어지도 않은 것이고 거기 들어가느냐 마느냐가가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IMF라는 단어에 대한 일반의 느낌이 만든 해프닝이라고 본다. 하여튼 지금은 들어갈 이유도 없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리보에 가산금리 많이 붙여서 돈 빌리고 이런 식 진행은 저쪽(외국인들) 테스트에 걸려드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무슨 조치를 취한다고 할 때, 꼭 선제적으로 압도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반드시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약간 페이스를 늦춰서 슬슬 따라가는 게 낫다. 마라톤 잘 하는 사람은 항상 뒤에서 따라가다가 코너나 언덕배기에서 치고 나가지 않나.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국제금융조직들하고 머리싸움을 하면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이 대통령이 ASEM 계기 방중에서 합의하고 온 한중일 공동펀드의 효과는 어떨까, 물론 단기적으론 별 영향을 못 미치겠지만 중장기적으론 효과가 있을까?
이한구 : 그건 옛날에 합의했던 것인데 지금까지 진척이 안됐다. 진척이 안 된 이유는 다 아는데 그걸 덜컥 발표해버리니까 바깥에선 '저기는 되게 급한 모양이다' 할 수도 있다. 이건 앞으로 투기세력이 장난칠 때 공동대처하겠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유동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거품이 터진 것이다"
프레시안: 경제팀 교체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한 조치라고 볼 수 있는데, 또 다른 신뢰회복방안이 뭐가 있을까?
이한구: 위기극복과 관련해서만 말씀드리자면 분명히 인식해야할 것이 지금은 유동성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거품이 터진 것이다. 거품이 터졌다는 말은 유동성 과잉이란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유동성이 아니라 신용, 신뢰의 부족이다. 특히 은행의 신용회복을 위한 액션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외환수지, '저기는 달러가 모자라는 동네다'는 인식을 줘선 안 된다. 국제수지를 흑자로 만드는 액션이 나와야 한다. 말로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사람이 말하는게 아니라 돈이 말한다.
좀 있으면 (금융에서부터 시작해) 기업으로 부실이 갈 건데 그 때도 대처를 잘해야 한다. 기업이 경쟁력을 찾도록 돕는 것, 규제완화하고 기업 세금과 준조세를 줄이고 공공개혁을 해서 지금 상황보다 '미래엔 더 나아지겠다'고 기대를 높이는 것이 신뢰회복이다. 그리고 지금 공기업들이 임금동결하고 나서는 건 참 잘하는 일이다. 재정도 실용성 떨어지는 예산은 (예결특위에서) 잘라버릴 거다.
"재정적자 늘리면 경제가 살아나나"
프레시안: 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5.0% 정도로 예상해 예산안을 편성해놓았지만 내년 성장률 추정치는 3%대 중후반에 불과하다.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이한구: 정부의 세수전망이 틀렸다는 것은 일단 팩트다. 논쟁거리도 아니다. 성장률 전망 수치의 차이가 거의 2%인데 그러면 3, 4조 원의 세수가 낮아진다. 그러면 세출에서 조정을 할 것인지, 재정적자를 늘릴 것인지, 다른 감세를 덜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보면 실물경제가 나빠지니까 정부는 '재정적자 늘릴 각오하자.. 세출을 5조 원 더 늘리고 세입을 좀 더 줄이자' 이렇게 나오고 있다. 지금 예산도 균형예산이 아니라 10조 정도 적자인데 여기다가 10조 원이 또 늘어나면 총 20조 원 재정적자다. 209조 원 예산에 20조 원 적자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부채도 당연하게 문제로 따라온다. 지금 정부가 제공하는 숫자만 믿어도 20조 원이 늘어나는데 여기 재정적자 10조 원을 추가하면 30 조 원이 된다. 한해 이렇게 빚이 느는 건 사상 최고다. 이걸 꼭 해야 되는가? 그리고 이렇게 하고 나면 경제는 살아나는가. 이게 문제 아니겠나
프레시안: 그래도 어쨌든 재정확대에 대해선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여론의 공감대가 확인된 듯도 싶다. 하지만 감세안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리는데.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이나 정부 쪽에선 예년의 경우 예측보다 세수가 높았다는 점, 세계잉여금 등을 거론하며 13조 원 원안대로 감세해도 구멍이 안 날거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한구: 세수가 예측보다 많이 들어온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인데 걷어봐야 알지 그걸 누가 아나?그리고 경기 하강 국면에선 예측보다 덜 들어오는 것이 정상이다. 게다가 세계잉여금 이야기는 위험하다. 이건 세수가 많이 들어와서 생기는 것만 있는게 아니라 적자 국채 발행으로 생기는 수입도 세계잉여금으로 들어간다.
