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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여러분의 박수로 사람부터 살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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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여러분의 박수로 사람부터 살립시다"

[우석훈 칼럼]"금메달 성원의 1/10 이라도 기륭 노동자들에게…"

북경 올림픽에 사람들이 시선이 가 있는 동안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수치고, 자랑스러워하고, 금메달을 보듬는 동안 구로공단 한 구석에서는 두 사람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몇 년 전으로 올라가고, 60일이 넘은 단식은 몇 달 전의 일이지만, 단식 중인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껏 섭취하던 효소와 소금을 끊은 것은 이번 주의 일입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파업, 단식, 일반 국민들이 듣기만 해도 고개를 돌릴만한 칙칙한 단어들은 모두 모은 사건이지만, 여기에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생명'이 걸려있는 사건입니다.

하다하다 힘이 들었던지, 나같이 힘없고 결정권 없는 사람에게까지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얼마나 저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또 지금의 한국의 모습이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행복도 아닙니다. 그저 예전처럼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법원이 판결한 대로, 그리고 법률이 정한 대로 불법파견 문제를 해소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사소한 얘기를 하는데 생명을 걸어야 하는지도 의아한 일이지만, 과연 한국 경제처럼 이렇게 큰 규모에서 이런 작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절차가 없다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 60일이 넘게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지난 12일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은 단식 중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인 소금과 효소마저 끊겠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청와대, 총리실, 국회, 한나라당과 같이 국정의 총괄 조정기능들을 가지고 있는 곳 어디 한 곳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금방 해결될 수 있는 작은 일이고, 노동부나 하다못해 행정자치부나 기획재정부도 하고자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수많은 국장들 아니면 담당 과장들이라도 최소한의 인도주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넓게 본다면, 기륭전자 사건은 KTX 여승무원 사건, 이랜드 사건 그리고 코스콤 사건 등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수 있고, 한국 노동정책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매우 민감하고 시급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상위 5%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언제라도 비정규직의 문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2008년도를 분기점으로 더욱 심각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 풀고, 정책적 방향을 급선회해야 기륭전자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측은지심'이라고 부르는, 맹자가 세상이 좋아지기 위해서 출발점이라고 제시했던 바로 그런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도 현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변을 완벽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최소한 OECD 국가 중에서,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기륭전자와 같이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그렇게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회적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붙이지는 않습니다.

정치적 문제와 정책적 방향에 대해서는 훨씬 긴 시간을 가지고 사회적 논의를 해도 좋고, 스웨덴식 '사회적 대타협'이 되었든, 아니면 또 다른 그 어떤 이름을 가진 절차를 통해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지금 한국 사회에 던져진 기륭전자 문제는, 그런 정책적 방향에 우선하여,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었든, 총리가 되었든, 혹은 그 어떤 장관이 되었든, 권한을 가진 누군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나서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건전한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포퓰리즘이 되었든, 아니면 또 다른 인기영합책이 되었든, 일단은 사람은 살리지 않아야할까요?

관대한 8.15 대사면에 어쨌든 영어의 몸이 되었던 많은 사람이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 8.15날에 저는 기륭전자에서 열리는 조그만 간담회에 참석합니다만, 이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또 그날까지 지금 단식하시는 분들이 버틸 수 있으실지에 대해서도 자신하지 못합니다. 너무 비극적인 8.15가 아닙니까?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관대로움으로 특별사면을 혜택을 받는 이 순간에, 아무런 관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저 비정규직 절차에 대한 법적인 절차를 밟아달라는 사람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이 순간이, 저로서는 제 정신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국의 슬픔 같습니다.

연극 <피터팬>에 팅거벨이 죽어가던 순간 관객들의 박수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정성과 박수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기륭전자의 두 여성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박수가 아닐까 합니다. 8.15를 무대로 우리가 거대한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저의 둔한 머리로는, 도대체 어떻게 국민들이 박수를 쳐야 기적이 일어나게 될지, 그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금번 8.15가 '두 개의 대한민국'의 출범식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자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앞세우고 환호성을 치며, 모든 가난한 사람들과 비정규직 국민들은, 기륭전자의 부고를 받게 되는, 그런 절망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의 연극은 클라이맥스를 향해서 달리고 있고, 누군가 오늘 내일 움직이지 않는다면, 금번 8.15는 대단히 비극적인 흐름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북경 올림픽 금메달에 국민들이 보내는 박수와 지지의 딱 1/10만 기륭전자의 두 여성들에게 보내면, 우리는 기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도 우리 안의 힘 없고 돈 없는, 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살리는 것, 그것이 '행복한 대한민국'의 첫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저의 개인적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박수로, 제발 우리, 사람부터 살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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