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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동맹'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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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동맹'의 탄생

[송기호 칼럼] 농림부의 입법예고에 민주주의는 없다

마침내 농림부 장관은 22일 농림부 홈페이지에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을 입법예고했다. 그는 친절하게도 "국민에게 널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한다고 했다. 국민들에게 다음 달 13일까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다. 국민의 의견을 들어 미국과의 합의 사항을 바꿀 권한이 있는가?

나와 같은 법학자들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민주주의 질서는 적어도 기본적 인권, 특히 생명과 그 자유로운 발현을 위한 인격권의 존중을 그 속에 지녀야 한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 판례, 김철수 헌법학 개론)

나는 이날 저녁, 미국 쇠고기 수입 조건을 주제로 한 라디오 생방송 토론에 참여했다. 이 방송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청취자들의 의견을 실시간 접수했다. 방송이 끝난 후, 나는 방송 관계자에게 청취자들의 여론을 물어 보았다. 70%가 넘는 청취자들이 미국 쇠고기 광우병 검역 협상 결과에 반대했다는 답변이 돌아 왔다. 물론 그 특정 방송의 청취자들이 전체 국민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도 인격권을 가진 국민들이다. 그리고 다수이든, 소수이든 국민의 인격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라면, 농림부 장관은 국민들의 인격권을 존중하여 미국과의 합의사항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그가 한 입법예고 절차는 가식과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내게는 농림부가 2005년 11월에 작성한 "미국 광우병 상황 및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검토"라는 전문가 검토 보고서가 있다. 나는 농림부와의 재판에서 이 보고서를 얻었다. 모두 26쪽의 보고서에서 농림부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광우병 위험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다소 길지만, 꼭 필요한 내용이니 옮긴다.
IV. 종합의견

"1. 미국의 광우병 위험도

미국은 광우병 발생국으로부터 생우 및 육골분을 수입한 실적이 있으므로 젖소, 종축 등 늙은 소에서 광우병이 몇 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나 미국의 광우병 위험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 (중략)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결정할 때에는 국제기준에 비하여 좀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 아직 광우병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미국의 광우병 방역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후략)

2.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방안

(1) 우리 검역당국에 의한 수출작업장 승인 및 우리 측 검역관에 의한 정기적인 작업장 현지점검 실시 (미국 내 검역관 상주)
(2) 송아지 월령은 치아감별 이외에 생우의 개체별 월령 증명 또는 지육의 생리학적 성숙도에 따른 등급판정도 추가로 실시하여 이중 확인
(3) 광우병 발병 가능성이 희박한 일정연령 이하의 육우에서 유래된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
(4) 미국 내 광우병 상황이 사람과 동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우리 측이 수입을 중단할 권리 확보

3. 쇠고기의 수입재개와 관계없이 미 측에 대한 권고사항
(1) 모든 동물사료 원료로 광우병 위험부위 사용을 전면 금지
(2) 미국 내 광우병 방역조치 실효성 검증과 광우병 양성 소의 적극 색출을 위해 지속적인 예찰강화 조치
(3) 미국 내 추가 광우병 발생 이후 광우병 위험 평가를 실시
(4) 소 개체식별시스템의 조기정착

위와 같이 농림부의 전문가들이 늙은 소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적중했다. 2006년 3월, 미국 앨러바머 주에서 광우병이 다시 발생했다. 그리고 그들이 미국의 광우병 방역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판단도 적중했다. 미국은 여전히 30개월이 넘은 소("OTM": Over Thirty Months)의 광우병 위험물질까지도 닭과 돼지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닭과 돼지는 다시 소의 사료로 허용되고 있다. 때문에 2007년 2월, 국제동물질병사무국(OIE)은 미국에 대해, 광우병 감염력을 지닐 가능성이 있는 원료가 소의 사료로 계속 이용되고 있으며, 교차 오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올 2월에, 미국에서 주저앉은 광우병 의심 소에 대한 강제도축사건이 발생하여 쇠고기가 대량 회수되었다. 그리고 올 4월, 인간광우병 의심 증세를 보인 22세의 미국 여성이 사망했다. 그녀는 한 번도 외국을 나가지 않은 사람이었다.

농림부 장관의 입법예고에는, 위 2005년의 전문가 보고서가 얼마나 반영되었나? 글이 길어지지만, 입법예고 내용을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지금의 검역 기준과 비교하기로 하자.

농림부 장관의 입법예고에 의하면 한국이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지 여부는 한국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아무리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고, 인간광우병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미국의 양해 없이는 미국발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난 이를 "광우병 동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교묘하게도 미국은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인 송아지 개체 식별 문제, 곧 이력추적과 연령 판별의 현저한 불가능을 성공적으로 덮었다. 앞에서 본 농림부 전문가 보고서에 의하더라도 2억 마리가 넘는 미국 소의 개체 식별은 불가능하며, 미국 소에서 월령 감별이 가능한 것은 15-20%에 지나지 않는다.(22쪽)

아! 농림부 장관의 입법예고는 얼마나 농림부 전문가들의 의견과 정반대인가! 아마도 농림부 장관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는 필경 국제동물질병사무국(OIE)의 관리등급판정을 들먹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동물질병사무국의 그 누구도 한국의 검역 주권을 양도받지 않았다. 국제동물질병사무국이 미국에게 광우병 관리등급 판정을 해 준 바로 다음 달인 작년 6월 30일에, 농림부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광우병 통제 실태를 현지 조사했다.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가 보장하는 한국의 검역주권을 행사한 것이었다.

농림부 장관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입법예고가 아니다. 진정 민주주의라면, 농림부 장관은 작년에 한 미국 현지 조사 보고서부터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그 내용이 앞의 2005년 11월 보고서와는 무엇이 다른지를 국민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미국에서 그 사이에 얼마나 광우병 위험도가 낮아졌는지를 당당히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민주주의보다도 이다지도 더 시급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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