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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마른 여의도엔 신부님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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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마른 여의도엔 신부님도 없는데…

[기자의 눈] '개원 무드'가 달갑지만은 않은 까닭

3일 저녁 서울 시청광장.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천막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하고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 봤더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소년이 문정현 신부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었다. 문 신부는 환한 모습으로 꽃다발을 받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미 사제단의 천막 앞은 '꽃밭'이었고, 사제단 천막 옆에선 신도들이 쉼 없이 '평화의 종이학'을 접고 있었다.

막상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사회부 시절 '취재원'이었던 인사들의 모습이 여럿 눈에 띄었다. '대추리 신부님'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새만금 삼보일배의 문규현 신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함세웅 신부,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의 대변인이었던 김인국 신부는 물론 김용철 변호사까지 있었으며, '민변의 대부' 최병모 변호사도 방문해 신부들과 환담을 나눴다.

김인국 신부에게 '인사'라도 드리려 했으나, 그를 찾는 이들이 하도 많아 좀 과장을 보태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 흰색 장미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 ⓒ프레시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다 마침내 틈이 생겨 김 신부에게 인사를 드렸다.

"오랜만입니다. 신부님. 월요일(미사를 처음 한 날)에 히트 치셨어요."


(미소를 지으며) "뭘"

"웬걸요. 주변에서 '감동적이다'고 한 사람들이 많던데요."


"사실 우리도 놀랐어. 그날 조그만 탁자 하나 놓고 준비했는데, 신부님들만 300여 명이 왔지 뭐야. 원래 사제단이 행사를 하면 60~70명 정도 모이거든. 그런데 이렇게 관심을 많이 끌리라 예상 못 했어."

"나선 타이밍이 절묘했던 것 같아요. 폭발적인 반응의 원인이 뭐라고 보세요?"

"간단하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고 외로워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거야. 우리는 잠시 어깨를 빌려준 것뿐이지. 예수께서도 그랬잖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게 종교의 역할 아니겠어?"

이런 저런 안부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여기엔 언제까지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김 신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번 주말까지만 있을 생각"이라고 답했다. "종교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것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누리꾼 수사, <PD수첩> 수사 등을 통해 공안정국의 조성하고 촛불시위 강경진압을 통해 "더 이상 시위가 안전하지 않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촛불시위를 외면하려 계획했다면 사제단은 이에 보기좋게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종교와 시민들의 힘으로 다시 촛불집회는 '안전한' 행사가 됐고, 그에 더불어 경건함까지 갖추게 됐다.

그런데 김 신부의 말처럼 종교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권 정치가 나설 수밖에 없다.

진짜 걱정은 개원 뒤
▲ ⓒ프레시안

대한민국은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 국가이다. 이 중 행정부인 이명박 정부는 "할 만큼 다 했다"며 여론 뭉개기 태세로 나오고 있다. 행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법부는 어떠한가. 통합민주당과 민변 등 여러 곳에서 고시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고시무효 행정소송에 헌법소원까지 냈으나 심리 결과는 감감 무소식이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고 '정치적 해법'이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섣불리 판결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쇠고기 문제로 벌써 두 달 째 나라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으면, 열일을 제쳐놓고 판단을 하는 게 옳다. 사법부도 엄연한 3권 중의 하나인 헌법기관이다.

그리고 입법부인 국회. '민의의 전당'이라는 간판을 떼야 할 판이다.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해 해법의 열쇠를 쥔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모양새다. 하다못해 국민들 답답한 가슴이나 시원하게 해줄 말 한 마디 하는 국회의원 한 명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이고 이른바 개혁적이라는 소장파 의원들. 아직 본회의장 문턱도 못 넘어본 초선들 모두 꿀먹은 벙어리다. 소나기는 일단 피해가자는 심산으로 보인다. 차라리 '할 말 하는' 주성영 의원이 당당해 보일 정도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은 국회에 들어갈지 말지도 정하지 못한 채 역시 '촛불 눈치'만 살피고 있다. 민주당은 나름대로 "한나라당이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에 한나라당이 동의해야 한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의석수를 핑계대자면 앞으로 4년 내내 이런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근 '인간 방패'를 하면서 제법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지만 여전히 그들에게서 '야성(野性)'을 찾아보기 힘들다. 강력한 리더십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책임 있는 자세" 운운하며 여전히 '집권당' 시절의 화법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인상도 받는다. 사실 재선 중심의 민주당인지라 '야당 DNA'를 찾는 것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7일부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모두 새 지도부 진용을 갖춰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면 등원론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등원이 만사형통의 길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현실로 다가왔음을 인정할 뿐.

지난 두 달 동안 시민들은 사력을 다해 항의했다. 종교인들이 지친 그들의 피로회복제가 돼 줬다. 이제 정치권은 무엇을 할 것인가. 촛불의 정신을 담을 그릇이 어느 한 곳이라도 있었으면, 거리의 촛불은 이렇게 오래오래 타오를 리 없었다.

정말로, 이제 정치권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의회를 내팽개칠 수야 있을까만, 18대 국회의 개원 뒤가 오히려 걱정스럽기도 하다. 의회의 무기력이 또다시 확인되면 거리의 촛불은 심신의 피로를 잊을 틈도 없을테니까. 결국 국민들만 죽어라 고생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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