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마비되니 모두의 표정에 생기가 사라졌다. 거액의 담보대출을 끼고 집을 산 사람은 말 그대로 공황에 빠졌다. 급하게 집을 처분해야 하는 이는 매입가격 이하로 집을 내놔야 하니 죽을 지경이다. 전세 사는 사람들도 괜스레 불안하다.
당황한 정부는 부랴부랴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아파트가격 달래기에 들어갔다. 아파트 거품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꺼져서는 안 된다는 한국식 '아파트 고전경제학'의 재림이다.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거품을 살려 경기 진작에 나서야 할까? 아니면 지금도 실수요자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인 집값이 더 떨어지도록 해야 할까? 지금의 하락 추세에서 불거질 진통은 어떻게 감수해야 하나?
"지금 이 동네 아파트 사면 이상한 사람이지"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쉽게 현 부동산 시장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아파트가 얼마에 거래되는지, 몇 건이나 거래가 성사됐는지 등 자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지금 이곳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에서는 3분기에 총 9건의 거래가 성사됐다. 그런데 50㎡와 51㎡는 8월 들어 단 한 건도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다. 그나마 이것도 과거 정보다. 추석 후 현장의 체감온도는 더 내려갔다.
"지금 이 동네 아파트를 사면 이상한 사람이지. (아무도) 안 사. (당신도) 사지 마."
개포 주공5단지 인근 ㅎ부동산중개업소 안모 대표는 딱 잘라 말했다. 강남아파트가 다 투자상품인데 가격 추가하락이 불 보듯 뻔한 아파트를 누가 사겠냐는 말이다. 이곳 아파트 가격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지난해 말에 비해 1억 원 이상 빠졌다. 23평형의 경우 지난해 7억 원에 거래되던 게 지금은 5억7000만 원에 내놔도 매수 세력이 붙질 않는다.
개포동에 위치한 아파트는 소형평수가 상대적으로 많아 강남에서는 가장 다양한 계층이 입주해 있다. 그래도 고급 아파트에 비해 실수요가 더 높을 소형아파트에는 매수세가 있지 않을까?
"실수요자라고 버틸 재간이 있나. 여기 들어온 사람들 투자자든 실수요자든 다 규제가 그렇게 강할 때도 담보대출 끼고 수억 원 빌려 들어온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 이제 다들 곡소리 해. '세월아 가라'하고 빌기만 하지 움직이질 못해. 처분해봤자 살 때 가격보다 더 낮으니 그냥 가만히 앉아서 넋 나간 듯이 있는 거야."
"시세? 그런 게 어딨어"
강남이 주저앉는데 분당이라고 버틸 재간이 없다. 강남전철 개통을 눈앞에 둔데다 인근에 샘물교회를 끼고 상권까지 발달해 분당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동네로 불리는 정자1동 분위기 역시 침울했다.
이곳 상록마을 우성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말보다 30% 이상 떨어졌다. 판교붐을 타고 급등한 만큼 하락폭도 컸다. 85㎡는 작년 말 8억3000만 원까지 오른 가격이 7억4000만 원 밑으로 내려갔다. 6억3000만 원에 거래되던 70㎡는 최근 나온 급매물 가격이 5억3000만 원이었다. 탄천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저층(3층)의 경우 5억 원에도 나온다. 그나마 정자1동은 교통이 상대적으로 좋아 덜 빠진 편이라는 게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의 설명이었다.
부동산 전문포털인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버블세븐지역 집값은 올 들어 지난 8일 현재까지 평균 2463만 원 하락했다. 1월 초 8억1806만 원이던 평균매매가가 지금은 7억9343만 원이다.
평균이 그렇다는 얘기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 곳이 부지기수다. '사교육 일번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112㎡의 경우 지난 2006년 말 14억 원까지 나가던 매매가가 11억 원대로 내려갔다. 10억 원 밑으로 빠지는 법이 없던 101㎡는 지난 8일 경매에서 8억 원 선으로 주저앉았다.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도곡동 타워팰리스 224㎡는 지난 7월 경매에서 두 번이나 유찰된 끝에 감정가 대비 69%의 금액인 19억3600만 원에 낙찰되는 '수모'를 겪었다.