프레시안: 비상시, 예컨대 제2금융권 위기 등을 대비해서 재정을 아껴둬야 된다. 쉽게 말해 딴 주머니를 챙겨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한구: 맞는 말이다. 재정이야말로 최후의 보루인데 여유가 있어야 한다. 지금 달달 끌어서 다 쓰고 나면, 세계 경기가 왕창 나빠질 때 기업들이 넘어가는건 그렇다고 쳐도 은행이 넘어가게 둘 순 없는 것 아닌가? 그 중간 보루가 제2금융권인데 (위기에 대비하지 않고) 지금 달달 긁어서 다 쓰는 것이 맞는 것인가? 지금 다들 경기 침체가 2, 3년은 갈 것으로 보고 있지 않나. 마라톤이다. 이제 마라톤 시작도 안 했는데 초기에 100미터 달리기 하듯 하면 뒤에 감당이 안 된다.
프레시안: 종부세, 상속세 완화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것이 지론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현행 가구별 합산이 위헌판결이 나면 어떻게 되나.
이한구 : 헌재 판결이 큰 변수다. 지금 보면 상속세하고 종부세를 감세하지 않으면 (추가 세수가) 1조8000억 원 정도가 된다. 거기다가 세출 중에서 급하지 않은 것, 공기업이나 공공부문 지원 같은 것을 좀 없애애 한다. 거긴 거기대로 개혁하면 되니까, 오히려 여유가 생기면 일자리 만들고 중소기업 지원하는 데 지원하자는 이야기다.
"미분양, 재정 투입하느니 세금 깎아줘 시장이 해결하게 만들자"
프레시안: 1997년엔 대기업발 위기였다면 지금은 건설업체 위기론이다. 정부에서 a, b, c, d 등급을 나눠서 d 등급은 지원을 안 하겠다지만 실제 부실은 더 심각하고 등급을 나눠서 오히려 부실을 덮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한구: 참 그게 딜레마다. 정부로선 그걸 다 살렸으면 좋겠다 싶을 것이고 사회에서도 그렇게 원하는데 눈치없이 마구잡이로 가면 결국 다 위험해진다.
프레시안: 버블세븐 지역부터 아파트값이 떨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자산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면서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 있는데 한국 경제에서 건설산업의 과도한 비중, 부동산 거품 등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게 거품이 꺼지도록 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한구: 거품이 너무 커서 미국 사태가 없어도 어차피 부동산 거품은 꺼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젠 건설사가 연쇄 부도나게 됐고, 지금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이 80조 원이라는데 이제 금융기관 쪽으로 불이 붙을 것이다.
시장이 해결토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동결된 상황이다. 거품은 실컷 만들어 놓고 급하니까 거래를 못하도록 규제를 만들어놓은 것, 이건 정말 노무현 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보유세를 왕창 올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양도세를 낮춰야 물건을 팔고 나갈 것 아닌가. 지금은 부동산 거래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내 주장 중의 하나는 다주택 보유자 중과세 없애라는거다. 이게 국민정서에는 안 맞겠지만 논리적으로 한 번 보자. 다주택 중과는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양도차액으로 과세하면 된다. 한 채라도 차액을 왕창 남기면 많이 과세하고 다섯 채라도 조그만 것이면 적게 과세해야 한다. 금액으로 평등하게 하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양도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경기 문제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는 측면도 강한 것 아닌가.
이한구: 다주택 양도세 중과세 완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번 보자. 지금 주택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급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양도세를 낮추면 그 사람은 가벼운 마음으로 판다. 그리고 민간에 현금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IMF 외환위기 경험이 있어서 지금 내려갈 때 사면 돈 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 판단에 맡기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거래가 일어난다.
지방 미분양 문제도 마찬가지다. 1가구 2주택, 3주택 갖고 있어도 양도세 중과가 안 된다면 살 사람 생긴다. 민간에서 못 사게, 안 팔리게 해놓고 정부가 미분양을 대신 사주겠다는건 말이 안 된다. 지방은 좀 세금도 풀어주고, 그런 세금은 깍아줘도 된다. 정부 돈을 집어넣을 바에야 세금을 깎아줘서 민간이 해결케 하자는 것이다.
