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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 또 폭락…넋 잃은 개인투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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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폭락, 또 폭락…넋 잃은 개인투자자들

[위기의 한국경제, 현장을 가다 ⑦] '바닥' 안 보이는 증시

서울시 월계동에 사는 주부 김모 씨(45)는 3년 전 남편이 마련해 준 1억 원을 모아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직접 HTS(홈트레이딩 시스템)를 통해 매매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증권사 지점 영업사원이 추천해주는 주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놓는 게 다였다.

주식 상승기에는 제법 쏠쏠한 수익을 내기도 했다. 영업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걸려와 "OO종목이 지금 좋으니 그쪽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며칠 지나 받은 보고서에 찍힌 수익률을 볼 때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걸 안 하나' 싶었다.

하지만 현재 김 씨의 평가액은 23일 현재 58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한 기계업체 주식과 대형 운수업체 주식은 최고점에 올랐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고 한 식품업체 주식에서는 70% 손실을 입었다. 그나마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덕분에 선방한 셈이다. 김 씨는 필리핀에서 골프 유학 중인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출국한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다.

하락장에 '패닉'에 빠진 개미들

미국 월가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주식시장에도 찬물을 끼얹으면서 주식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각종 인터넷포털에 개설된 주식관련 카페에는 손실을 입은 개인투자자들의 하소연이 넘쳐난다. 팍스넷 등 주식관련 포털이나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등에는 절망을 비유한 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온다.

김 씨의 경우는 그나마 타격이 덜한 편일지도 모른다. 엄청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하락장에 속출하고 있다. 3년차 직장인 최진우(가명, 30) 씨가 그렇다.

최 씨는 2년 전 주식을 처음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한번 뛰어들어보자'는 생각까지 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면서부터였다. 그는 마이너스통장 잔고 4000만 원을 탈탈 털어 주식에 투자했다.

"주식 거래를 하면 돈이 돈같이 안 보여요. 이건 그냥 사이버머니(가상 돈)에 불과하거든요. 순식간에 몇 백만 원이 올랐다 내리면서 통장잔고에 표시되는 걸 보면 어느 순간 현금 감각이 사라져요."

처음에는 잔재미도 봤다. 지난 해 상승장 때는 증권주에 투자해 큰 폭의 이익을 남기기도 했다. 회사 화장실에서 남몰래 휴대폰 단말기로 자신이 투자한 종목 시세변화를 확인하며 '결혼 준비는 문제 없겠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점차 손실 폭이 커져갔다. 큰 폭의 수익을 바라고 뛰어든 작전주 주가는 모조리 휴지조각이 됐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부모님에게서도 2000만 원을 더 빌려다 주식에 투자했다. 아무리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봐도, 그가 투자한 주식에서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는 일은 없었다. 총 6000만 원이었던 투자금액의 평가액은 현재 15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모두 부채다.

"연봉이 적지 않은 편이죠. 그러면 뭐합니까?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모아놓은 돈이 단 한 푼도 없습니다. 지금은 너무 큰 손실을 봐서 빠져 나올래야 나올 수도 없습니다. 손실분을 어떻게든 보상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있거든요. 주식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최 씨처럼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한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다. 22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 이석현 의원(민주당)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주식매입자금 대출액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3185억 원에 달해 지난해 말 2961억 원을 크게 웃돌았다. 대대적인 주가하락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대출원금 손실 우려마저 커질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의 손실이 금융기관의 자산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주가하락에 따른 시스템 위험 요인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레버리지 효과(빚을 내서 원금과 함께 투자해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효과)를 노리고 과도한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날 전망이다. 주식시장이 좀처럼 반등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3일 현재 코스피지수는 1000선대까지 밀려났지만 여전히 바닥권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시가총액은 3년 만에 600조 원 밑으로 줄어들었다.

'안정적'이라던 펀드 수익률이 -80%?