부동산시장 한파는 올해 들어 무서운 기세를 보이던 강북권의 오름세도 꺾어놓았다. 강남을 대체하는 사교육 시장으로 떠오르며 '강북의 대치동'으로 불리던 노원구 중계동의 부동산중개업소는 속된 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중계동 ㄱ아파트 거래를 주로 하는 정모 중개사는 "시세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매매가 안 되는 데 어떻게 시세가 있을 수 있냐. 올해 하반기 들어 7월에 딱 한 건 거래가 있었다"며 "부동산 8년 만에 이런 침체는 처음"이라고 혀를 찼다.
시장이 얼어붙은데다 대출금리는 1년 전보다 2%포인트가 더 올랐다. 2억 원을 빌린다고 가정하면 1년 사이에 이자부담만 400만 원이 늘어난 셈이다. 담보대출이 줄어드는 것도, 매수세가 실종되는 것도 당연하다.
모 은행 도곡지점에서 일하는 이모 대리는 "예전에는 아파트 투자 목적으로 대출을 받으려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해를 10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1이다. 담보대출을 받아가는 이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세계적 경기침체가 부동산 시장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여전히 텅 빈 집…고분양가가 원인
그런데 정말 경기침체, 대출금리 부담 정도만으로 지금의 매매 실종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실수요자가 보유한 현금만으로, 아니면 대출을 껴서도 집을 사기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집값이 높은 건 아닐까?
지방에서 시작해 수도권까지 치고 올라온 미분양 사태의 주요 원인은 턱없이 비싼 아파트 가격이다. 대외변수를 모두 제거한다면 아파트 미분양사태는 현재 가격이 실수요자가 아무리 돈을 끌어 모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해 분양한 경남 김해시 율하지구 5블럭의 경우 공급 주택의 절반 가까이가 미분양되는 사태를 빚었다. 8월 말 기준으로 대구광역시의 미분양 아파트는 2만1676가구에 달한다. 이미 미분양 사태는 김포 등 수도권을 넘어 서울에까지 번지고 있다. 공식 집계된 미분양 가구 수는 약 15만 가구며, 업계에서는 25만 가구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의 경우 GS건설이 마포구 합정동에 공급한 서교 자이 웨스트벨리가 1순위 분양 시 538가구 중 고작 23가구 신청에 성공하는 결과를 얻었다. 실패 원인은 3.3㎡당 최고 3515만 원(평균 2800만 원)에 이르는 높은 분양가 탓이었다. 이 정도면 강남에서나 가능한 분양가다.
경쟁업체의 분양 실패를 지켜본 삼성물산은 14일부터 분양을 시작한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의 분양가를 인근 반포 자이보다 3.3㎡당 최대 70만 원 낮게 책정했다. 더 이상 건설업체의 고급화를 통한 분양가 올리기가 시장에 먹히지 않는 현실을 인식한 셈이다.
'아파트에 투자한다'는 개념을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이런 업계의 조치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여전히 집값은 터무니없이 높다. 입주율이 낮아 화제가 됐던 은평뉴타운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SH공사에 따르면 은평뉴타운 1지구의 입주율은 60%가 넘을 정도로 꽤 준수하다. 하지만 원주민과 서민층을 위해 배정된 임대아파트는 사정이 다르다. 1지구 전체 아파트의 1/4에 달하는 국민임대아파트(1029가구)의 입주율은 20%대에 불과하다. 교통이 불편하고 상가가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서민층이 떠안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임대료 때문이다.