지금 미분양이 20만 채가 넘는데 정부는 1만 채 정도 사준다 이야기한다. 누구는 사주고 누구는 안 사주고, 건설업체 내에도 차별이 생기는데 누가 수긍하나? 또 효과가 안 나면 악영향이 제2금융권으로 바로 간다. 그리고 지금 부동산 펀드도 많이 잠겨 있는데 개인 뿐 아니라 금융기관도 많이 들어가 있다. 아마 기업들도 많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부의 미분양 매입은 효과도 없을 뿐더러 또 그 1만 채를 사서 어디다가 쓰나? 임대사업 하나? 주택보증공사 돈이 들어간다는데 그 돈은 아파트 분양 후 부도가 나면 입주자들한테 돌려줄 돈 보증하는 곳이다. 막상 일 생기면 어떻게 하나?
건설업체를 돕더라도, 스스로 상당 부분 손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다른 분야로 부실이 이전되지 않는다.
은행 지원도 그렇다. 은행채 매입부터 하는 게 아니다. 은행채부터 매입하면 대외적으로 한국 은행들의 이미지가 팍 떨어지게 된다.
"토목공사할 바에야 국토 대청소가 낫다"
프레시안: 건설업 지원, 경기부양의 방안으로 경인운하, 4대강 유역 정비 등 대규모 토목공사 이야기도 들린다.
이한구: 말이 안 된다. 큰일 난다. 위기에서 재정사업을 하면 무조건 경기가 좋아진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예전엔 곡괭이로 다 공사를 하니까 인력투입이 컸고 건설업을 키우면 일자리 창출이 돼서 경기가 회복된 것이다. 건설사업 자체로 회복된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로 회복됐다. 그런데 지금은 일자리 창출과 별 관련이 없다. 돈만 있으면 일자리 만들데는 오히려 딴 곳에 많다. 서비스업 같은 쪽.
프레시안: IMF 직후 김대중 정부는 공공근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한구: 토목공사할 바에야 공공근로가 낫다. 이건 어차피 계획도 있던 것이지만, 하천이나 해안에 인력 투입해 쓰레기 치우는 것 만해도 몇 조원이 들어간다. 환경도 좋아지고, 관광사업 좋아지고, 물 깨끗해지고 얼마나 생산적인가? 차도 안 다니는데다가 쓸데없이 도로를 만들면 일 끝난 후에도 돈이 들어간다.
(재정 투입 사업으로) 일이 끝난 뒤에 전체 생산성에 기여를 하고 그것이 세수 증대에 반영되는 것, 이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그런 사업을 위해선 지금 적자를 봐도 된다.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토목사업은 그 논리 구조가 중간에서 끊어지는 사업이다. 보통 때 수요도 없는 것이 갑자기 튀어나와 갑자기 몇 조 원 들여 공사한다? 이런데서 꼭 부작용이 생긴다. 그럴 바에야 그냥 돈 나눠주는 게 부대비용도 안 들어가서 더 낫다.
이런 것이 국제수지에도 어떻게 영향을 줄지 잘 봐야 한다. 다른 나라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만 경기진작 열심히 하면 우리 세금으로 주변국 좋은 일 시킨다. 지금은 국내 물가가 조금만 올라가면 대체 수입품이 막 들어오니까 곧바로 국제수지 적자로 연결된다. 국민세금 실컷 써서 외국만 고용증대 시키게 된다.
프레시안: 공기업 민영화 프로그램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일시 중단 시켜야 되나?
이한구: 그건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사갈 곳이 없다. 그래도 대놓고 '안 한다'고 할 일은 아니고 팔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공기업은 민영화 이전에 개혁을 해야 한다. 그 자체가 생산성을 올리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민영화라는 것이 일을 딱 스톱하고 팔아치우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꾸준히 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지금 팔면 당연히 헐값 매각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경제가 좋아져야 판다는 식으로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래도 답은 규제완화와 감세다"
프레시안: 요즘 경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권에서 '잃어버린 10년론'은 쑥 들어갔다. 지난 10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한구: 잃어버린 10년은 확실하다. 좌파 스타일로 경제 운영하면 선진국 못 된다. 그 기조는 유지를 해야 한다. 대전제다. 선진국 가는 길하고 위기극복을 하는 길의 방향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옛날식 관치경제로 회귀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그런 걸 좋아한다. 위기 때마다 (재정을 늘려서) 쉽게 쉽게 넘어가고 그 부채를 국민경제에 전가시켜놓는데, 그러면 또 위기를 당한다.