주식은 물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낸다는 펀드 상당수도 이미 큰 규모의 손실을 내 사회적 논란이 되는 형편이다.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에 총 140여억 원을 투자한 160명의 투자자는 판매사인 우리은행을 상대로 12~1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판매사 직원이 펀드의 원금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확정수익이 나오는 것처럼 과장광고를 했다는 이유다. 이들 중 일부는 우리은행 본점을 찾아가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정철 우리CS자산운용 대표는 지난 16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판매사인 우리은행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손해를 배상할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우리파워인컴펀드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패니매 등 미국 금융회사 일부를 포함시켰으며, 1호와 2호는 각각 8월 말 기준으로 70%, 80%가 넘는 누적 손실율을 기록했다. 이 상품은 지금까지 총 2300여명에게 1700억 원어치 이상 팔렸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으로 순자산액 100억 원, 설정기간 1년 이상인 해외주식형펀드 246개 중 연간 손실율이 50%를 넘은 펀드는 89개로 전체 펀드의 36%를 차지했다. 최근 중국 집중 투자로 논란이 되는 미래에셋증권의 인사이트펀드는 아직 설정 1년이 되진 않았지만 이미 설정액의 절반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지난 16일 여의도 한 증권사 객장을 찾은 투자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온통 새파랗게 도배된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자산조정도 변동성 줄어든 다음에야…

지난 2년간 열풍처럼 불어온 투자바람을 타고 개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투자자로 변신했다. 과감한 사람들은 직접 주가지수와 승부를 걸었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적금 대신 펀드를 재테크의 기본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

이 바람은 하락장에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주가가 맥을 못 추는 지금도 개인의 주식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볼 수 있는 고객예탁금은 지난 16일 기준으로 9조6029억 원을 기록해 지난 달 12일보다 1조 원 가까이 늘어났다. 하락장을 저가매수의 기회로 보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하지만 변동성이 이처럼 큰 장에서 함부로 자산투자에 나서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자산조정에 나서더라도 어느 정도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을 때로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신상근 삼성증권 자산배분전략파트장은 "지금은 현재 포지션을 그대로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변동성이 너무 큰 장세인 데다 주식뿐만 아니라 다른 자산시장도 동반하락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일단은 변동성이 잦아드는 시점을 확인한 후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아무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결국 뻔한 대답이긴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장기투자 원칙을 지켜야 할 때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 보는 손절매 시기는 원금의 10% 손실 정도가 났을 때다. 이 정도 손실은 특판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옮기더라도 수년 내에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40~50%씩 손실을 낸 종목이 속출하는 상황에서는 안전자산으로 옮긴다고 원금을 회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신 파트장은 "종목만 괜찮다면 하락폭이 큰 만큼 반등시 탄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결국 장기투자 원칙을 지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마냥 기다리는 게 현명할까?

그런데 반등을 기다리고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도 확신하기는 어렵다. 미래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자한 종목이 언제 다시 반등할지를 가늠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 주가가 오른다손 치더라도 그 '장기'가 1년이 될지 20년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반등한다'는 말은 주가가 1200선까지 밀려나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장을 뒤덮었을 때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했다.

실제 각 인터넷포털 주식카페에서도 "손발을 자르는 고통이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빠져나가라.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 꽤 많이 등장한다. 투자용 자금만을 자산시장에 집어넣은 거액자산가야 주식투자의 금과옥조를 실천할 수 있지만 주식, 펀드 등 투자상품을 재테크로 삼아 '올인'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을 터다.

역사적으로도 큰 폭의 주가하락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의 반등을 필요로 했다. 한국에서 외환위기는 1997년 말에 터졌지만 주가가 60% 넘게 빠지며 바닥에 다다른 건 1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외환위기 여파에 따른 실물경제 부문 손실이 주식시장에 추가로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공황 당시에도 1929년 10월 24일 주가 폭락 뒤 한동안은 시장이 회복기미를 보였다. 경제가 생각보다 잘 버텨내자 후버 대통령은 1930년 3월 "불안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하지만 정작 진짜 위기는 연설이 끝나고서야 터졌다. 그 뒤 2년간 주가는 바닥을 향해 내리달렸다. 이렇게 긴 기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음이 자명하다.

지금의 국제 경제 위기가 과연 대공황과 비슷한 여파를 남길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도 말하기 어렵다. 개인투자자들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규모 손실을 확정하고서라도 시장을 빠져나가느냐 마느냐며, 이는 결국 개인 스스로가 선택해야할 문제다.

교훈은 남는다. 여윳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개인 운용자금과 장기투자자금을 엄격히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윳돈 중 일부는 언젠가 꼭 필요할 때가 온다. 운용자금을 투자에 쓰는 것도 지금과 같은 하락장에는 무리한 투자였음이 드러났다.

신 파트장은 "예를 들어 여윳돈이 1억 원 정도 있다고 하자. 이 중 얼마는 앞으로 1년 내에 결혼자금으로 써야할 돈이다. 그렇다면 이 돈은 투자용 자금이 아니라 운용자금이다. '투자해서 모은 돈으로 결혼자금을 장만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투자는 순수하게 레버리지를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을 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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