은평뉴타운에 위치한 ㅍ중개업소 김현식(가명) 대표는 "임대주택 미분양 때문에 전체 입주율이 낮다. 이 때문에 800가구는 추가 분양에 들어간다"며 "임대아파트에 들어오기 위해 마련해야 하는 보증금만 최소 2500만 원 이상 필요한데 원주민 중 이를 감당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여기다 관리비와 임대료까지 따져봐라. 돈 없는 사람은 못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주택형태는 SH공사가 대대적으로 선전한 장기전세아파트 '시프트'다. 시프트의 경우 전체 670 가구의 90%가 입주 완료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상대적으로 임대기간이 길다는 프리미엄이 반영된 덕분이다. 하지만 시프트에 들어오는 이들이라고 모두 편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문동 임대아파트에 살다 이번 달 시프트 59㎡형 추가 청약에 성공한 주부 김모 씨(37)는 "전세대출금리가 8.9%나 했지만 앞으로 두 자리 수가 될 것 같아 큰 맘 먹고 1억 원 대출을 받았다. 여기 전세가도 생각보다는 비쌌지만 발판으로 마련한다는 생각에 무리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하지만 앞으로 부담이 걱정인 듯 했다. 두 아이의 교육비 등을 감안하면 앞날이 캄캄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한 달에 이자만 60~70만 원이 나간다. 여기에 아이들 교육비까지 생각하면 정말 걱정이다. 남편은 돈을 더 벌기 위해 두바이로 나갔다"며 "평생 빚 갚다 골로 가는 게 서민의 삶"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현 정부가 야심찬 계획작품으로 내놓은 신혼부부용 주택은 과연 어떨까?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에는 서울에서는 최대 규모인 90가구의 신혼부부용 주택(87㎡)이 포함됐으나 청약건수는 단 두 건이었다. 계약금만 7000만 원에 전체 분양가가 7억 원대에 달하는 집을 연소득 4410만 원 이하인 맞벌이부부가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아파트값, 더 내려가야 한다"
실수요자들에게 지금 아파트 가격에는 여전히 거품이 끼어있다. 이는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지난 7월 28일 신영증권이 내 화제가 됐던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깨지는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 가격의 22.8%가 거품이다.
농협경제연구소 역시 8월에 발표한 <가계 주택수요 분석을 통한 향후 주택시장 전망>을 통해 "미분양 적체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할 경우 25% 내외의 거품조정이 불가피하며 주택가격의 추세적 하향 조정은 내년 2/4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품이 이 정도로 조정된다면 현재 2억7000만 원 수준인 평균 주택가격은 2억 원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기임에도 거품이 꺼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그렇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끼어있었던 거품이 자연스럽게 꺼지는 것 자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부동산에 경제력을 '올인'하는 정서"라고 지적했다.
변 교수는 현재 거품 소멸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장기적으로는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산업의 구조조정을 이끌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최근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는 강남권의 가격 '정상화' 과정에 안달하지 말고 연착륙이 이뤄지도록 기존 세제 정책이나 개발이익 환수 정책, 투명화 정책 등을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도 "실수요자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르는 아파트 가격이 정상화되는 게 멀리 보면 한국 경제에 더 큰 이익"이라고 말했다.
MB정부, 거품은 키우면서 집값은 떨어뜨리겠다? 이명박 정부는 전문가들의 지적과는 정반대되는 거품부양 정책을 쓰고 있다. 정확하게는 거품을 부양시키면서도 집값을 떨어뜨리려는 '이상한' 정책을 펴고 있다. 지방 미분양주택 매입, 종부세 등 각종 세제 완화, 대대적 규제완화 등 건설경기 부양책을 대대적으로 펼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9.19 주택공급정책'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연간 50만 가구씩 모두 500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물량 퍼붓기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대대적으로 밀어붙인 뉴타운개발 등 재개발 사업과 노무현 정권 당시 신도시 개발물량까지 합산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물량 공세가 이어지게 된다. 내년에 예정된 신도시 물량만 57만 가구다. 이미 물량공세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송파 인근 지역에서는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정성훈 주택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차를 두고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도록 정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며 "이제는 새 개발보다는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일방적인 공급확대책에 반대했다.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더 하락해야 많은 무주택자들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 전국에 걸쳐 중환자처럼 누워 있는 아파트가 본래 가진 '주거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아파트=투자'의 공식을 깨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백준 교수는 "이제는 부동산을 시장논리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공공의 역할과 '주택정책' 자체의 의미로 바라봐야 할 때"라며 "정상화를 위한 진통은 참아야 한다. 당장의 아픔을 참기 위해 또 다시 대증요법을 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파트 가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중계동의 한 공원을 산책하던 허모 씨(67)는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는 답을 했다. "집값이 내린다고? 난 그런 것 잘 모른다. 오르면 뭐하고 내리면 뭐하나? 어차피 우리 집은 두 노인네가 여생을 보내려고 예전에 장만한 곳이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