프레시안: 현 시점에서도 규제완화와 감세라는 대전제는 여전히 맞는 것인가? 세계적 금융위기에서 신자유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반성하는데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만 이를 고집한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청와대는 '대학생이 반성한다고 초등학생이 공부 안해야 하냐'고 맞서긴 하지만.
이한구: 그건 대통령 말씀이 옳다. 지금 어렵다고 편한 길로 가면 안 된다. 선진국으로 가야되고 선진국이 되려면 국제경쟁력 올려야 하는 것인데 경쟁력을 올리려면 지금보다 규제완화와 감세를 해서 민간부분을 키워야 한다. 감세의 뜻은 재원배분에서 정부 비중을 낮추고 민간부문은 높인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 철학이다. 물론 공공부문은 있어야 하지만 개혁을 해야 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도록 변신해야 한다. 이전처럼 있는 재원을 여기저기 갈라 쓰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프레시안: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관치경제라는 비판이 있다.
이한구: 아주 다급하면 정부가 끼어들지만 어지간한 건 민간에서 해결하도록 해야한다. 그래도 해결이 안될 때 정부가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초장부터 '외환시장, 주식시장에 끼어들지 마라'고 한 이유가 그거다.
(현 경제팀이) 저쪽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고 옛날 식으로 (외환, 주식시장에) 개입해서 다 실패했다. 큰 세력이 들어와버리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관치회귀'는 안 될 말"
프레시안: 불가피한 관치금융시대가 도래하니까 '관치 전문가' 격인 일부 전직 경제관료들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
이한구: 바로 그게 위험하다. 시스템을 민간주도로 철저하게 정비하는 것을 전제로 위기를 수습해야 하는데 관치경제에 젖어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위기수습을 하려고 하면 수습도 안 되고 위기 뒤에 또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장경제 중심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을 펼치면서 경쟁력 올리고 신뢰를 올릴 수 있는 경제팀을 꾸려야 한다.
물론 그렇게 좋은 팀을 꾸려도 바깥의 압력이 굉장할 것이다. '다 죽게 생겼는데 뭐 하고 있냐'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지금 한은도 마찬가지 아닌가. 은행채 사주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말 웃기는 행동이다.
프레시안: 그러면 다음 경제팀은 어떻게 꾸려야 되나 요즘 보수진영은 물론 여권에서도 'DJ는 경제팀에 간섭을 안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CEO출신인 이 대통령은 간섭을 하고 싶어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한구: 위기일수록 국민들이 조바심 내게 돼있고 정치권도 압박을 가하게 되면 자꾸 과격한 대책이 나온다. 그러면 전문적 행동을 해야 될 정부가 전문성을 발휘 못 할 위험성이 있다. 압박을 가하는 정치권엔 청와대도 당연히 포함된다.
특히 다른 정치권은 정부 옆에 있다면 청와대는 정부 위에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개별적으로 지휘하기 시작하면 사표내지 않는 이상 청와대 압력에 아무도 못 견딘다. 한 팀이 위임을 받아서 해야 그나마 전문성을 살리고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DJ 정부 때 외환위기를 그나마 넘어간 것도 IMF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면 옆에서 뭐라고 압력을 넣으면 IMF핑계를 대고 넘어갔다는 이야기다. 물론 IMF에서 안 시키는 것도 곁들여 해서 문제가 되긴 했지만.
"종부세 완화를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
프레시안: 최근 한 주간지의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차기 기획재정부 장관 1순위로 꼽혔고 각광받는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도 당신을 위기관리 적임자로 지목했다. 권유가 들어오면 입각할 의사가 있나?
이한구: (손사래를 치며) 난 재정 부실을 막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사람이다. 그런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
프레시안: 경제전문가이지도 하지만 여당 의원인데, 경제적 신용 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국민 신뢰회복을 할 수 있는 방안은 뭐가 있을까
이한구: 국민들 마음 푸는 것은 경제논리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해치고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는 건 나중에 하자는 것이다. 지금 종부세, 상속세 완화를 반대하는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비경제적인 쟁점은 이제 좀 그만 신경써야 한다. 공공부문,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할 것도 있지 않겠나. 기업은 투명경영, 환경경영을 확고히 해야 하고. 그리고 대기업 노조들도 이번엔 좀 사회에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디에서나 기득권 세력이 문제인데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이 어떻게 할지 재점검해야 할 때다. 어차피 선진국이 되려면 넘어서야 하는 것들인데, 오히려 이번 위기가 이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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