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정부는 소의 뇌와 척수를 이제는 마음 놓고 먹자고 한다. 그동안은 위험하다며 먹지 못하게 하던 미국산도 한두 달 후부턴 먹자고 한다. 이 정부에선 지금까지는 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경우, 그 나라 쇠고기 자체를 먹지 못하도록 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또 발생할 경우에도 어지간하면, 미국산 쇠고기 뇌와 척수까지 그냥 먹자고 한다. 그런 내용으로 '고시'를 새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 정부의 어떤 공무원은 미국인이 인간 광우병으로 죽는 경우에도, 한국인은 어지간해선 미국 쇠고기 뇌와 척수까지 그냥 먹자고 한다.
이 두 정부는 당연히 서로 다른 정부이어야 한다. 만일 이 둘이 같은 정부라면 그런 정부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정상이 아니다. 광우병에 빗대어 말하자면, 미친 정부이다.
하지만 두 정부는 실제로는 하나이다. 앞쪽은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이고 뒤쪽은 그 농림부이다. 전자의 '지침'은 전염병 예방법에 따른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표본 감시·관리 지침'이고, 후자의 '고시'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이다.
지금, 한국 정부는 정상이 아니다. 광우병에 빗대어 말하자면, 미친 정부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도 국제법을 팔아서 정상 정부라는 진단서를 끊어주는 자들이 있다. 이들의 국제법은 '국제 기준 원칙론'이다. 곧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검역 기준이 원칙이고, 농림부의 새 고시는 그 국제 기준 원칙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국제법은 가짜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판례와 다른, 지어 낸 이야기이다. 1997년에 WTO는 이렇게 판결했다.
WTO 회원국이 위생검역 협정에 따라 독자적인 위생검역 기준을 설정하는 권한은 그 나라의 자주적인 권한인 것이지, 일반적 의무로부터의 예외 사항이 아니다. (As noted earlier, this right of a Member to establish its own level of sanitary protection under Article 3.3 of the SPS Agreement is an autonomous right and not an "exception" from a "general obligation" under Article 3.1.) (WTO, 유럽연합의 미국산 쇠고기 호르몬 사건 항소심 판결문 104절) |
국제기구의 검역 기준이 일반적 원칙이라거나, 각 나라의 그것은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는 그런 따위의 국제법은 없다. WTO 회원국은 검역 주권을 국제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회원국은 국제 기준보다 엄격한 검역 기준을 설정할 검역주권이 있다. 물론 검역 주권을 포기하고 국제 기준대로 할 수도 있다. 둘 다 대등한 선택지이고, 회원국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이처럼 회원국은 결코 국제수역사무국의 국제 기준을 이유로 자국의 검역 기준 변경을 요구받지 않는다. 이 점을 WTO 위생 검역 협정은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 또는 권고를 기초로 회원국 간의 조화를 도모하되, 회원국에 대해 자국민 건강과 생명의 적정 보호 수준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Desiring to further the use of harmonized 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 between Members, on the basis of international standards, guidelines and recommendations developed by the the International Office of Epizootics, without requiring Members to change their appropriate level of protection of human life or health;) |
국제법적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 주권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다.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국제 기준대로 검역 기준을 설정했다는 것의 국제법적 의미는 한국이 WTO 회원국으로서 보유한 자신의 고유한 검역 주권 행사를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가짜 국제법을 파는 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할 낱말이 남아 있다. 이른바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 등급'이다. 영어로 'controlled BSE risk status'라 하는 이 개념을 마치 '광우병 위험 안전 등급'인 양 교묘히 말하는 자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이 개념의 본디 의미는 일본 정부의 번역인 '광우병 위험 관리 등급'일 뿐이다. 이는 '광우병 위험 무시가능 등급'보다 한 단계 아래의 등급이다. 이 등급에서는 결코 광우병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해당 국가가 그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해당국 정부의 관리정책에 결함이 있는 경우, 광우병 위험은 언제든지 현재화될 수 있다. 알다시피, 미국 정부가 도축장들이 주저앉은 소를 강제 도축하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현실은 이미 드러났다.
가짜 국제법을 파는 자들에게 일본의 검역 기준과 한국의 그것을 비교한 아래의 표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의 새 기준 | 일본의 현행 기준 | |
소 나이 | 30개월 미만(나이 제한 폐지 예정) | 20개월 이하 |
소 나이 판별법 | 발표되지 않음 | (1)세 가지 검증 서류(개별 월령 증명 서류, 서식 집단에 대한 월령 증명 서류, 그리고 미국 농무부의 월령 검증 서류)를 모두 구비한 서면 판별법, 또는 (2) 미국 농무부가 농무부 제정 <지육등급기준>과 <생리 성숙도 판정 기준>에 의하여, 도축소의 골격, 살, 그리고 전반적 성숙도 등을 관찰하여 '성숙도 A40' 혹은 그보다 어린 소라고 공식 판정하는 방법 |
수입 금지 부위 | 편도, 회장원위부, 기계적 회수육 | 머리 부위(혀와 볼 살은 제외), 척수, 편도, 회장원위부, 척주(흉추횡돌기, 요추횡돌기, 선골익 및 미추는 제외), 분쇄육, 기계적 회수육 |
미국 수출 작업장 지정 조건 | 발표되지 않음 | 미국 농무부가 내부 감사 제도, 생산자 추적 제도,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HACCP) 시설, 생산 이력제도, 나이 판정 요건, 개체 감정 제도, 품질관리 제도 등을 정한 <쇠고기 일본 수출 검사제(EV)>의 요건을 준수하는 작업장일 것 특정위험물질 제거 매뉴얼, 수출 허용 쇠고기 부위 리스트 매뉴얼을 갖추고, 그 준수를 위한 직원 교육을 철저히 할 것 |
미국의 수출 작업장이 광우병 위험 부위를 수출하는 등 중대한 위생조건 위반을 하는 경우 | 동일 작업장에서 2회 이상 발생시 해당 작업장에 대한 선적 중단조치 | 중대한 위반이 계속 발생하는 등 미국의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있는 경우 전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
똑같은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인의 입과 일본인의 그것에 들어가는 통로의 모습은 왜 이다지도 다를까? 일본인의 입에는 20개월보다 어린 미국 송아지의 뇌와 척수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된 반면, 왜 한국인의 입에는 그보다 늙은 소의 뇌와 척수까지 자유롭게 들어가게 되었을까?
그것은 순전히 국가가 검역 주권을 행사하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의 차이이다. 곧 정부의 능력과 의지의 차이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이 '광우병 위험 관리 등급'이라는 것을 만들 때, 이 등급이 결코 일본 정부의 검역 주권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공식적 확약을 WTO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 소에 대한 광우병 전수 검사를 통해 방대한 광우병 검역 자료를 축적했다. 30개월령 미만의 송아지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한 자료를 확보했다. 그리고 작년 1월,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부위가 발견되었을 때, 일본은 즉시 모든 수입을 중단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미국 현지 조사 등을 통해 미국의 실태를 파악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앞에서 본 WTO 회원국의 검역 주권은 무능하고 게으른 정부에게는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어느 정부가 국제검역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려면, 그를 뒷받침할 과학적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럴 능력과 의사가 없는 정부 앞에는 검역 주권 포기의 길이 놓여 있다.
광우병에 빗대어 말하자면, 미친 정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일 중에서 첫 번째는 정부가 미쳤다는 것을 더 많은 국민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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